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라맘 Apr 23. 2021

첫째의 고민-빈 시간을 견지디 못하는 내 자신이 피곤해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 그리고 그 고충. 첫째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

삼남매 이야기 - 30대 초반을 가장 먼저 살아본 첫째의 고민 이야기, 그리고 동생들의 조언. 


태이 -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내 자신이 피곤해

너희도 알겠지만, 난 늘 소위 말해서 '빡세게' 살아왔잖아? 스무살이 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는 어줍잖은 개똥철학과 자존심으로 인해 용돈을 받지 않고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늘 학비나 생활비적인 측면에 있어서 자립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어. 물론 우리집이 나 하나 지원 못할 정도로 여러웠던 환경은 아니지만 동생들도 둘이나 있고,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집안의 돈도 적잖이 갖다 썼겠다, 솔직히 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측면도 있었고 미국에서 보냈던 학창시절동안 너무나 자연스레 용돈벌이건 아르바이트건 자기가 스스로 용돈 벌이하는 환경에 너무나 자연스레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벌어서 먹고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거든. 그게 내 나이 스무살이었지 아마.


영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을 하고 또 짬날 때마다 영어과외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어차피 어줍짢은 아르바이트를 할 바엔 경력도 쌓일 수 있는 회사를 다녀야겠다 생각하고 여러 회사를 메인으로 다니면서 학교는 학점을 쌓는 용도로만 겉치레로 다녔었지. 주중 낮에는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고 주중 저녁에는 토플학원에 강사로 일을 하며 주말에는 영어 라디오 방송 리포터로 활동하고 또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시시 때때로 고향에서 열리는 순천만 정원박람회의 통역자리에 봉사활동을 하는 이른바 포잡의 시기를 거치기도 했지. 그렇게 늘 빡세게 살던 나였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내 자신이 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밥벌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 


그렇게 빡센 서울살이를 거쳐낸 내가, 라오스에서 살면서 직장을 다닐 때, 회사가 끝나면 할 게 없는거야. 난 뭔가 내 시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싶은데. 자기 발전하기엔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이었고 그렇다고 막 풀어져서 놀기엔 놀 것도 없지, 같이 놀 사람도 없지. 그래서 야근이 끝나면 공부라도 했었어. 여기서 안주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어. 안 그래도 한번 늘어지면 한없이 풀어질 수 있는 환경인 동남아에서 생활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안락한 환경에 적응해 더 이상 이 편한 동남아 생활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 사람들은 흔히 ‘동남아’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편히 늘어져서 먹고 마시고 놀기 좋은 환경을 떠올리잖아? 실제로도 현실과 크게 다르진 않거든, 사시사철 햇살 따사롭고 맛있는 먹거리가 넘치는 데다 물가마저 싸고 놀기 좋으니 이처럼 풀어지기 좋은 환경이 없지.


그래서 난 더 내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 같아. 비록 내가 지금 미래를 위해 이 곳에서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노력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먼 훗날 전 세계를 평정하며 살려면, 앞으로 평생토록 이 곳에 살 것이 아니라면, 결코 이 곳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그래서 난 집에서 뭉근히 삶은 양배추마냥 늘어져있는 내 자신을 견디지 못해왔던 것 같아. 주말이건, 일이 끝나고 난 주중 밤이건, 생산적이지 못하게 보내는 시간을 너무나도 아까워 하는 편이야.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과 타바타를 하고, 러닝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비트빠른 음악이 아닌 성공을 위한 팟캐스트를 듣고, 출근전 머리말리는 시간을 쪼개어 피아노를 쳐내고, 출근하는 택시 안에서 틈내어 책을 읽고, 출근해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의 찰나의 순간을 이용하여 베트남어 인강을 듣고, 점심시간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비지니스 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과 만나 친분을 쌓고, 힘들고 치열한 업무가 끝나면 흐트러지지 않는 신체를 위해 골프건, 웨이트건, 수영이건, 러닝이건 뭐든 체력을 증진하는 방식을 택하고, 아 물론 식단도 하루에 한끼 이상은 클린하게 먹으려 노력하면서, 또 잠자기 전에는 어떻게해서든 다이어리건 블로그건 하루중에 떠돌아다니던 생각들을 텍스트로 잡아두려는 노력을 하지. 틈틈히 너희들과 이렇게 생각을 나누는 교환편지를 쓰는 것도 그 중 하나지.


