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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Dec 16. 2019

회장님의 추억

영감을 주는 리더라면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싱가포르에서 지하철 타고 걸어서 출퇴근하면 어쩔 수가 없다. 가방을 사무실에 던져놓고 일단 휴게실로 가서 찬물을 한 사발 들이킨 다음 자리로 돌아와 우편함을 열었다. 밤새 들어온 메일들이 잔뜩 쌓여있지만, 아침에 특별히 급한 용무가 없었기 때문에 우선 전 세계 제약업계의 뉴스가 간추려져 있는 뉴스레터를 열어보았다.


“Changing of the guard at Lilly: CEO Lechleiter to step down”


내 눈을 사로잡는 기사다. ‘엥? 렉라이터 회장님이 퇴임하신다고?’ 그러했다. Eli Lilly의 최고경영자인 렉라이터 회장님이 올해 말에 8년의 재임기간을 끝내고 은퇴하신다고 한다. 기사는 거대 제약업계 수장들 중에 유일하게 과학자 출신인 회장님이, Lilly의 140년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연구개발로 승부수를 걸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다음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렉라이터 회장님에 얽힌 몇 가지 추억이 있다. 내가 처음 회장님을 지근거리에서 본 것은 입사한 지 1년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그때 회사는 획기적인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일부 직원들을 선발해서 회장님을 이틀 동안 따라다니며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어떻게 일하는지를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쉐도우 캐비넷(Shadow Cabinet)”. 나는 그 프로그램에 선발되어서, 회장님이 전 세계의 최고위급 임원들과 향후 경영계획을 논의하는 회의를 참관하게 되었다.


커다란 원탁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 나는 회장님의 자리 바로 뒤쪽에 앉은 채 함께 선발된 다른 직원들과 같이 회의를 숨죽이며 관찰했다. 북미 사장, 유럽 사장, 신흥국가 총괄 사장 등 회사의 최고 경영진들이 모여서 경영현황과 향후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몇몇 사장들 사이에서 어떤 현안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었는데, 나는 속으로 양쪽 가운데 한쪽 진영의 주장이 경제적 논리에는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양쪽의 논리를 곰곰이 듣고 있던 회장님이 갑자기 의자를 홱 돌리시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물으셨다.


“태진, 자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허걱…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고,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리는 듯했다. 엄청나게 당황한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었다. "경제적인 논리로만 따지자면 분명히 한쪽 주장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한번 논의해보십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다음부터 이야기는 앞서 와는 조금 다르게 굴러가기 시작했고 최종 결론은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려졌다.


거대 글로벌 기업의 최고 수장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경제적 논리에 앞서서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기시킨다는 사실이 당시 내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많은 회사들이 거창한 말들을 내세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홍보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단지 액자에 예쁘게 걸려있는 한낱 장식에 불과한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경험은 이후에 내가 회사에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다.



회장님에 관한 두 번째 추억은 내가 글로벌 마케팅 일을 하고 있을 때다. 당시에 나는 내가 담당하던 제품의 후속 제품 개발에 대한 회사의 투자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한창 애쓰고 있었다.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던 나는, 10여 미터 앞에 웬 노신사가 검은색 바퀴 달린 가방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미국에서는 직장인들이 그런 가방을 끌고 다니는 풍경이 비교적 흔했다.) 그런데 뒷모습이 아무래도 회장님 같아 보였다. 나는 ‘에이 설마’ 하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회장님이 차도 없고 수행원도 없이 혼자 가방을 끌며 걸어서 퇴근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고 쫓아가서 그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걱… 회장님이었다.


왠 젊은 친구가 뒤에서 달려와서는 자기 얼굴을 보고 굳어버리니, 아마 회장님도 좀 당황하셨을 것 같다. 나는 일단 눈이 마주쳤으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글로벌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그래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당시 머릿속에 온통 제품 개발 기획안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던 나는 문득 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졌다.


“회장님, 제가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우리는 함께 걸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고, 회장님은 걷는 내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이것저것 질문도 하셨다. 회장님과 나는 20여분을 함께 걸었고, 회장님은 자택에 도착해서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서 내 설명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당시 회장님은 회사와 가까운 시내에 거처를 두시고 주중에는 그곳에서 출퇴근을 하셨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명함을 달라고 하더니, 다음날 내가 준비한 기획서를 자신에게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회장님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그 일이 마치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


기획안의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는 그 이후로도 한참이 더 걸렸지만,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회사의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적지 않은 투자금액에 대한 승인을 받은 것이었고, 더구나 그것은 우리 부서에서 몇 년 동안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었던 사안이기에 상사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것이 내가 회장님께 개인적으로 특별히 로비(?)를 했던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것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기억이 되었다.


세월이 좀 더 지나고, 내가 한국 지사에 와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회장님이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대외업무 총괄’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서 그분의 모든 일정 및 의전을 관장하게 되었다. 한국 지사의 임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회장님께 옛날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회장님이 웃으시며 자기도 기억한다고 하셨다. 다시 한번 감동스럽고 감사했다.




한국에서 ‘회장님’은 좋은 이미지보다는 나쁜 이미지가 더 많은 것 같다. 무소불위로 마치 법 위에 존재하는 듯 제왕적이고 돈밖에 모르고 안하무인인 ‘회장님’들이 뉴스에 너무나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모셨던 특별한 회장님에 대한 나의 추억이 더욱 고마운지도 모른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면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롤모델(role model)이 되어주신 회장님. 지금은 내가 다른 회사에 몸 담고 있지만, 회장님의 은퇴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멋진 은퇴 후의 인생을 즐기세요.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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