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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Jun 25. 2024

의사소통행위이론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근대적 거대 서사들은 합리적 이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졌었다. 그리고 합리성의 근거에는 옳음이 있음, 불변의 가치가 있음과 같은 목적론적 관점과 어떠한것이 유용하다는 실용론적 관점 그리고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소통적 관점이 전제가 되어있다. 근대성은 이러한 전제들을 토대로 역사는 발전하며 진보한다는 신념을 가진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인들은 근대적 불변의 가치들을 의심한다. 이들이 근대성을 의심하게 된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역사적 경험들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목적론적 결정론의 사유를 기계론적 결정론의 사유로 바꾸어갔으며, 기술의 발전을 통한 역사의 진보에 관한 신념은 세계대전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에 근거한 학살행위와 이것을 누구나 쉽게 가능하도록 해주는 효율적 병기들의 등장, 이러한 것들이 이성적인 인간의 사유에서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이전후의 지식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계하게 된 비판의 대상은 앞서 말한 비극을 촉발하게 한 전체주의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대 담론의 형성과정이었다. 기존 서구의 신념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독일의 2세대 비판이론가로 알려진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의 기초가 되는 의사소통행위로부터 시작하여 담론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오늘날 어떤 연구가 의사소통적 이성의 개념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면, 근본주의적 접근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형식화용론적 접근법이 고전적 초월철학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의심을 품고 있는 독자는 마지막장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성은 상징을 통해 구현되고 역사적 상황에서 구체화되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분명 단편적이고 왜곡되었을지라도, 이성의 실존하는 형태들을 우리 앞에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해지향적 행위의 합리적 내부구조를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 서구사회는 1960년대 말 이래 서구 합리주의의 유산이 더 이상 논란의 여지없이 타당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에 다가서고 있다. 복지국가적 타협의 토대 위에서 이룩된 국내상황의 안정화는 증가하는 사회심리적, 문화적 부대비용을 요구한다. 또 잠정적으로 억압된 것일 뿐 결코 극복되지 않은 강대국들 관계의 불안정성도 점점 더 강하게 의식된다. 이런 현상들을 이론적으로 다룰 때, 서구적 전통과 영감의 실체를 따져보아야 한다." -의사소통행위이론1 p.21


1.     생활세계의 식민화


 인간은 의사소통을 위하여 발언을 한다. 발언에는 타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장과 내용이 담겨다. 주장과 내용이 담긴 화자의 발언에는 발화되지는 않지만 발화된 것의 맥락을 이루어주는 전제들이 항상 있다. 이러한 전제들은 그 발화행위에는 의식되지 않으며 화자에게 항상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의 한 부분으로만 나타난다. 이 다양한 전제들은 문화적 확실성, 개인의 숙련된 직관적 지식 그리고 사회적 실천방식과 같은 것들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것들의 총체를 생활세계라 하였다. 생활세계는 개인에게 전제된 일상을 발화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되며, 한 상황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비해 어떤 식의 초월론적(transzendental) 지위를 갖는다. 의사소통 참여자들이 수행적 태도를 견지하는 한, 현재 사용되는 언어는 그들의 등뒤에 남아있다. 그것에 대해 화자는 세계 밖의 위치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생활세계의 비축지식은 구성원들에게 문제성이 없으며 공통으로 보증된 것으로 상정되는 배후확신을 공급한다.


 그런데 의사소통행위를 위해 전제되는 생활세계는 동시에 의사소통행위를 통해 합리화되는 것이다. 의사소통행위는 상호이해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시에 사회통합과 사회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참여자들이 “세계”에 눈을 돌려 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호이해를 도모하고, 또 상호이해 작업의 성과를 통하여 문화적 지식을 재생산하는 동안, 그들은 동시에 집합체에 대한 소속감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개인은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세계상을 가지게 된다.


 또한 생활세계는 사회체계와 같은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사회체계와 생활세계를 분리하며 사회적 진화를 이차적 분화과정으로 이해한다. 체계와 생활세계는, 전자의 복잡성과 후자의 합리성이 증가하면서 각각 체계와 생활세계로서 분화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서로로부터 분리된다. 사회발전으로 인한 사회체계의 복잡성이 커질수록 생활세계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분화된 사회체계에서 생활세계는 하나의 하부체계로 위축된다. 이러한 복잡성 증가는 생활세계의 구조적 분화에 의존하는 것이다. 체계가 복잡해져 생활세계에 더욱 강한 합리적 사회화 과정이 필요할 때,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는 체계 메커니즘이 요청된다. 체계 메커니즘은 합의에 의존한 행위조정이 대체될 수 없는 영역에서도, 즉 생활세계의 상징적 재생산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도 사회통합의 형식을 밀어낸다. 그러면 생활세계의 부속화는 식민지화의 형태를 띠게 된다.


 하버마스는 개인들이 점점 의사소통 행위를 통한 가치와 체계의 생성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진단하였다. 혼란스러운 현대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삶의 기반이 되는 토대는 점차 물화되어, 체계 메커니즘 속에 생활세계가 포섭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라 표현하였다.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현대사회는 점차 다원화되어 가며 거대담론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거대담론의 약화로 인하여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와 개성을 인정받기 위한 소통의 심리∙물질적 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비용의 증가는 개인에게 피로로 다가오며, 개인은 발생하는 피로를 회피하기 위해 가시적이고 보편적인 양적∙물적 재화들에 가치와 개성의 판단을 맡긴다. 그리하여 피로한 개인은 점차 가치의 창조자에서 수용자로 변모된다.


