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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Jun 22. 2024

소중한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단 하나의 키워드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 설립하는 일을 맡고 나서 요즘 주로 하는 일은 업계의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모셔오는 일이다. 몇몇 분이 이미 합류했는데 다들 능력이 뛰어나고 성품도 좋은 데다 서로 '케미(구성원들 간의 호흡과 유대감)'까지 좋아서 나로서는 흐뭇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들이 합류하기 전에는 아무래도 나 혼자서 일하다 보니 본사 혹은 외부 관계자들과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나의 얕은 지식을 쥐어짜가며 긴장할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 곁을 지켜주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영입인재 중의 한 명인 A는 십수 년 전 그가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던 신참일 때 만났었다. 그래서일까. 그를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사회초년병 일 때 처음 보았던 그의 앳된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가 한 번은 A와 함께 외부 인사들과의 미팅을 진행하면서 "아하!" 하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아하 모먼트 (Aha Moment)'였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외부관계자들과의 미팅을 A가 너무나 매끄럽게 진행하면서 자신감 있게 일처리를 주도하는 것을 보자 '아하! A는 더 이상 풋내기 신참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First impressions last. (첫인상은 영원하다?)"라고 하더니... 본사의 까다롭고 엄격한 채용 절차를 거쳐서 영입된 인재이니만큼 A가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그걸 보고 놀랐다는 것은 내 인식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문득 예전에 함께 일했던 다른 많은 동기, 후배 혹은 부하직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하는지. 예컨대 얼마 전에는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가 공항에서 우연히 예전 부하직원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만나면 반가운 후배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내 마음속에서나 아직 어리고 젊은 풋내기들이지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지금 경력의 정점, 황금기를 지나고 있다. 굴지의 회사 대표인 이들도 있고,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의 고위임원이거나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리더들도 많다.


오래된 인연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을 만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내 마음이 그들과 함께 일했던 시절로 돌아가서 더 어려지고 더 젊어진 느낌이 든다는 것이지만, 지나온 시간 동안 그들이 축적해 온 성장과 성취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마냥 예전에 바라보던 관점, 예전에 대하던 방식대로만 대한다면 그것은 무식하고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 이제 겨우 집 정리가 좀 되었으니 호기심 많은 어머니가 아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궁금해하실 같아서 얼른 집으로 며칠 모셨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집 앞에서 산책을 하다가 간만의 외출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뜬금없이 나에게 동요를 불러보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산책로에서 오십넘은 아들에게 동요를 부르라고 강요(?)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눈에는 내가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어엿한 성인이 되어 제 앞길을 차근차근 헤쳐나가고 있는 큰 아이나, 아빠를 꼬꼬마로 보이게 할 만큼 덩치가 커진 둘째를 내가 아직도 너무 '꼬마 소녀 (Funny Little Girl)'와 '귀요미 막내 (Cutie Baby Boy)' 취급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여나 '나는 친구 같은 아빠'라는 자부심에 나 혼자 너무 오래도록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품 안의 자식'이 점점 독립적인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의 성장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바뀐 모습에 적응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것처럼,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도 그 관계를 이루는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좋은 관계는 언젠가 어색한 관계로 바뀔 수도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자녀가 컸다고 내 새끼가 아닌 것은 아니고, 후배가 성장해서 거물이 되었다고 선배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켜가기 위한 단 하나의 키워드는 '존중(Respect)'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가깝거나 편한 관계일지라도 그 관계의 밑바탕에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있다면 우리는 관계를 계속해서 건강하게 발전시키며 유지해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존중’한다는 것은 그저 ‘친절한 것’, ‘선한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이며 ‘성숙한 것’이고 또 ‘사회생활을 잘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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