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족쇄.
약해서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겪는 게 아니라,
그동안 기댈 곳도 없이 혼자 많이 힘들어했기에, 그만큼 지쳐서 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리멘털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가족들의 말처럼 부정적이고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변화했다고 해도, 평생 내 발목을 잡던 가족들이 날 향한 그 말들과 편견은 쉬이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족쇄로 인해 행동과 말을 할 때마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나를 잃어버린 채로 상대에게만 맞춰주며,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면서 위축된 채로 살았다는 것도 안다.
그것이 내 앞길을 막고, 나를 망쳤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자꾸 내가 문제가 있어서 아픈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상담사의 그 말은 빛과 같았다.
"내담자분 안에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강한 사람이에요."
"훌륭한 딸을 두고..." , "대단하네요."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거예요."
"내담자분은 강해요. 그러나 강해도 힘든 건 힘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의심을 하는 나에게 그 말들은 자기 확신의 길로 들어서게 해 주었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내게 예민한 기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질을 더욱 증폭시키게 만든 건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이었다는 것. 즉 가족들 때문이었다는 것.
부정적인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정말 부정적이었다면 그렇게 혼자서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가족에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풀어보려는 노력도 안 했을 거다.
오히려 동생은 마음을 닫고, 단정 짓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고, 신경 안 쓰면서 사는데
동생은 그저 '(95년생인데)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라면서 이해해 주는 부모님이 너무 미웠고, 억울했다.
미움과 억울함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보다는 혹시나 내 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들추기 바빴다.
그런 내게 그 말들은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내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야." 라며 나를 믿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특히 "강해도 힘든 건 힘듭니다."
그 말은 아프게 된 나를 더는 탓하지 않게 해 주었다.
강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강해도 사람이기에 계속해서 자극을 받고, 부정적이고 예민하게 만드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진짜 둔한 사람 아니면 못 견딜만하다.
무엇보다 내가 가족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거고, 상처받고, 내가 가족들에 비해서 튀어 보일 수 있다.
생각을 전환하여 그동안의 상황들을 바라보고, 현재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본가를 다녀오고 불안도가 치솟았지만, 그 말들을 떠올리며 다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상담에서 알려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강하다"를 계속 쓰면서 읽기를 실천했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속으로 되니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상담사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었다.
가족들에게 나 자체를 부정당하고, 나의 의견이나 생각과 감정을 수용받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온 만큼
서른이 넘도록 그 족쇄를 풀지 못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매우 저평가하고 있는 사람.
변화하고 성장하며 가족들에게 할 말도 하고, 감정표현도 할 줄 알게 됐지만,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걸 족쇄에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린 채 있던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간파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 앞에서 갑자기 폭발을 하고, 울분을 터트렸던 순간에 대해 자책하고 있던 내게 건넨 말도 도움이 됐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던 거고 더 한 게 마음 안에 있을 거라고, 나올 게 더 많이 남아있다고 한 말은
또 그러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까지 안도로 이끌어줬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만큼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른 내담자보다 빠르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이사한 후에도 여전히 불안과 우울은 남아있긴 했다. 그래도 버틸만했다.
집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쉬기도 했다.
한 발자국 나아가고, 한 뼘 더 나아진 상태였다.
안 좋아진 기억력은 아직 회복이 안 되었지만,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책 한 줄 읽는데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아도 10줄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너의 상황을 이해하고 챙겨주는 건 그때 잠시 뿐이었던 거야.
잊지 마세요. 지금 내담자분이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다들 지금....
자기 방식에만 맞춰주길 바라고, 내담자분의 방식에는 맞춰주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유지할 필요가 없다.
라는 연인의 말과 상담사의 말.
나를 망치고 있다는 말.
가족들이 이기적이라는 말.
그 말들을 그저 그냥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사람은 내 미래가 보였던 걸까.
가족들은 또 자기 상황과 감정만 생각하고, 내게 상처 줄 거라는 걸.
상담받는다는 말에 미안하다, 울었다는 것도 다 잠시뿐이라는 걸.
가족들은 내게 자기 방식에만 맞춰주길 바라고, 나에게 강요하며 내가 따르지 않으면 공격을 할 거라는 걸.
이제 내가 모든 걸 맞춰주지 않게 되었는데, 가족들은 여전하므로 결국 파국으로 될 거라는 걸.
모두 다 알았던 걸까.
그래서 그런 관계는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한 걸까.
(상담사의 말은 시간에 의해, 제 기억에서 조금씩 변형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