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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Jul 05. 2022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다면

예전에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었다. 스토리도 재미나지만 주옥같은 대사들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님이 최근에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새로 내놓았다. 처음엔 본방이나 재방송으로 띄엄띄엄 보다가 어느 순간 '이 드라마 대박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넷플릭스로 다시 처음부터 정주행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완전 강추다.


드라마나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관련된 뒷이야기 등도 곧잘 찾아보곤 하는데,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른 손석구 씨(극 중 구씨)가 인터뷰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타인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해 보이던 구 씨가 어떻게 말 몇 마디도 하지 않고 미정이(김지원 분)와 가까워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손 배우의 대답은 '구 씨와 미정이가 말도 안 섞고 서로 똑바로 쳐다본 적도 없지만 오며 가며 서로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한마디로 오OO 초코파이의 유명한 CM송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인 셈이다.




가끔 '사람도 동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정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 사람에게 무슨 근심거리가 생겼구나' 혹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아니면 '나를 싫어하는구나') 등등의 감정은 그냥 말하지 않아도 동물적인 감각 덕분인지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알 수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도 많다. 1990년대에 출판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에서는 사랑하는 남녀가 소통하는 방식이 어찌나 차이가 큰지 마치 서로 다른 행성의 외계어를 쓰는 것만큼이나 다르고 이 때문에 남녀가 종종 불필요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여자가 '나 오늘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힘들었어'라고 하면, 그 말의 속 뜻은 대개 '나 위로해 줘'인데 남자는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지 않으면 여자가 한 말의 이면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 '내 문제를 해결해 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일의 전후 사실관계를 따져 묻다 보니 오히려 갈등만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한때 스스로 감수성도 뛰어나고 공감능력도 높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고 나 역시 의외로 지독한 '화성 남자'였다는 걸 깨달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알아서 이해해 주지 않는 또 다른 곳이 직장이다.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잘했고,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원한다는 걸 회사가 알아주겠지'라고 직원 혼자 생각하고 있다면, 회사가 알아주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확률이 90%다. 반대로 '회사가 이런저런 의도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걸 직원들이 잘 이해하고 따라와 주겠지'라고 경영자가 생각하고 있다면 직원들이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확률도 90%다. 회사는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이심전심 (以心傳心)'이라는 말이 딱히 통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GE의 전설적인 리더였던 잭 웰치(Jack Welch)는 회사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700번 이상 말해야 한다고 했단다. 설마 진짜 700번씩이나 말하라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여러 번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직장 내에서 명확한 의사전달은 쉽지 않다는 뜻일 게다.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걸 몰랐어?'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때 중의 하나가 아끼던 직원이 덜컥 퇴사하겠다는 말을 할 때다. 놀라서 면담을 하다 보면 '회사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성장의 기회가 더 있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막연히 혼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려버린 경우들이 많다. 회사 입장에서는 높은 평가를 하며 더 큰 그릇으로 성장시키려던 인재가 그걸 모른 채 혼자 자신의 입지에 대해 불안해하다가 회사를 나가게 되면 개인으로서도 회사로서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안다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사실 서로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해본 적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내 별명이 'Coffee Chat'이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직원들에게 별다방 커피를 사주겠다는 미끼로 길 건너 커피숍을 왔다 갔다 하며 수다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빌미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다 보면 대표이사와의 1:1 독대가 부담스러워 커피만 기쁜 마음으로 후딱 마시고 가는 직원들도 있지만 요즘은 그래도 내가 좀 편해졌는지 여러 가지 주제로 재미있게 수다 떨다 가는 직원들도 많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회사의 분위기나 숨겨진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기도 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때는 즉석에서 기꺼이 도와주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라고 해야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해야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해야 한다. (물론 표현하는 방식이 지혜로울 필요는 있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고, 사실 연애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실에서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라고 보수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내가 말하지 않은 내 생각을 누가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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