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을 다니면서 느낀 건 정치판만큼이나 '신''사주'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어딜 가면 질문 1개에 1만 원씩 할 수가 있는데 총 8가지밖에 안 된다더라. 공동구매 개념으로 4명만 모아내면 1층 로비로 선생님이 오신다더라. 어디는 큰 TV 화면에 내 사주를 쭉 보여주고 훑어준다더라. 어느 지하철역에 가면 홀연히 왔다 홀연히 사라지는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이 정말 족집게라더라. 이번에 대박 드라마 쓴 작가가 여길 갔다더라. 심지어 최근엔 용한 점집만 싹 모아놓은 어플까지 등장했다. 참고로 위에 있는 점집.. 네. 제가 다 다녀왔네요.
사람들은 세상 이성적으로 생긴 내가 점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걸 들으면 '참' 의아해했다. 아 물론, 나도 점을 보고 오면 모든 기억이 휘발되기 때문에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상담?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가는 이유가 가장 세다. 내 친구는 그냥 정신과 같다고 생각하라고. 편하게 고민 상담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좀 낫다고 했다.
내 인생 첫 번째 신점은 친구 따라 보러 가는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점이라고 하면 겁이 나서 찾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점이라고 하면 엄청 무서운 거 아니야? 지레 겁을 먹었지만 오피스텔 같은 곳이었고 믹스커피가 준비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름을 호명하면 들어가는 구조였다. 같이 갔던 친구를 기다리는데 거의 3~40분? 1시간 정도 나오지 않는 거다. 할 이야기가 많나 보네 생각했고 친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왔다. 그때 나는 왜 울어! 하면서도 뭐가 이렇게 친구를 울린 걸까. 정말 용한 걸까? 싶었다. 거기다 신선생님께서 지금 너무 기가 빠졌으니 조금만 쉬어가자는 거 아닌가. 와. 여기 진짜 엄청나다!! 하면서 2-30분 대기 후 방 안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대뜸 건넨 한 마디 '여기 왜 왔어? 딱 봐도 친구 따라 강남 온 격인데' 헉. 어떻게 알았지. 난 큰 고민이 없었다. 진짜 친구 따라 간 거였는데. 이 집 용하네. 근데 그것만 기억에 남는다. 왜냐. 자고로 점이란 한 분이 날 집중해서 봐주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분은 신점이고 그 옆에 아내처럼 보이시는 분은 사주를 보고 계셨고 또 맞은편에는 이제 신내림을 받아서 공부를 한다는 학생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아카데미가 따로 없다. 친구 따라왔네 이거 하나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큰 기억에 남지 않았다. 아 내 돈 5만 원..
이번엔 홍대에서 신논현역으로 진출한 사주 선생님을 찾아갔다. 거기는 큰 TV 화면에 내 사주를 띄워놓고 풀어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주도 점점 IT화 되어가고 있다. 새롭게 만날 남자 친구랑 헤어지는 사주니 조심하라고 했다. 흠. 그렇구나~ 하고 친구 사주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당시 친구는 남자 친구가 자신을 화나게 했을 때 어떻게 감정 컨트롤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했다. 그때 난 생각했다. 와 저런 것도 물을 수가 있구나. 신묘한 답변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은 우리 보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자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켜세요' '3번 반복합니다' '자 이러면 화가 가라앉을 거예요' 뭐야. 그때야 말로 이 선생님을 향한 맹신이 와장창 깨지던 순간이었다.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 뭐 그런? 그곳을 난 다신 찾지 않게 됐다.
이번엔 유명한 PD가 대한민국 점집을 샅샅이 훑어서 밝혀낸 용하다고 알려진 신점 선생님을 찾아갔다. 예약도 어려웠다. 그런데 들어가니. 여기는 맛집 식당인가? 온갖 유명인사 사진이 쫙~ 붙어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신점을 보았다. '과거'는 참 기가 막히게 맞혔다. 그리고 남편과 나 둘 다 형제가 하나 더 있어.라는 의뭉스러운 답변까지 남겨주셨다. 사주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진짜 내가 왜 그랬을까) '엄마. 내가 오늘 사주를 보고 왔거든? 근데 내 위로 형제가 하나 더 있었다는 거야. 진짜야?' '뭘 그런 소리를 해?' '그니까. 근데 진짜 내 위에 형제가 있었어?''있었지''정말!!?' '응. 엄마 종로 살 때. 그때 최루탄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게 됐어' '와 그 집 대박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와 나 진짜 못돼 쳐 먹은 딸이 아닌가. 이런 질문을 엄마에게 이렇게! 하다니... 만나서 조심스럽게 물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와중에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는 또 무언가.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아. 진짜 그때 한 방 맞은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점에 미쳤었다 진짜. 그 와중에 나도 남편도 맞긴 또 맞았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친한 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시절에 유산 안 한 엄마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지금은 또 몇이나 될까. 생각보다 그런 경험 있는 엄마, 여자들 꽤 많아. 아 이것은 때려 맞힌 건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거기서 본 사주 중에 미래를 기가 막히게 맞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해놓고 올해 또 사주를 보러 갔다. 아니 요즘엔 신점, 타로, 사주까지 싹 모아놓은 어플이 있다지 않는가. 심지어 리뷰까지!!! 동네 근처에 꽤 잘 본다는 사주 집이 있어서 갔다. 참고로 이때 갑자기 버젓이 잘하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게 됐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나뿐 아니라 작가 전부 다. 싱숭생숭하는 마음을 잡고자 갔던 것이다. 거기서는 나보고 '유튜브 사주'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살다 살다 유튜브 사주요? '응 자기는 큰 채널보다 유튜브나 종편 있지? 종편이 잘 어울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소리야.. 사실 지금 내 이력은 지상파가 7~80%인데.. 그때부터 또 나의 신뢰는 와장창 깨졌다. 심지어 사주를 보는 내내 예약 어플 보시느라 사주도 뒷전 상담도 뒷전. 에라 다신 안 봐.
막내 작가 때는 얇은 월급으로 사주란 건 볼 수 없었고 조금 숨통이 트이는 서브작가가 되면서 '연애운'을 참 많이도 물어보고 다녔고. 메인작가가 됐던 시기에는 '이 프로그램이 잘 될까요'를 물어보고 다녔다. 근데 지금까지 미래를 맞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고까지 말해주셨던 사주썜. 제가 그 말을 얼마나 믿었는데. 차라리 네이버 오늘의 운세, 신한은행 어플에 있는 운세, 점심이 더 정확하게 맞는 것 같다. 지금도 12시 땡! 하면 네이버 오늘의 운세를 본다. 하 나란 여자. 이후에도 난 또 고민이 생기면 요즘 용한 사주 집아는 사람!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다니겠지.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럼없이 여기가 요즘 용하더라~라고 말하는 방송국 친구들이 늘 곁에 있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늘 업그레이드가 되다니. 고로 잘 맞혀서 매해 가는 사주 집이 없다는 것임에도 늘 사주를 맹신하는 이 놈의 방송국 놈들인 것이다. 안 맞아 안 맞아 하면서 또 복돈을 준비하고 있겠지. 혹시 용한 점 짐 있으면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