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특성을 알면서도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을까.
상담받기 전, 혼자 있을 때도 엄마의 무릎 꿇는 걸 봤을 때에도 튀어나왔던 나의 행동. 그러니까 내 몸을 긁고, 스스로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던 그 행동이 또 나온 적 있었다.
그 시기에 본가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오래돼서 왜 내려갔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마 집안 행사가 있거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갔을 거로 짐작한다. 내 성격상 그랬을 거다.
여느 때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셋이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동생은 타지에 있는 상태)
영화 보기 전부터 아빠는 영화 보는 데에 왜 돈을 쓰냐며, 나 바쁘다고 (본인은 사회생활이라 하는데 모임, 댄스동아리 등 외부활동으로 인한 것) 툴툴대긴 하셨다. 그래도 나는 그때 우리 영화 본 지 엄청 오래됐고, 가게 바로 옆에 있는데도 항상 엄마 혼자 영화 보러 다니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지라 추억 삼아 같이 가자고 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러 갔다. 엄마가 팝콘을 좋아해서 팝콘을 사서 극장 안에 들어갔는데, 팝콘 살 때부터 아빠는 건강에도 안 좋은 거 뭐 하러 사냐고 핀잔을 줬다. 나는 그래봤자 영화 볼 때만 팝콘 먹을 수 있는 거고, 영화도 서울 올라왔을 때 진짜 몇 년에 한 번꼴인데 기분 좋게 보자며 들어갔다.
그리고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 아빠는 계속 팝콘을 쉴 새 없이 먹더라, 건강에도 안 좋은 거 뭘 그렇게 먹냐 계속 뭐라 하셨고 엄마는 결국 이제부터 당신이랑 영화 보러 안 간다고, 괜히 같이 갔다고 말씀하셨다.
엄마 혼자 영화 보고 왔다고 하면서 누구랑 같이 왔더라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아빠랑 같이 가시라고 말하기도 했었던지라 나는 그 상황이 속상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서로 냉랭해졌고, 나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늘 그래왔듯이 화해시켜 드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카운터에 있는 엄마와 문 쪽에 있는 아빠에게 우리 얘기하자고 요청했다. 아빠는 테이블 앞에 앉았고, 엄마는 카운터에서 아래만 바라본 채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한 번 더 말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같은 반응이었다.
순간, 난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거냐며 소리를 지르고 울고, 내 몸을 긁고 난리를 쳤다.
아빠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고, 엄마는 카운터에서 서서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본인이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었을 때 본 이후로 두 번째 보는 거였다. 아빠는 처음 봤기에 놀라셨다. 사실 아빠의 놀란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엄마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그런 나를 냉정한 눈빛과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그 얼굴을 보면서 전에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어릴 때도 성질나면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는구나?!”
난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도 자신이 자식에게 충격을 줘놓고 그저 내 문제인양 판단하고, 내가 왜 그랬는지 말하고 대화를 한 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니... 지금도 여전히 쟤 성질 나서 저러네라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싶었다.
화가 나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주 어린, 유아기 때의 그때만 그런 걸 들먹이며 그저 ‘성질 나서’로 단정 짓고, 동생은 학교 들어가고 나서도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물건 집어던지고 그랬는데도 동생은 단정 짓지 않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걸까.
내가 그렇게나 엄마 눈에 또라이로 보이나.
동생은 자식이고, 난 남인가.
그 생각에 결국 내 몸을 때렸다. 내가, 싫었다. 스스로가 가치 없다고 느껴졌다.
나중에 아빠한테 들어보니, 그때 엄마는 약 먹느라고 그랬다고 한다.
난 그 말도 믿기지 않았다. 핑계로 들렸다.
그렇다면, 약 먹고 갈게 한 마디쯤은 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 후, 상담을 받고 있던 시기에 집에 내려갔을 때 아빠의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그런 행동이 나왔다.
그때는 아빠가 엄마처럼 나를 대했다. 그때는 엄마가 나를 진정시켜 주셨다.
즉, 엄마와 아빠는 본인이 기분 나쁘면 상대방이 어떻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대했을 때는 자신 때문에 그런 걸 아니까 외면했고 아빠가 나를 그렇게 대했을 때도 자신 때문에 그런 거니까 외면했다. 쟤가 오죽하면 저럴까. 안 그러던 애가 왜 저럴까. 그만큼 얘가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화났다고 지금 쟤 저러는 거야?' 이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모든 상황에 연결되어 있고, 소통을 단절시켰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동생에게서도 나타났다.
난 어느새 가족들은 공감능력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존심만 부리고, 다툼을 정말 말다툼으로만 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이는 가족들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눈빛이 공포스러웠다.
비아냥대는 듯한 말투
내가 이상하고, 예민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내가 문제라는 말의 내용
알았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라는 메시지가 들리는 사과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는 데에만 급급한 태도
경멸한다는 듯의 눈빛
으휴 예민해라는 표정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같은 얼굴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풀이되는 행동
나는 부모님이 사랑을 못 받고 자라셨고 상처가 많으셔서, 동생은 보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고 내가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처럼 동생도 마찬가지며 매일 싸우고 며칠을 서로 말도 안 하고 화해도 안 하는 냉랭함과 침묵속에서 자랐으니 그런 면이 있을 뿐이다. 서로서로 노력하면 나 혼자가 아닌 함께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대화는 통하겠지. 소통은 되겠지라며 기대했다. 그래서 희망을 걸었던 거다.
'어차피 말해 봤자 너만 그렇게 생각한다. 네가 이상하다, 네가 부정적이다, 예민하다고 부정만 할 텐데 뭐 하러 말해' 라며 마음대로 단정 지었던 내가 잘못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억지평화를 깨고 진짜 평화를 위해 진솔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시행착오의 시간, 변한 나에게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간이 어느덧 5~6년이 흘렀다.
그러면서 언제 인지도 모르게 불안이 극도로 달렸고, 결국 다시 무너졌다.
상담을 받는다고 가족들에게 말한 것도 SOS였다.
이제는 내가 먼저 전화하기 힘드니 가족들이 내게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SOS였다. 이젠 가족들의 하소연이나 힘듦을 들어주기만 하는 건 힘들다며 내 이야기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내 상태를 알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기점으로 내 SOS는 없던 것이 되어버린 듯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 때,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난 외면받았구나라고 느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나의 기대와 희망의 결과가 "신경 끄고 살아, 서로 편하게" , "당해보니까 아니야. 언제까지 어릴 때 그걸로 그럴래? 지난 과거는 잊고 얼른 나을 생각을 해야지", "약을 먹어 봐. 나도 약 먹으니까 괜찮아", "XX, 그만하자. 그만해." 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몇 번이나 더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던 나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