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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Nov 10. 2024

제가 고도 위험 상태라고요?

저, 우울증 환자인가요



초저녁만 되면 방전되는 요즘,

어제도 퇴근 후 저녁 먹는데 연신 하품을 하다가

아이를 재우러 평소보다 이르게 방에 들어왔다.

10시가 채 안되어 일찍 잠든 아이를 확인하자마자

잠들었다.

그리고 밝아온 아침, 중간중간 눈은 떴지만

9시가 돼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얼마만인지 모를 호캉스 가는 날인데

설렘보다는 짜증마저 났다.

컨디션 = 태도가 되어서.

11시간 자고도 온몸이 쿡쿡.

또다. 미약한 몸살끼.

한 달 넘게 나를 괴롭히는 증세.

물에 푹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진 몸은

마치 땅으로 꺼지는 것만 같다.


며칠 전 병원에 갔다.

잘 아프고 잘 다치는 터라

살면서 몸 고치는 병원은 참 많이 다녔다.

특히 육체적 노동이 상당한 식품제조 일을 하면서는

정형외과, 한의원은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찾은 곳은 정신과.

요즘은 정신건강의학과라고 부르는 그곳.

갈 일도 갈 생각도 단연코 한 적이 없었다.

평소 우울한 건 얼마든지 의지로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활력을 찾으면 된다고.


그런데 '하고잡이와 먹고잡이'였던 내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사라지고

자도 자도 잠이 부족한 과수면에,

심장이 뛸 만큼 불안하고,

이유 모를 몸의 통증이 오고,

나를 무쓸모 인간이라 여기고,

일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 깨달은 순간

이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생각이 들었다.


식욕 많던 내가 알약 하나로 배불러질 수만 있다면 생각했으니.



인생드라마로 여기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당시

이해가 가지 않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신민아가 우울증을 표현한 장면.

남편이 깨운 뒤에야 침대에서 일어나고,

일어난 뒤에도

온몸이 물에 축 젖어 불어있는 듯한 느낌.

대낮에 버스에 탔는데 다른 사람은 환한데

나만 깜깜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오는 기분.

몇 해 전 남편과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면서

대체 저게 어떤 기분이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을까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 장면이

2024년의 나에게 그대로 찾아왔다.


우울한 사람은 정신력이 나약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잠이 많은 사람은 게으르다 생각한 나였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비슷하게 또 다르게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남편과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살면서 올 일 없을 줄 알았던 이곳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가 신기했고,

평일 이른 아침임에도 꽤 환자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 소파에 앉아 간호사가 준 4장짜리 질문지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형 기분장애 질문지 K-Mood Disorder Questionnaire' 2장과

'한국판 벡우울척도 (Korean - Beck Depression Inventory)' 2장으로 구성된.





체크해 나가는데 생각보다 해당되는 증상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진료실에 들어갔고

원장님의 책상 위에 올려진 결과표에서

BDI 지수 : 36점 "고도"

라는 걸 보았다.


나중에 심각도 평가를 찾아보니

36점이니 꽤나 심한 우울에 해당하는 나였다.



모르는 남에게 이렇게까지 나의 속마음과 정신 상태를 말한다는 게

어색하고 또 낯선 광경이었다.

"언제부터였나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처음으로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집밖으로 뛰쳐나간

약한 공황장애를 겪었던 2년 전에 첫 발현된 게 아닌가 싶다고.

그 외 신체적인 증상은 최근 한 달 동안 겪은 것이고

몇 달 전 일이 계기가 된 것 샅다고.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각이나 필터링 없이

그냥 줄줄 얘기하면서 손이 점차 차가워지고 또다시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최근 의심되는 adhd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의사는 가지고 있던 기질이 우울증으로 인해 심해질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판단 내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니

일단 약을 복용하는 게 좋겠다 한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진료실에 다른 의사 선생님과 진료를 본 후에

홀에서 다시 만났다.

"너도 이 얘기했어?"

"나도 말했어"

남편은 다행히도 미약한 편이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1층에 있는 약국으로 내려와

각자 처방받은 약을 탔다.


신기하게도 약이 다르네? 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진주.

아이 소아과 가려고, 아울렛에 쇼핑하려고, 미용실에 머리 하려고

그것도 아니면 매년 가을 우리의 의식인 '진주남강유등축제' 보러나 왔지

이렇게 마음 고치러 병원에, 그것도 둘이 같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우린

앞으로 얼마간이 될지 모를

부부 동반 정신과 치료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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