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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Jul 31. 2024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고정적인 불변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신념이 점차 그 힘을 잃어가며 윤리학과 미학의 가치가 의심받던 20세기 초. 옳음과 정의라는 가치의 불변성 마저 흔들리며 감각적 확실성만이 우리에게 확고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가 서구 사회를 뒤흔들고 있을 때, 정의라는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이다.  롤스는 40년 동안 정의라는 주제 하나만을 집요하게 탐구였으며, 이러한 그의 연구는 1971년 세기의 명작 <정의론>의 출간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롤스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했던 가치들이 실제 사회에선 왜 적용되지 않은 채 유명무실하였는지 고찰하였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특히 서구의 합리주의의 바탕이 되었던 공리주의를 분석하여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사회의 협동체제 속에서 정의가 갖는 역할을 기술하고 정의의 일차적 주체인 사회의 기본 구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다음에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기본 이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사회계약론의 임장을 보다 일반화하고 고도로 추상화한 것이다. 사회계약의 개념은 최초의 상황이란 말로 바뀌었는데, 이는 정의의 원칙에 대한 원초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 마련된 논의에 있어서의 몇 가지 절차상의 제약 조건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설명과 대조를 ㅜ이해서 고전적 공리주의와 직관주의의 정의관을 다루고, 이들의 견해와 공정으로서의 정의 간의 차이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주요 의도는, 우리의 철학적인 전통을 오래도록 지배해 온 이러한 학설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정의론을 전개하는 데 있다." -정의론 p35


 고전적 공리주의는 근대의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자연상태에 놓여 있었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각각의 개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하지만 서로가 소통하지는 않는다. 여기서의 자유는 프로메테우스적인 능력의 자유가 아닌 선택의 자유를 뜻한다. 시간이 흘러 자연상태의 인간은 점차 타자와 조우하게 되어 소통을 하고 상호 인정을 하여 서로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인은 서로가 상호 합의하여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지만 서로 침해하지 않는 계약을 맺게 되어, 공동체의 안정이 개인의 권리의 보호가 되는 사회계약이 체결된다. 이러한 계약을 통해 개인의 주관적 기호가 담긴 의지가 아닌 모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공동의 원칙, 즉 일반의지가 탄생한다. 이것이 우리가 정의라 부를 수 있는 최상의 가치관의 생성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세워진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공리주의를 따르는 사회는 다수가 합의하여 동의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양적 만족만을 논하는 이러한 체계 안에서는 다수에 동의하지 못하는 소수자의 행복은 존중받지 못하며 당연히 인내해야 될 것으로 여겨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인간의 가치관을 정하는 최상위의 원칙이 된다면 두 명의 목숨을 위해 한 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 또한 정당화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최상의 가치로 우선시 되는 윤리관이 인간성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양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윤리관은 결국 인간 가치의 수호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일종의 문제처리 메커니즘으로 전락해 버리며, 이것은 도구적 합리성만을 추종하는 기계적 인간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 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다수가 누릴 보다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좋다는 것을 정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평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 인간 생활의 제1 덕목으로서 진리와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것이다." -정의론 p.36


 롤스는 사회계약론과 공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의관의 기틀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큰 선을 줄지라도 작은 자유를 빼앗는다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되며,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하고, 정의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는 어떠한 사회적 이득이나 정치적 거래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롤스는 자연상태라는 태초적 인간의 개념을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정의의 원칙들은 자신의 이익 증진에 관심을 가진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 즉 '원초적 입장'에서 채택하게 될 원칙들이며, 정의의 원칙을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공정으로서의 정의로 합의할 수 있다. 여기서 최초의 상황이란 전통적 사회 계약론에서 말하는 자연 상태와 같은 것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의론을 설명하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최초의 의미는 역사적인 의미가 아닌 논리적 의미로 설명한다. 그리고 롤스는 원초적 입장을 보완하기 위하여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 또한 도입한다. 무지의 베일은 합의 당사자인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자연적 상태나 조건을 알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는 최초의 상황만으로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성립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으므로 무지의 베일이라는 안전장치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무지의 베일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조건에 따른 유리한 원칙들을 따지지 못해서 공정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이 전제된 원초적 입장을 가지는 개인들이 도출하는 원칙들이 정의의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롤스에 따르면 원초적 입장을 가지는 개인들은 자연스럽게 정의의 두 원칙을 도출한다. 정의의 제1 원칙은 '자유 우선의 원칙'이다. 이것은 개개인이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체계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에 있는 개인들을 자신들만의 인생 계획과 목적을 지닌 자유로운 인격체로 보았고 자유로운 인격체들이 자신들의 인생 계획을 실현하고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 우선성이란 기본적 자유가 실질적으로 확립된 후라도 경제적 복지를 얻기 위해 불평등한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의 제1 원칙은 이어질 제2 원칙에 선행하여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만 한다.


 정의의 제2 원칙은 '평등 제한의 원칙'이다. 이것은 소득과 재산을 분배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과 책임 그리고 명령 계통 등에서 어떻게 차등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칙이다. 소득과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분배해야 한다. 롤스는 2원칙을 첫째, 모든 사람의 이익이 기대되어야 하고, 둘째,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부여되어야 하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제2원칙은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불평등이 사회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을 무한대로 허용하는 것이 아닌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고 있으므로 불평등이 사회의 정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롤스는 사회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최소 수혜자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지점이 불평등의 한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우리는 인류애와 정의감을 구분해야만 한다. 그 차이는 양자가 모두 정의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포함하는 까닭에 서로 다른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 전자는 이러한 욕구가 보다 강하고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나타나며, 정의의 의무에 더하여 모든 자연적 의무들을 수행하고 심지어 그러한 요구 이상을 넘어가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인류애는 정의감보다 더 포괄적이며 의무를 넘어서는 행위를 진작시키지만 정의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당사자의 상호 무관심성이라는 가정이 이타심과 인류애를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체계 속에서 정당하게 해석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사자는 상호 무관심하여 상충하는 1차적 욕구를 가졌다는 가정에서 우리가 출발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포괄적인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왜냐하면 일단 정당성과 정의의 원칙이 주어지면 그것은 다른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덕목을 규정하는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목은 도덕감, 다시 말하면 보다 고차적인 욕구의 규제를 받는 의향과 경향의 체계이며 이 경우 고차적인 욕구란 해당되는 도덕 원칙으로부터 행위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정의론 p.263


 롤스는 인간의 합리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의관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합리성을 의심하며 고뇌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게도 이러한 그의 정의관이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롤스의 이러한 정의관은 우리가 실천적으로 추구할만한 가치체계를 알기 쉽게 제시해 준다. 물론 이것의 실천은 우리의 몫이지만 말이다. 인간의 실존론적 관점과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롤스의 정의관에 대한 고찰과 함께 고려된다면 우리가 추구할만한 가치와 아름다운 조화의 상태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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