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n년 도시여자의 우당탕당 시골라이프
어느 날엔가 친정오빠가 우리집에 왔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말한다.
아... 콜라 안 사 왔다.
1일 1콜라 마시는 친정 삼대(외할머니-엄마-오빠)
그러나 남편과 나는 콜라 질색하는 이들이라
우리집에 콜라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다 이미 소맥을 두 잔 했으니
운전도 할 수 없다.
오빠가 물었다.
"걸어 나가서 살 곳 없나?”
“응... 전혀"
“옆마을에도?”
“마을에 슈퍼 하나 없다. “
“하긴 있어도 이 밤까지 열리도 없구나”
오빠와 대화하다 문득 내가 시골에서 육아하느라 힘들었구나 다시금 자각했다.
시골 [country]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이나 지방.
나는 시골에 산다.
인구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함양.
어디 사세요? 물음에 답하면
그럼 대개
“함안이요?“ 라며 되묻거나,
“경상도예요 전라도예요?”
질문이 이어진다.
설명이 필요한 곳, 이곳은 함양
하긴, 나도 이곳에 오기 전까진
함양이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 몰랐으니.
이곳에 오게 된 건 한마디로 ‘그냥’이었다.
서울에서 3년, 대구에서 수십 년 살았고
양가 조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대부분 도시분들이라
시골이란 나에게 막연히
언젠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로망의 장소였다.
그러다 힘든 번아웃 시기가 왔고,
인간 골든리트리버라 불릴 정도로 사람 좋아하는
엔프피인 내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어!!!!”를 외치던 중에 우연히 함양에 놀러 왔고
어쩌다 매료되어 아주 살게 되었다.
문제는 한평생 시골살이해 본 적 없는 도시촌뜨기가
태어난 지 갓 한 달된 신생아를 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정말 깡시골에 왔다는 것이다.
육아를 할 때 필수수단이 세 가지 있다.
바로 사람, 사람, 사람.
첫 째는 육아를 도와줄 사람. 친정부모든 시부모든 산후도우미든 혹은 가까이서 공동육아를 할 육아동지든. 누가 되었든지 간에.
두 번째는 육아템을 배송해 줄 사람. 쿠팡맨을 비롯한 여러 택배기사님들.
세 번째는 끼니를 전해줄 사람. 바로 배달의 민족 라이더분들.
그런데 나는 친정과 시댁 모두 1~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고, 양가부모님 모두 일을 하신다. 산후도우미도 믿을만한 업체가 없어 부르지 못했다. 공동육아를 하며 같이 힘듦을 나눌 육아동지마저 가까이 없다.
두 번째, 택배는 온다. 아마 우리나라에 택배가 안 오는 곳은 없을 거다. 그러나 육아맘들에게 필수라는 로켓배송은 나에겐 해당사항 없음을...^^ 아기를 키우다 급하게 떨어진 기저귀나 식료품을 당장 내일 아침 받을 수가 없어 최소 2~3일 전에 미리 미리 구비해두어야 한다.
세 번째, 끼니를 전해줄 라이더의 부재. 우리집은 배달의 민족이 안된다. 읍내까지 왕복 30분 거릴 직접 포장해오는 수밖에 없다. 하다 못해 걸어서 갈 수 있는 슈퍼나 편의점도 없으니 말 다했지.
이 사람, 사람, 사람이 없으니
육아를 하며 나는 점점 피골이 상접해져 갔다.
내 몸을 갈아 아기를 키웠고, 먹였고, 나는 말라갔다. (임신 전보다 체중도 빠지고 타고난 근육도 사라졌다.)
마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집도 불빛도 없는 외딴집에
사니 무섭지 않냐고들 묻는다.
다행히 우리집 마당에는 든든한 지킴이가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해엔가
“갖다 놨으니(?) 키워라.” 하며 시아버지가 선물한
진돗개 우주.
집안에서는 아기가 나를 지켜주고
집 밖에서는 우주가 지켜준다 생각하며
남편이 야근하거나 산불 끄느라 오지 못하는
숱한 밤을 이겨냈다.
어쩌다 시골 생활도 처음,
강아지 키우기도 처음,
한 인간을 키워내는 건 더더욱 처음
이 세 가지를 같이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는가.
그야말로 우당탕탕 오합지졸 시골살이 애개육아이다.
시골에서는 쓰레기도 집 앞에 놓을 수가 없다. 수거를 안 해가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 마을 공동 쓰레기 배출장에 버리고 와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이 수고해 주는 일.
강아지는, 우리집이 도로 옆에 바로 붙어 있는 데다 담장이 없는 넓은 마당인지라 할 수 없이 목줄을 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에너지가 왕성한 대형견이라 산책을 자주 시켜줘야 한다. 내가 임신했을 때는 되려 틈틈이 시켜줬는데, 유모차 절대 안타는 아기와 개를 동시에 데리고 산책하는 게 무리라 난 도통 산책을 못 시켜줘 항상 미안할 따름. 얼마 전 부쩍 날이 풀린 날 남편과 나는 큰맘 먹고 첫 밤산책을 나섰다. 아기와 개와 함께. 개는 자꾸 논밭으로 뛰어들어가고 아기는 같이 가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가고 우리는 뚝방길에서 떨어질까 무섭고 얼마나 마음 졸였나 모른다. 둘일 때 매일 같이 하던 일이 이렇게 어렵게 할 일이냐며.
그리고 역시 난생처음인 인간 키워내기... 내가 초보엄마인 것도 있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일명 하이 니즈 베이비(high-needs baby) 아이를 키우는 까닭에 더욱더 난항을 겪고 있다. 26개월 되는 며칠 뒤면 드디어 긴긴 가정보육을 마치고 어린이집을 간다만 동시에 나는 일을 재개할 예정이라
시골살이 + 애개육아 + 일까지 앞으로 걸어갈 길이 얼마나 더 우당탕탕 여정일지 감도 안온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며, 그저 오늘은 잠 안 자는 아이가 부디 자정만 넘기지 말길 하는 간절함을 안고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