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의 빛이 보이는 듯했다.

불안의 출처를 알아차림.

by Eloquence

강화도 여행을 다녀온 후,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이번에는 뜻밖의 변화였다.

여행은 그 자체로 귀한 경험인데, 운이 좋게도 늘 덤으로 무언가를 받는다. 고마운 일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불안도가 낮아졌다.


무서운 속도로 치솟을 줄만 아는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낮아졌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번아웃 증상도 완화됐다. 강화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두 살 위인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 온수리 성당에서의 생각과 깨달음 덕분이었다. 나는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의욕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느낀 자신감이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불안 이거, 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1%의 빛을, 외부에서만 보려했던 시선이 나의 내면에도 닿았다. 잘하진 못한다.

그래도 외부에서 나의 내면까지 시야가 확장됐다는 점은 좋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불안도가 내려간 것이다.


얼마 후, 다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다시 불안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절망했었다. 의기양양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렇게까지 깨닫고, 변화했으면서 다시 불안에 매몰되는 내가 한심했다.

다음 생각은 그동안 그래왔듯이 당연히 나를 혐오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트라우마, 불안이 그렇게 심했는데 여행 한 번에 완전히 낫긴 어려워. 좋아졌다가 나빠질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닐까? 다시 차근차근 해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그래서 상담을 받아보려고 했던 것도 뒤로 미루었다. 우선 해볼 데까지 해보고 싶었다.


나의 변화에 자기확신, 믿음이 아직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을까.

그 생각은 점점 옅어졌고, 자존감과 자신감도 다시 잃어갔다.


이건 사는 게 아니었다. 여자 혼자 밖을 떠돌아다닌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일단 집에서 잠은 물론이고, 잠시도 있지를 못하니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상담센터로 향했다.


여러 검사를 하고, 아주 어릴 때부터의 내 이야기를 했다.

현재 내 상태, 상처는 어릴 때부터 시작이며 과거부터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답답하거나 조급하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집에서 잠을 못 잤지만, 조금씩 나아짐을 느꼈다.

불안을 똑바로 보고, 마주하려는 용기도 피어났다.


상담과정의 영향도 컸지만, 가장 영향력이 컸던 건 불안의 출처를 알아차림이었다.


단순히 화재감지기의 오작동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불안인 줄로 알았다.

물론 트라우마도 맞지만, 알고 보니 다른 원인도 있었다.

케케묵은 오래된 나의 상처에서 비롯된 불안이었다.

나는 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자랐으며 아무도, 나도 이를 알아차리고 나를 살피지 못했다.

어쩌면 불안증은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을 수도 있다.

치유되지 않은 불안증은 고개를 내밀 타이밍을 보다가 제일 자극적인 경험을 겪으니 그걸 빌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상담사의 불안이 괜히 오작동으로 튄 것이며,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으면 또 다른데로 튈 것이라는 말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미 오작동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가도 사고날 것 같은 불안, 누군가가 나를 해할 것 같은 불안 등등 각종 불안들을 느낀 적이 있었기에 더욱 납득이 갔다.


맥이 빠졌다.

나와 제대로 마주하면서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성장까지 했는데,

아직도 들여다보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니.....

문득 나와 제대로 마주하고 성장하는 데엔 엔딩이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거였다.

엔딩이 없는 만큼 들여다보고 치유해야 할 상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과정 또한 엔딩이 없다.

치유한 상처도 갑자기 무서운 모양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있고, 상처가 깊고 많을수록 할 일은 끝이 없다.

골치 아프고, 손 많이 가고,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온몸에 힘이 생겼다.

허무함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한편으로는 오작동을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느껴졌던 무력감이 나아지기도 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했던 마음이 뚫리는 듯 했다.

이 모든 생각들이 신념으로 못 박는 경험까지 했다.

상담을 통해 불안도가 다시 내려감을 느꼈던 시기에 집에 내려가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불안도가 치솟았다.


상담을 받고 있다는 걸 알렸기에 가족들은 나의 상태를 전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내게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없이 모두 쏟아냈다. 모든 감정을 내게 버렸다.

했던 말을 반복하더라도 그만큼 안 풀려서 그런 거겠지 오죽하면 이라는 생각으로 이해하고, 무슨 말이든 들어줬다. 내게 상처가 되는 말들까지.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줬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고 이해해주겠어. 가족인데.'라는 마음으로 내가 힘들더라도 상대의 힘듦이 더 걱정됐다. 그만큼 가족들이 소중했다.


상담사는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환자분이라는 걸 잊지 말라면서 안타까워했다.

나의 상태를 알면서도 다들 자기 힘듦만 중요시 생각하고 내게 모든 걸 쏟아내는 가족들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친구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만, 나 자신을 뒷전으로 두고 가족의 힘듦을 떠안고

나만, 나보다 가족들이 더 아프고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더 안 좋아졌다.

그 경험은 불안의 이유는 화재감지기 오작동도 있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결론이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 확인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치유해나가면 된다.

혼자서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를 해보았으니 혼자 하느라 부족했던 것들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다시 차근차근 해내갈 수 있다. 구멍 난 곳들을, 놓쳤던 것들을 채울 수 있다.


혼자 깨닫고,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고, 변화와 성장을 하던 그 시간들이

나 혼자서 다 하느라 외로웠다. 이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족들에게 요청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하다가 말고, 기분에 따라 도와주다가 말고, 잠시뿐인 가족들의 행동에 더욱 외로웠다.


혼자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맞게 잘 가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상담을 받으면서 다행히 방향을 잘 잡고 가고 있었던 걸 알게 됐다.


또 1%의 빛이 보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