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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May 05. 2024

구조조정 시대 - '일잘러'의 조건

이삿짐을 구조조정하며 드는 생각

회사를 옮기면서 지방생활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이사해야 한다. 불행히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서울과 지방의 집값 격차가 더 커졌다. 결국 서울 외곽에 평수도 줄여가며 겨우 전세를 구했다.


이사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짐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큰맘 먹고 샀던 덩치 큰 가구며 가전제품들은 가져가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애매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집안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던 물건들도 솎아내야 할 것 같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할 때 방 5개에 화장실 3개가 딸린 2층 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싱가포르로 이직하면서 방 3개, 화장실 1개짜리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는 데 사용하던 커다란 침대며 소파를 그대로 가져갔더니 집이 꽉 차버려서 사람이 지나다니기조차 쉽지 않았었다.




문득 짐을 "정리"하면서 내가 물건들에게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남기고 저건 버리고...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날 때면 어떤 이들은 남고 어떤 이들은 회사를 나가게 되는 거랑 좀 비슷하다.


사람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무엇이든 성장하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반면에 조직과 비용을 줄이는 것은 여러모로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험이다.


수납공간을 좀 들여다보니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도 있고, '이런 것도 있었나?' 싶어 깜짝 놀라게 되는 물건들도 있다. 심지어는 용도가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물건들도 있다. 이들은 당연히 제거 1순위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는 사람들에도 다양한 유형과 이유가 있다. '나이'는 가장 흔하고 쉬운 기준이다. 아직도 연공서열의 색채가 남아있는 한국의 기업환경에서는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급여 수준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비용절감이라는 관점에서는 나이 많은 직원들을 먼저 내보내는 것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 된다. 직무의 성격도 영향을 준다.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한 직무는 비교적 구조조정에 취약하다. 급하면 일단 줄인 다음 외부에 용역을 맡겨도 되고 그러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쉽게 다시 뽑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젊고 대체가 힘든 직무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회사가 사업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특정 사업부를 통째로 날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 첫 직장의 경우 사업전략을 수정하면서 당시 연구소에 근무하던 많은 고급 연구인력들이 대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회사를 나왔었다.


결국 누구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면 지나치게 자책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갑작스럽게 회사를 나오게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스트레스인데 그 원인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어진 일을 무조건 외부적인 요인 탓으로만 돌리는 것 역시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만일 계속 직장생활을 할 생각이라면 잠시 쉬는 기간을 자신의 업무방식을 한번 돌이켜보고 자신의 역량을 좀 더 개선하거나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층층시하 상사가 있는 조직으로 다시 복귀한다. 이참에 나도 나의 업무방식에 대해 한번 재점검해본다. 나는 어떤 부하직원들을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작 나는 그렇게 일하고 있는 걸까?


내가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직원 (aka. '일잘러' 마인드셋)


1. "어떻게 할까요?"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직원

완벽한 초보가 아닌 다음에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일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해 본인의 계획이나 의견은 없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상사의 지시만을 요청하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직원들 중에 유능하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직원은 나에게 보고할 때면 자신의 대략적인 계획을 갖고 와서 설명하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직원들이었다. 반면, 무능한 직원들은 나에게 와서 백지장 같은 표정으로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2. 상사가 물어보기 전에 보고하는 직원

일을 진행하면서 굳이 상사가 묻지 않아도 진행상황을 수시로 공유해 주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상사가 묻기 전에는 일절 보고가 없는 고구마 같은 직원도 있다. 당연히 전자가 유능하다고 평가받는다. 보고는 정식 면담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서면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오며 가며 간단하게 구두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가끔씩 진행과정에 오가는 이메일에 상급자를 참조로 넣는 것도 쉽고 요긴한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상급자가 궁금해서 보고를 요청하기 전에 미리미리 상황에 대해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


3. "한번 해보고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직원

세상에 완벽한 계획은 없다. 현실은 언제나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도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어떤 일이 하기 어려운 이유 100가지를 댈 수 있는 직원보다는 어떤 일을 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생각해 내는 직원이 더 빛나 보인다. 물론 그런 계획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고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도전해 보고 현실에 부딪혔을 때 더 구체적이고 좋은 대안이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한번 해 보고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직장에서 상사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세부적인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대개 실무자의 몫이다. 힘든 상황을 맞닥뜨리면 상사도 직원들만큼이나 답답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100% 확실한 방법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방법을 제시하고, "일단 시도해 보고 계속 업데이트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믿음을 준다면 그 직원은 그렇게 이쁘고 든든해 보일 수가 없다.


글로벌 회사로 복귀하면서 다시 오랜만에 상사와의 면담을 준비하며 '일잘러' 마인드셋을 장착해 본다.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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