이런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엿들어 본 사람들은 늘 말해. '너무 빡세게 살지 말라'고, '좀 내려놓으라'고. 어차피 인생 길게 가는 건데 그렇게 빡세게 살 필요가 있냐고.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어차피 월급쟁이고 내 회사 아닌데 밤잠 설쳐가며 큰 고민하고 또 가슴 썩혀가며 일할 필요없다고, 모든 시간을 빽빽하게 채워서 빡세게 살면 너무 피곤하다고. 결코 롱런할 수 없으며 결국엔 탈이 날거라고.


사실 그렇게 내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이 내가 이전에 얼마나 더 빡세게 살아왔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거야. 사실 내 기준에 있어서 요새처럼 사는 건 빡세게 사는 축에도 못 끼는데. 이정도면 몸과 마음이 굉장히 편한 시즌에 속하는데. 물론 그들의 말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야. 나도 나처럼 빡빡하게 사는 게 가끔은 피곤할 때가 있거든. 가끔은 나도 내려놓고 살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빨빨거리며 부던히 돌아다니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이유는 '개미의 삶'을 믿기 때문이야. 

개미는 먹이를 찾아 나설때 특정한 목적지를 찾아 직진하는 것이 아닌, 멀리서 봤을 땐 구불구불하고 복잡해보이는 정신없는 루트로 어지럽게 부지런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하지만 먹이를 찾는 순간, 본능적으로 본인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기에 가장 빠른 지름길로 돌아온다고 해. 본인이 걸어왔던 수많은 발자취들이 있었기에 가장 빠른 직선 코스를 몸으로 직접 터득한 셈이지. 한번 그 코스를 뚫게 되면 다른곳에서 쉬고 있거나 같은 방식으로 먹이를 찾던 일개 개미 군단들은 일제히 한 먹잇감을 향해 한 마리의 개미가 뚫어놓은 가장 빠른 길로 오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게 되는데 인생도 그런게 아닐까 싶어. 수만가지 시도를 해보고 이런저런 길을 걸어보며 진리를 터득하는 것. 그리고선 가장 빠른 길로 오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쉬지 않고 이런저런 운동을 해왔기에 어떤 운동이건 어느정도의 역치만 넘으면 빠른 퍼포먼스를 낼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일 역시도 다른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에 접목하여 단기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god의 ‘길’이라는 노래인데 가사 중 가장 와닿는 부분은 이거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순 없지만 알 순 없지만 알 순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순 없지만 알 순 없지만 알 순 없지만 오늘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이렇게 빡빡하고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순 없는 거잖아?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게 답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직까지 깨달은 바로는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면 어떻게든 다음의 방향성이 보이게 마련이고, 결국 본인이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좋은 기운이 찾아오리라 믿어.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빡세게 살 것 같아. 너희가 보기에 아 왜 큰누나는 저렇게 오바해서 열심히 살지? 굳이 언니처럼 열심히 살 필요 있나? 할 지라도 나의 이런 순간들이 모여 언젠가는 너희에게 좋은 본보기로 살아남을 날이 오리라 믿어. 


태린 - 답변 및 조언: 빈 시간을 채우는 것과 마음을 채우는 것은 다르다


항상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언니의 모습을 볼때면, 친언니동생 사이가 아닌 사회에서 오고 가며 알게 된 사이였다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거야.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머릿속에서 ‘언젠가는 해봐야지’라는 생각만 할 뿐, 점심시간을 쪼개고 혼자만의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현재 나만 하더라도, 배우고 싶은것과 해보고 싶은 것들 투성인데 괜히 경제적 부족함이나, 미래의 가족계획 같은 ‘현실적인 이유’를 나도 모르게 핑계거리로 방패삼아, 미루고 미루는 일들이 허다하니까. 단,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함인지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함인지는 언니가 곰곰히 생각해 봐야할 문제라고 봐.


예를 들어, 요가를 배우는 단순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단순히 ‘시간이 남는데, 남들도 다 하기도 하고 얘기도 들어봤으니까 요가나 한번 배워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과 ‘요즘 마음이 너무 힘드니, 스스로 명상하며 마음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은, 비록 소요하는 시간은 같을 지 몰라도 궁극적인 결과는 굉장히 다를 것이라 생각하거든.


어릴적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서기의 연속인 삶을 살았던 언니가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지.

“외로워”

사람들과 만나서 골프를 치고, 시간을 쪼개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아침저녁으로 사람들과 모여 러닝을 하고, 주말이면 또 다른 여러 사람과 만나 술을 마시고, 남는 시간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등, 남들이 봤을 때 마치 연예인의 삶이라 착각할 정도의 ‘빈 곳이 하나 없는 미친듯한 스케줄’속에서 몸은 24시간이 부족하게 살고 있는 언니인데, 왜 언니 마음속에서는 항상 ‘외롭다’는 감정이 없어지지 않는 걸까.


