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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찬호 Jan 24. 2024

3-2. 대한민국 광주, 상처와 아픔이 담긴 그림자

소외되고 한 맺힌 이들을 향한 위로

지난 여행기에서는 빛고을이라는 광주의 이름에 걸맞게 반짝이는 예술작품과 웃음을 자아내는 도시의 풍경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광주라는 도시는 어둡고 슬픈 역사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문화예술 축제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다양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예술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당당히 존재감을 알리는 예술의 거리 표지판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 예술의 거리를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술의 거리에서는 잘 꾸며진 미술관이 아닌 자연 그대로(?), 날 것의 예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도자와 그림들을 볼 수 있었던 장터 그리고 이국적인 조각상들

아무런 기대 없이 들어선 예술의 거리는 유럽의 벼룩시장만큼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각종 도자기와 청자, 놋그릇 그리고 멋스러운 병풍과 그림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인지 로마인지 모를 양식의 이국적인 청동상과 거리 곳곳의 조각품들은 뒤편의 상가 간판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만나보기 힘든 다양한 화랑과 필방들은 창문 너머를 들여다보게 만들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와중에 발견한 멋스러운 한자 목판본은 장인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한,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광주비엔날레관 거시기홀

강렬했던 예술의 거리를 지나 도착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는 거시기홀 표지판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비엔날레관에 들어서서 보게 된 작품들은 모두 고유의 개성과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것들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재난 대처 방법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부터 수어를 활용한 작업까지. 예술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이러한 예술을 관람하는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

다음으로 엄정순 작가가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코없는 코끼리" 또한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는 장애 학생들이 청각, 촉각, 후각으로 느끼고 상상한 코끼리를 조형물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저 또한 이 코끼리 조형물들을 눈 감고 만져보며 그들이 상상하는 코끼리를 떠올려보았고,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세상을 읽어내는 방식을 어렴풋이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수만큼 다양한 관점을 갖고 살아감을 인지하길 바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통해 반성과 동시에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들

국제적인 행사인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만큼, 이국적이고 색다른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국적은 다양할지라도 사람이 가지는 아픔과 슬픈 역사를 공감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는 같다고 생각됩니다.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한 맺힌 그림자를 품은 도시입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여 얻게 된 자유는 수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해외 출신의 작가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아주었습니다. 이들의 예술이 끊임없이 기록하고 저항하고 연대해 나간다면, 지난 상처와 앞으로의 투쟁 역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초대전 4.3 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

많은 이들의 아픔을 안아주었던 광주비엔날레 전시 관람을 마친 후, 광주 시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도 여러 전시를 볼 수 있었지만, 박경훈 작가의 기획초대전 4.3 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 전시가 유독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1948년 4월 3일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되새기며 진실을 잊지 않으려는 의미를 작품에 담아내었습니다. 박경훈 작가의 목판화는 거칠고 묵묵하며 비통함을 절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가진 비극적인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낸 예술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소개해 드린 전시와 작품들 외에도 여성, 이주민과 난민, 소수자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지만 여전히 변두리에 내몰려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예술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반짝이고 화려한 빛의 예술이 우리의 삶에 활기와 유머를 불어넣는다면, 무겁고 슬픈 그림자의 예술은 소외된 이들을 안아주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빛고을 광주에서 만난 환한 풍경들 뒤에 존재하는 참혹한 현실의 그림자는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제목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와 같이, 풍요를 가져다주지만 넘치면 목숨을 위협하는 물처럼, 따스함과 온기를 주지만 그만큼의 그늘을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처럼, 세상의 명암을 느껴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세계디자인테마기행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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