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여기서 머물다가 서서히 떠오르소서 - '물밑서재' 라는 공유서재에서.
'물밑서재'가 건넨 선물은 '곧 떠오르리라는 기대'였다.
'물밑서재'라는 공유서재 이름에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작은 문앞에 걸린 문패에 적힌 글귀를 읽으면서도.
문패에는 서재 이름인 '물밑서재'가 크게 적혀있었다.
그 글자 아래에는 '그대, 여기서 머물다가 서서히 떠오르소서'와 'Book, Work, and more' 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곳의 로고인 듯 했다.
입에 잘 붙고 듣기만 해도 차분함이 느껴지는 서재 이름도 좋았지만,
서재 이름 밑에 있던 문장들이 더 좋았다.
특히 '그대, 여기서 머물다가 서서히 떠오르소서'라는 문장에서 따스하고 정성어린 응원이 느껴졌다.
안내 받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작은 문을 여니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내려가는동안 다른 세계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지하에 위치한 물밑서재에 들어가니 엔틱한 가구들과 러그, 매우 큰 책 오브제가 눈에 띄었다.
쭈욱 훑어보다가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글을 발견했다.
그 글을 읽은 후에야 서재이름의 뜻, 문패에 있던 그 문장을 이해했다.
단순히 글자 그대로 '물밑'이라고만 받아들여 넘겼는데 서재이름의 뜻 즉, 서재의 취지를 알게 되니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만의 '때'를 위해 물밑에서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 그 시간에 (기쁘게) 몰입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는 것, 수면 위로 멋지게 떠오를 당신을 위한 서재라는 것.
이 의미를 알고 보니 이름과 문장 뿐만 아니라 로고까지 달리 보였다.
책을 펼친 듯한 모양으로만 보였는데, 물결로도 보였다.
들어올 때 이용한 계단도, 지하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 계단은 물밑으로 가기 위한 통로처럼 느껴졌고, 지하에 있으니 정말 물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물밑에서 있는동안 차갑지 않도록, 춥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이 짙은 우드톤의 가구들에 깃들어 있는 듯 했다.
전체적으로 엔틱, 클래식한 인테리어였으나 어딘가모르게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엔틱한 테이블과 의자 밑에는 잘 어우러지는 디자인과 색의 러그가 깔려 있었다.
책장에는 정갈하게 세워놓은 책들이 있었는데, 장르가 다양했다.
그 중 창작자들을 위한 책들이 다른 공유서재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아주 어릴 때, 바다 밑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비로운 세상을 상상하기도 하고, 동화책처럼 웅장한 용궁이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때의 그 상상과 감정이 그곳에서 있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물밑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어릴 때처럼 아름답게, 내 식대로 상상하며 그 기분에 몰입했다.
곳곳에는 사장님의 센스와 애정이 담긴 물건들이 있었다.
책 모양의 매우 큰 오브제, 유명한 바샤 드립백커피와 종류별로 비치해둔 티,
엔틱하고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마스킹테이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카드,
15분 모래시계, 책모양의 문진, 엔틱한 조명 등등이 있었다.
그 중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그림액자였다.
물결 그림과 무언가의 아래를 표현한 듯한 그림들이 있었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진짜 이 곳은 물밑의 공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물밑에 있다는 컨셉에 몰입하며, 그 시간을 만끽했다.
곳곳에는 사장님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꼼꼼히 책에 표시해놓은 인덱스, 데미안의 한 문장을 따로 적어놓은 종이, 15분만 몰입해보라고 권유하는 손글씨....
한번도 뵌 적도 없고, 목소리조차 들은 적도 없지만
왠지 사장님의 따스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스해졌다.
그 마음으로 방명록 노트에 짧은 글을 썼다.
온전히 내 마음이 사장님에게 닿길 바라며, 악필의 소유자지만 최대한 예쁘게 담아보기 위해 애를 썼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운은 길었고 영향이 매우 컸다.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물밑에서 나온 것 같았다.
갑자기 눈앞의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힘든 시기에 가서였을까.
물밑서재의 의미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의미는 며칠동안 나를 휘감았고, 용기를 주었다.
그곳에 다녀온 경험은 애정 듬뿍 담긴 응원을 받고 온 경험이었다.
그 응원에 '나도 떠오르리라. 곧, 멋지고 아름답게' 라는 '기대'가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았다.
기대라는 건,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기대가 주는 위로가 인간에게 크고 깊은 영향을 준다는 걸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