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이란 이런 것
아기를 낳기 전,
과거 나의 치기 어린 다짐들 몇 가지.
아기가 울어도 적당히 모른 척해야지
모른 척은 무슨. 우는 거 보면 마음 아프다.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나마 우리 아기는 신생아 때부터 하루에 한 번 울까 말까 할 정도로 잘 안 우는 편. 그마저도 주로 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남편이 보는 늦은 밤 잠투정으로 울곤 하는데 샤워하면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마음 졸인다. 휘뚜루마뚜루 씻고 나와 달래려고 애를 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은 울음에 담담하다. 오히려 적당히 울어야 지쳐서 잔다며 잠자코 놔두는데 나보다 무덤덤한 그래서 좋기도 하고(같이 발 동동 거리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다.
등 센서 없게, 안아안아병 생기지 않게 많이 안아주지 말아야지
우선 조리원을 택한 이상 불가능하다. 태어나서 조리원 선생님들에게, 또 산후도우미 이모님 품에 이미 익숙해진 아가는 안아안아병 예약. 또 그런 글을 보았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있다가 갑자기 나왔더니 숨도 쉬어야 해, 먹고 소화도 시키고 응가도 싸야 해, 성장통으로 몸도 아프지 아기는 적응은 해야겠고 믿는 건 엄마밖에 없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울음밖에 없는데 그걸 내버려 두다니. 신생아 땐 바로바로 안아주고 욕구 충족을 해줘야 정서에 좋다고 한다. 아기를 내버려 두면 결국 울음을 그친다고 하지만 그건 손 안 타는 게 아니라 엄마랑 애착 형성도 하기 전에 아기가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우는 거라고. 그 글을 보고 나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안아줄 수 있을 때 많이 안아주고 사랑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그리고 누워있는 아기를 놀아주는 최고의 방법은 엄마의 애정 어린 스킨십이라 생각한다.
곧바로 분리 수면시켜서 독립심 키워줘야지
학창 시절부터 거의 커서까지 부모님과 한방에서 같이 잤다. 좋은 점이라면 밤과 어둠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있다는 것, 안 좋은 점이라면 늦게까지 놀지 못한다는 것과 내 사생활이 없다는 점? 항상 듣던 말이 밤 9시만 넘으면 "늦었다. 자자". 폰을 만지고 있으면 "폰 하지 말고 자." 지금의 내 아기는 무서움을 극복하는 법, 외로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하고 스스로 독립심을 키워주고 싶다. 그리고 24시간 오로지 아기만을 위한 생활이 아니라 남편과 나의 생활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수면교육을 할 생각이었다. 근데 어느 유명인 아기의 SIDS(영유아 돌연사 증후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따뜻한 엄마 뱃속에서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니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 거냐며. 태어난 아기의 공포심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어두운 방에 홀로 남겨져 혼자 잠드는 아기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한 공간에 침대만 달리해서 자고 있다. 무서워하는 것 같으면 가슴을 토닥이며 말해준다. "괜찮아. 엄마 아빠 옆에 있잖아. 어디 안 가고 방에 같이 있을게. 같이 코 자자~."
백일의 기적이라고 했나. 별다른 수면교육 없이도 97일 되던 날부터 밤잠은 등 대고 알아서 자기 시작했다. 안눕법이니 쉬닥법이니, 퍼버법이니로 아기를 울리지 않았다. 아기침대가 작아지게 되면, 새로운 침대를 들이면서 공간은 차차 분리해야지.
아기 낳으면 장난감은 사지 않겠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나에게, 아기를 위한 장난감을 사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그리고 자연이 최고의 장난감이 되도록 하겠다고. 그런데 어쩌나, 코로나에 추위에 마음껏 밖에서 놀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에서 24시간 보내려면 아기를 놀아줄 수 있는 건 이 한 몸뿐인데. 그러나 엄마는 수시로 집안일도 해야 한다. 처음엔 침대에 누운 아기에게 내가 직접 만든 흑백모빌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지만 점점 커가면서 행동반경이 안방에서 거실로 확장되면서 장난감 없이는 안된다. 타이니 이모님과 30분, 체육관 삼촌과 30분. 이렇게 놀아야 그 틈에 세탁도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린다. 또 밥도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왕 사는 거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을 수있는 장난감을 사자. 그러나 아기의 장난감은 비비드 한 컬러가 대부분이다. 채도 낮은 컬러나 우드톤을 좋아하는 나로선 몹시 거슬린다. 하지만 아기 장난감이 컬러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시각적으로 눈이 확 들어오는 비비드 컬러들이 아기의 뇌 발달과 집중력을 높이는데 좋다고 한다. 그러니 파스텔톤의 예쁜 디즈니모빌보다 다소 촌스럽고 강렬한 타이니러브모빌이 괜히 사랑받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엄마의 취향은 잠시 접어둔다.
100일 안에 복직해야지
정말 멋모르고 내뱉은 말이다. 임신기간에 "언제 다시 일하세요?"라는 말에 호기롭게 "3개월 뒤부터요"라 당당히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육아에 무지했구나 싶다. 물론 몇 가지가 뒷받침되면 가능하다. 분유를 해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도 먹일 수 있는 수유 형태, 그리고 육아를 해줄 다른 이의 도움이 가까이에서 가능한 상태. 만약 내가 완모가 아닌 완분이라면, 또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실 수 있는 거리와 여건이 된다면 빠른 복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안되니 일 년은 돼야, 단유를 하고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아마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막 굴리며(?) 키워야지
나는 도시에서 자랐다. 흙을 만지고 땅에서 구르는 시골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못 자라서 나는 면역력이 약하다는 생각이었다. 비염과 결막염 등 온갖 알레르기의 집합소인 나는 태어나는 아기만은 면역력이 강했으면 했다. 유전적인 것도 잔질병치레없는 아빠를 닮았으면 했고, 태어나서도 막 굴리며(?) 키워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눈에 눈물만 고여있거나 속눈썹이 많이 빠지는 것 같아도 혹시 나처럼 속눈썹이 눈을 찔러 시력이 나빠지고 결막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코안에 코딱지가 유독 자주 생기는 것 같고 숨 쉬는 소리가 쌕쌕 커도 비염은 아닌지.. 작은 시그널에도 긴장하는 중이다. 어제 아저씨 한 분이 담배를 피우던 손으로 아기의 손에 지폐를 쥐어준 거에 다소 화나 물티슈와 가제손수건으로 두 번씩 손을 닦아주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먼지나 벌레에는 그다지 막 호들갑 떨지는 않는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면역이 생겼나 보다.
아기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육아에 관한 수많은 다짐은
뜬구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육아를 하면서
조금씩 현실주의자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