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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 Feb 26. 2022

너 작가 안 하고 싶어?

일을 하면서 내 수명을 갉아 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어떤 곳보다 '마감'이 중요한 곳. '협업'이 중요한 곳에선 육체적,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내작가 시절에 내 노트북은 거의 2kg? 아니 체감상 3kg에 달했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내가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니면 선배들은 꼭 한 마디 했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어깨에 무리 온다고' 선배들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어깨가 아프다 못해 뉴스에서만 보던 손목터널 증후군까지 찾아와 밴드를 차고 일을 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것뿐인가. 작가 5년 차에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걷는데 조연출이 '작가님. 왜 다리를 흔들흔들하면서 걸으세요? 넘어질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땐 뭔 소리래? 하고 무시했는데 연말에 호된 감기에 걸려 이비인후과에 찾아갔더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말

'당장 갑상선 전문 병원에 가보시죠' 당시 옆팀에 있던 다른 작가도 앓고 있는 병이었다. 그 작가는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고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 회사에 자주 안 나오는 일이 많았기에 엄청 쫄보가 돼 병원에 찾아갔다. 눈물도 났다. 갑상선이 대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있던 나였는데 20대 중반에 갑자기 갑상선 호르몬 문제가 생기다니 너무 억울하잖아!! 참고로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갑상선 항진증 증상이었다. 눈썰미 빠른 조연출이 기가 막히게 캐치해낸 것이다. 그때 화냈으면 몹시 미안할 뻔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10년째 갑상선 항진증 약을 먹고 있다. 끊었다가 재발하고 끊었다가 재발하고. 갈 때마다 의사가 요즘 피곤함은 어떠세요? 하는데. 사실 방송 일이라는 게 늘 피곤했기에 갑상선일 때도 아닐 때도 나의 상태는 '언제나 피곤해요'였다. 덜 피곤함의 기준 같은 게 애초 있을 리 만무했다. 일단 약이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는 중이다. 피곤함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며. 


8년 차엔 '공황 장애'전조 증상이 찾아왔다.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출근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한 달은 단 하루도! 진짜 단 하루도 쉰 적 없이 일했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자본 적이 전무하다.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에서 디지털 미디어시티역으로 향하는 순간엔 사연 있는 여자처럼 창밖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귀에는 이명 증상이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역시 눈물을 펑펑 흘렀다. 한 달 내내 그랬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강한데 인정받기 힘들었던 상황과 잠까지 못 자니 불안, 예민함은 더해졌으리라. 결국 녹화 때 사고가 났다. 일반인 출연자에게 내가 숙지를 시킨다고 시켰는데 녹화가 자정이 넘어가니 일반인 출연자가 대본대로 따라오질 못한 것이다. 결국 밤 12시가 넘어 녹화가 끊어졌다. 부랴부랴 출연자에게 달려가 숙지를 하는 사이 나 대신 후배들이 선배에게 혼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선배 그거 제 실수예요'라고 말했다. 난 나 대신 후배들이 혼나는 게 더 억울했기 때문이다. 난 그때 선배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드라마 속 명대사 같았다. '너 작가 안 하고 싶어?' 난 속으로만 생각했다. '작가 안 하고 싶으면 제가 지금 잠 한 숨도 못 자고 밤새서 이 녹화장에 왔고 김밥 한 줄 먹으면서 이틀 밤을 버티고 있겠냐고' 지금 그 선배는 나에게 던진 이 말을 새까맣게 잊었겠지. 하지만 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다. 그렇게 녹화를 끝내고 잠시 대기하는 시간에 후배에게 말했다. '난 이 프로그램이랑 안 맞나 봐. 그만둬야 할까 봐' 그때 문밖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선배가 들어와 말했다. (드라마에서 문 밖에서 모든 상황을 듣는 게 클리셰가 아니다 진짜다라는 걸 그때 느꼈다.) '네가 사고 치고 지금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냐고' 선배에게 하소연한 것도 아닌데 엄청 섭섭하고 억울했다. 그 선배야말로 모든 일을 후배에게 떠넘겨 우리가 그 일까지 하느라 잠 못 잔 건 생각 안 해주고 오히려 혼을 내다니.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 선배 입장에선 사고 친 애가 그만둬야겠어.라고 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똑같이 말하고 있었으리라. 


그때부터였을까. 갑자기 기억을 잃고 잠시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 프로그램을 그만둔 후에도 그 증상은 간혹 얼굴을 들이밀었다. 연애를 하던 중 남자 친구가 집까지 바래다줬는데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나는 구역질을 하면 그 증상이 조금 해소됐기에 역사 화장실에 들려서 갈 테니 제발 지하철역에서 가라고 했다. 그리고 안녕! 하고 돌아서고 남친이 잘 갔나 하고 뒤돌아보는데 내가 없더란다. '또 쓰러진 것이다.' 검진을 받아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그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1년 정도가 지나서야 다시 쓰러지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내 몸을 갉아먹으면서 일했을까. 다행히 지금의 후배들은 여건이 많이 달라졌다. 


주 52시간 근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때로 꼰대 같은 선배를 만나면 면접 때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 52시간? 난 지금 주 300시간 일하는데?' 그럼 절대 그런 회사를 가지 마셔라. 


노트북은 저렴하고 가벼운 걸 구매해라. 특히 막내 때는 노트북 한 대를 회사에 붙박이장 해놓을 수 있는 연차가 아니다. 그러니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가벼운 게 최고고 노트북은 5년 이상 쓰기 힘드니 괜히 거금 들여 비싼 걸 사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정말 누구보다 나를 1순위로 여기자. 이것만큼 가장 어려운 일이 없지만 적어도 나를 가장 사랑해줄 수 있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오늘 하루도 모두들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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