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초조해 진다면
주말 저녁, 모처럼 식사를 밖에서 하기로 했다. 가끔 들르는 쇼핑몰에 있는 ‘Bubba-Gump’라는 새우요리 전문점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Bubba-Gump는 1994년에 개봉했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레스토랑인데 영화에서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친구 Bubba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잡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 식당의 시초인 것으로 나온다. 레스토랑 바깥벽에는 벽걸이 TV가 걸려있고 거기에서 영화 Forrest Gump가 계속해서 상영되고 있어서 나는 음식을 기다리는 내내 거기에 정신을 뺏겨 있었다.
영화는 깃털 하나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한다. 깃털은 천천히 내려가는 듯하다가, 다시 두둥실 떠오르기도 하고 자동차나 사람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처 없이 떠다닌다. 마침내 깃털이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던 주인공의 발밑에 살포시 내려앉고 주인공 포레스트가 이것을 집어 들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분이나 지속되는 이 깃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저 깃털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영화감독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저 깃털로 영화를 시작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포레스트는 I.Q. 가 75가 채 안되지만 어릴 적부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인생이란 초콜릿 상자와 비슷하단다. 안에 어떤 초콜릿이 들어있는지 미리 알 수 없거든.)”
이라는 말로 그를 북돋아준다.
그리고 그 말처럼, 포레스트의 인생은 상상하기 힘든 놀랍고도 다양한 많은 일들로 가득 차게 되고,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깃털이 다시금 등장한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어머니, 첫사랑, 친구) 모두가 세상을 떠나고 포레스트는 첫사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단둘이 살게 되는데, 아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는 그의 발밑에서 깃털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더니 파란 하늘을 향해 두둥실 떠오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이다.
깃털은 아마도 포레스트의 예측할 수 없었던 인생, 더 나아가서는 지구 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예측불가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깃털은 아무리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려고 해도, 주변 공기의 미세한 변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100%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인생은 계획대로 100% 펼쳐지지는 않는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나의 노력이,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내 주변 환경이나 시대의 영향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 어떠할 것인지는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그 안에 어떤 모양, 어떤 색깔, 어떤 맛의 초콜릿이 들어있을지 미리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이 100% 운이나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100% 내 의지라고 할 수만도 없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들어간 첫 직장이 제일제당(현재 CJ의 전신)이라고 얘기하고 다녔지만, 사실 제일제당은 나의 세 번째 직장이었다. 제약업계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일반 제약회사 연구소보다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내 나름의 짧은 소견에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그나마 대기업에서라야 제대로 된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방대 출신의 약점이었던지 내가 희망했던 L, S, C 등의 대기업 연구소에 언제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답답했다. 직접 회사의 대표 주소로 손편지를 써서 보내보기도 했다. 결국 딱히 내가 원했던 곳은 아니지만 그나마 나름 대전 대덕 연구 단지에 번듯한 연구소가 있던 S사의 연구소에 지원을 해서 합격했다. 서울 본사에 가서 신입사원 환영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신입사원들에게 돌아가며 한 마디씩 각오를 말하라고 하기에 나는 “내 뼈를 이곳에 묻을 각오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너무나 상투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진정성 있게(?) 외쳤었다.
그런데 나에게 ‘뼈를 묻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신입사원 환영행사를 다녀온 지 딱 일주일 뒤에 회사로부터 입사 취소 결정을 통보받았던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애초에 나를 포함한 몇 명이 병역특례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는데, 회사가 병무청으로부터 해당 인원만큼의 병역특례 인원(T.O.)을 배정받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나는 그 회사 외에도 다른 몇몇 회사에 합격을 했던 터였지만 이미 그 회사들에는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고 통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뒤늦게 맞닥뜨린 이 황당한 상황에 너무나 기가 막히고 망연자실했었다.
하지만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바쁘게 동분서주한 덕분에 다행히 제약사업에 진출하려 한다는 J사의 연구소로부터 받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애초에 원했던 회사와는 좀 더 동떨어진 느낌의 회사라서 실망감도 컸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사 3개월 만에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모든 연구원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구직 전선에 내몰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 경제위기의 여파였다.
회사는 퇴사일을 임의로 정해놓고 그때까지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해고 처리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뗐던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는 걸까?’라며 좌절하고 우울감에 빠졌다. 이미 공채시즌은 다 지나갔고, 웬만한 회사에는 다 지원했다가 내가 먼저 퇴짜를 놓았던지라 앞길이 막막했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것 같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맨 처음 가장 가고 싶어 했던 L사와 C사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한번 보자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두 곳으로부터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최종적으로 C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바로 제일제당 종합기술원이었다.
힘든 고비를 겨우 잘 넘겼다고 생각했었지만 살다보니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고비와 좌절의 순간들은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하게 운이 좋았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미래’라는 것은 그 본성이 원래 불확실한 것인데,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이런 불확실함에 대해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는 경향이 컸던 것 같다. 내가 언제 승진이 될 것인지, 이다음에는 어떤 보직을 맡을 것인지 등에 대해 늘 염려하고, 나의 기대와 다르게 시간이 흘러가면 불안해하고 화가 나곤 했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5년 10년 후가 아니라, 당장 내년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100%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만 주목하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이제는 뒤를 돌아보면서 다스리는 노하우가 약간은 생긴 것 같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어 화가 나거나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깃털을 이리저리 떠미는 바람처럼 내 삶에 내가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일들로 인해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인도되어 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우리가 나이 들수록 체감하는 세월의 흐름도 점점 더 빨라진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들이 내게 닥칠 것이고, 그 일이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지는 알 수가 없다. 아직 나의 초콜릿 상자 속에 어떤 초콜릿들이 들어있는지 다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작은 일에 호들갑스럽게 신나 하기도 하고, 또 작은 일에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영화를 보듯이 나 자신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라는 깃털에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고 또 내가 그 바람에 떠밀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가만히 관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문득 자각할 때면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진다.
(201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