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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를 몰아 약 먹자

약을 전혀 먹지 않던 사람이 하루에 7가지의 약을 먹게 되기까지.

by 초원


무슨 이런 제목이 다 있을까.

그런데 진짜다.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약포비아가 있어 약을 안 먹었다. 물약은 쓰든 달든 목 넘김이 싫었고 알약은 목구멍이 작은지 걸리기 일쑤였다. 감기가 걸려도 자연 치유될 거라며 잘 먹지 않았고, 극심한 생리통으로 고생하면서 어지간히도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남편이 사주는 영양제조차 방치하다 유통기한을 넘기곤 했다. 유일하게 잘 챙겨 먹었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내 몸속에 생명이 있던 열 달. 내가 아니라 뱃속의 아기를 위해 임산부 필수영양제들이라는 건 부지런히도 챙겨 먹었다. 그리고 출산 후 또다시 먹는 둥 마는 둥 해온 영양제. 그런 내가 요즘은 하루에 수많은 약을 먹고 있다. 살기 위해서.


하루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만약 차밍이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내가 살아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100세 시대라는데 이제 겨우 1/3 살았는데, 앞으로 살아온 날만큼도 못살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겁이 덜컥 났다.


병원에서 의사분들이 “먹지 않으면 큰일 나요.”라는 말에도 예사로 넘기고 (약의 부작용이 무섭기도 했고, 도중에 회복되었다는 자가진단으로 인해) 약을 중단했다가 그 큰일이 나버리고야 말았다. 약을 안 먹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걸릴게 걸리고야만 것인지(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나의 자책을 덜어주시게끔 “워낙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걸 거다.”라고 해주셨다.) 50대도 아닌 내가 골다공증 판정을 받고.

“뼈 나이가 7~80대예요”

라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을 들은 다음 날부터, 아예 7가지의 약통을 가방에 몽땅 넣고 다닌다. 하도 잘 잊어버리는 내가 그래도 가방은 수시로 확인을 하니.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호르몬약 한 알,

아침식사 후 관절염약과 통증염증 두 알,

점심식사 후 칼슘 두 알,

오후에 MBP 한 알,

저녁식사 후 칼슘 두 알,

자기 전에 철분 한 알.

차례차례 약을 털어 넣는다.

그동안 방치했던 내 몸에 미안해하며.


그런데 약을 먹으며 무서운 건 하나 있다. 바로 호르몬약의 부작용인 유방암. 그 부작용이 무서워서 한동안 먹지 않기도 했었고. 매일 같이 먹는 이제는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반드시 검사를 해야만 한다. 출산과 모유수유 후 꽉 찬 B컵에서 납작한 A컵이 돼버린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만약에 유방암까지 걸리면 ‘오, 신이시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를 외칠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이 기세를 몰아 약을 입에 털어 넣는 일.

그리고 덧붙여 선생님이 귀띔해 주셔서 시작한 모래주머니 3kg을 각각 양쪽 발목에 매달고 매일 하체운동을 하는 것 뿐이다.


dear God, make me heal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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