단 한번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고, 1년 뒤가 되었건 1분 뒤가 되었건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 또한 인생이라,  24시간이 부족하게 몸을 움직여가며 하고싶은 일들 다 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외로움으로 비어있는 마음 속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인생을 후회없이, ‘잘' 사는 방법이라 생각해.


혹 오해할 수도 있지만, 언니의 주변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듯 ‘빡세게 살지 말아라', ‘좀 내려놓고 살아라'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야. 그저 언니가 지금껏 혹처럼 달고 다닌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 여러 남자들을 만나봐도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언니의 마음 깊은 곳에 위치한 그 감정을 채우는 것이, 어쩌면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여러가지를 하는 것만큼이나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 뿐이지.


언니는 내가 살면서 봐온 사람들 중, 가장 몸을 바쁘게 움직여 가며 혹사시키는 사람인 동시에 마음속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큰 사람이야.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첫째라서’,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서’ 등을 이유로 말하겠지만.


최근 언니와 통화를 하며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 언니는 본인과 같은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본적이 없는데, 나는 언니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또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흔치 않게 봤다고. 첫째인 것부터 하며,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인생에서 버리지 못할 숙명으로 여기는 것, 하물며 어릴적 시작한 여러 나라에서의 유학생활과 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언니처럼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까지.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다른것은 하나 있더라고. 마음속 ‘외로움'의 크기.


사람마다 마음을 채우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언니의 마음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정말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 되지는 못한다는 거야. 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빈 시간을 가득 채우며 이것저것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지금까지 하루가 24시간 뿐인 것이 부족한 삶을 살아온 것. 그런 삶을 살아온 언니가 나의 친 언니라서 자랑스러워. 그저, 언니가 ‘진짜 나'의 모습을 좀더 바라보고, 단순히 남자친구 때문이 아닌 스스로 ‘외로움'으로 가득찬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


승완 - 답변 및 조언: 프로 관찰러 막내 김승완의 진단.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두세시간 운동이 고통보다는 행복에 가깝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작은누나에게는 그저 고통이고, 고역일 뿐인 것처럼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되고 힘든 감정도 받아들이는게 다를 것 같아. 큰누나 본인이 일을 운동하는 것처럼 즐기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본인의 취미만큼 일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잖아. 실제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큰누나 본인에 대해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운동하다가 넘어져 무릎에 같은 상처가 나도 누군가는 죽을듯이 아파하고, 누군가는 훌훌 털고 일어나듯 힘듬의 정도는 각자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것 아닐까? 큰누나가 하는 일과 운동을 똑같이 누군가에게 시킨다면 누구는 3일이면 지쳐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하던 것처럼 쉽게 해내는 사람도 있을거야. 큰누나에게 빡세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아닐까? 큰누나에게는 오히려 쉬엄쉬엄 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보기에는 번아웃이 올만큼 지치고 힘들게 일하는 것처럼 보일테니까. 


하지만 힘듬의 정도는 상대적이라고 해도 해야하는 일이,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많은 경우가 있어. 큰누나 본인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어느샌가 피로가 알게모르게 조금씩 쌓여 한번에 터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큰누나 본인이 '내 20대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한번씩은 쉬어줘야할 필요가 있어. 주변에서 쉬엄쉬엄하라고 하면 그 조언도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과거의 나와 비교하지 말고, 정말로 본인의 현재 컨디션이 어떤지 생각해서 쉬어야 할 때는 쉬어줘야지.


내가 생각했을 때 큰누나는 큰누나 스스로 바라본 본인의 모습에 자극을 많이 받는 것 같아.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본인의 모습에 취해있는 것 같아. 마치 호수 물결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처럼 말이야. 이렇게 열심히 사는 본인이 스스로 멋있고, 자랑스러운거지.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런 큰누나를 비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 목적이 무엇이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비판은 안되지.


지금까지는 잘 달려왔지만, 걱정 되는게 한가지 있어. 바로 큰누나에게 슬럼프가 오거나, 크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스스로의 우울감에 취해 삶의 원동력도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이 있어. 지금까지는 크게 안좋은 일이 없기도 했거니와 안좋은일이 있더라도 여행으로 풀며 '세계를 누비는 내 모습'에 취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 


큰누나가 극복하기 어려운 큰 시련은 오지 않는게 최고지만 그러한 시련이 온다면 그 때는 무언가에 취하기보다 주변에 도움을 구해보는게 어떨까 싶어. 사회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스물 다섯 대학생의 조언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큰누나가 어떤 일을 하던, 어떤 곳에 있던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거 잊지 않았으면 해.


작가의 이전글 삼 남매가 서로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