<표20> -의사소통행위이론2 p.207


2.     물화된 시간관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근대에서부터 현대사회까지 광범위한 범위에서 나타나고 있다.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도구적 합리성에 기반한 효율성은 인간의 개인적인 시간마저 물질적 가치로 변모시켰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인의 시간은 가능한 적은 시간 동안 최대의 생산성을 위해 일괄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는 양적 단위로 여겨진다. 그리고 시간을 물화된 시선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감상이나 사색과 같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은 통제되어야 하는 비생산적인 시간이 된다. 양적단위의 시간관이 시간을 측정과 교환이 가능한 객관적 단위로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물화된 시간관은 인간을 기계론적 결정론에 저항할 수 없는 생산기계로 전락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베르그송이 밝혔듯이 인간의 시간의식은 인간의 의식작용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물화된 시간관은 인간의 의식작용을 단일한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재화로 치부하게 한다.


 서적이나 SNS와 같은 미디어에서 많이 통용되는 ‘자기 계발’이란 키워드는 현대사회 속 물화된 시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자기 계발 미디어에서는 시간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말한다. 그러나 자기 계발적 메시지들에는 그 행위들이 무엇에 대한 가치인지는 논하지 않으며, 단지 ‘성공’이라는 단어에 소박한 지향점만을 제시한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개인에게 확고한 신념을 주입하며 가치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치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한다. 자기 계발적 메시지는 개인들이 의사소통을 통한 합의로 나타나는 가치의 창조과정을 은폐시키며 가치의 불변성을 개인에게 항상 자명한 것으로 여기도록 한다. 의문을 가지지 않는 개인은 자신의 노력이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성공인지도 모른 채 노력만을 반복하게 된다.


"매체공론장들은 가능한 의사소통들의 지평을 위계질서화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것의 제한성을 허물기도 한다. 한 측면이 다른 측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바로 이 때문에 대중매체는 양가적 잠재력을 갖는다. 대중매체는 중앙집중화된 네트워크 속에서 의사소통의 흐름을 중심에서 주변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유도할 경우, 사회적 통제의 효율성을 상당히 강화시켜 준다. 그렇지만 이런 권위적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은 항상 불안정한데, 의사솥통의 구조 자체안에 해방적 잠재력이라는 평형추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상호이해 과정의 차원을 높이고 동시에 그것을 집약-응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상호작용을 비판 가능한 타당성 주장들에 대한 '예/아니요'의 입장표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단지 초기 단계에서만 그렇다. 추상화되고 정리된 의사소통들도 책임능력이 있는 행위자들의 이의제기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될 수는 없다. 이러한 양가성은 경험주의적으로 축소되지 않고 의사소통적 일상실천의 물화 차원도 고려하는 의사소통연구들에 의해  확인된다." -의사소통행위이론2 p.597


3.     이해지향적 합리성


 자신의 행위가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개인이 기계적 삶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합리성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능력은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적 합리성이전에 근본적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지향적 합리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는 유기체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 의식의 발달과정을 설명하였다. 미드는 개인의 자아 형성과 일반적 타자와의 의사소통이 사회적 구조화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그에 맞게 조절함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고 자아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규범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개인이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개인은 홀로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의 자아는 타인의 반응이나 인식과 분리되어 있으며, 주로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채택하기 시작할 때, 일반화된 다른(Generalized Other) 개념이 형성되며, 이는 다른 사람들의 역할과 기대를 내면화하여 자아를 형성한다. 그리고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타인의 시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아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형성되고 영향을 받는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이를 통해 자아의 발전과 사회적 적응이 이루어진다. 미드가 밝히듯이 개인은 서로를 이해하며 타자의 내면화를 통해 자신이 되고자 한다.


 하버마스는 미드의 이론을 발전시켜 발화행위의 세 가지 구조적 구성요소를 제시하였다. 첫째, 명제적 요소는 문장이나 발화의 내용적인 측면을 나타낸다. 즉, 어떤 주장, 진술, 혹은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요소는 말 그대로 문장이나 발화의 "무엇"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둘째, 발화수반적 요소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발화의 의도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즉, 말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 어떤 행위를 의도하는지를 나타낸다. 이 요소는 문장이나 발화의 "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셋째, 표출적 요소는 발화자의 감정, 태도, 의사를 나타낸다. 즉, 어떤 발화가 발화자의 감정이나 태도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화행의 세 가지 구성요소는 상호주관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개인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 소통하고 이해한다.


"'합리적'이란 표현은 어느 경우에 사용하든, 우리는 합리성과 지식에 긴밀한 관계를 상정한다. 우리의 지식은 명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의 의견은 진술의 형태를 취할 때 분명하게 표현될 수 있다. 나는 이런 지식 개념을 다른 설명 없이 전제하려 한다. 합리성은 인식의 소유보다는 언어 및 행위 능력을 가진 주체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사용하는가에 더 관계되기 때문이다. 언어적 표현에서 지식이 명시적으로 표현된다면, 목표지향적 행위에서는 능력, 즉 암무적 지식이 표현된다.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know how)도 원칙적으로는 사실에 대한 지식(know that)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참이거나 거짓, 혹은 효율적이거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 표현들과의 연관에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적 실천에 내재하는 합리성은 더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이 합리성은 의사소통적 행위를 성찰적 수단을 가지고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각 의사소통행위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논증이 있음을 시사한다." -의사소통행위이론1 p.43


 소통 목적의 망각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을 망각하게 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도입하면 이제 이데올로기를 통한 간접적 사회 비판이 아닌, 이해지향적 언어사용 속에 들어 있는 의사소통적 이성 개념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하여 논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고대로부터 이성의 힘으로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은 왜 소통의 가치를 점차 망각하게 되었을까? 하버마스는 사회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답해주고자 한다. 우리들은 함께 세계를 살아가며 서로를 창조하는 동료이다. 그런데 어째서 타자의 이해와 존중이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왜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행해지지 않는 것인지, 이에 대한 고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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