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고 살아, 서로 편하게.

엄마가 말했다.

by Eloquence

상담을 통해 가족들의 사정을 봐주고, 가족들의 모든 하소연을 들어줄 때가 아니라 지금 가장 힘든 건 나라는 걸 잊지 않고 나를 챙기고 지켜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치료 받는 동안은 본가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이 도와주지 않았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에 집에서 혼자 잠을 잠는 건 여전히 불가능했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sos를 쳤는데도 다들 연락도 없고 나몰라라하는 게 야속했다.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느닷없이로 느껴졌을 테다. 내 입장에서는 참다참다 터트린 거였다. 가족들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안 받을 생각이었지만, 전화를 해준 거에 조금 마음이 풀려서 받았다. 동생은 처음에는 들어주는 가 싶더니 이내 (역시나) 성질을 부리고,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한 뒤, 또 깜깜무소식이었다. 엄마도 서운했지만, 나한테 요즘 어떠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봤었으니 차마 더 서운함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빠는 내가 울고 있는데도 동네 이장 회의 끝나고 이제 사람들이랑 밥 먹어야 한다며 끊으라고 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화해하고 넘어갔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결국 본가에 내려갔다. 중간에 다시 집에 돌아와 이사갈 집을 구하고, 다시 본가에 내려가서 이사가는 날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불날까봐,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사고가 날까봐 등등의 생각은 멈췄지만, 이상하게 초조하고 불안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부모님의 사이도 괜찮았고, 나에게 감정들을 쏟아붓는 게 평소보다는 좀 덜했다. 그렇게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문득, 문득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사라졌다.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로 불안도가 심하게 올라간 적이 있었지만 다시 진정이 됐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의 불안을 컨트롤 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도어락 비밀번호, 각종 보안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나던 순간도 많이 줄었고 집중력 저하도 완화가 되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나한테 전화를 걸고서는 "전화 했으니까 끊을게"라고 했다. 본인이 하소연할 게 있거나 어디 놀러갔다 와서 자랑할 게 있으면 한 시간 넘게 본인 말만 계속 늘어놓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는 10분도 안 되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통화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즉, 엄마와 나의 대화가 줄었다는 의미다. 사실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본가에서 지낼 때도 원래의 엄마는 나에게 많은 말을 쏟아냈었다. 그러나 내가 "엄마, 엄마 말만 하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줘." 라고 한 뒤로 엄마는 말이 줄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런가보다 해서 내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반응도 그냥 "응, 그래" 라고 하거나 "나도 ~ 그랬어."라며 본인의 경험이야기로 다시 화제를 돌려서 내 말에 경청을 해주고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표현하니 엄마는 나와의 대화를 피하는 듯 보였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게 나도 모르게 마음안에 쌓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전화했으니까 끊을게" 그 한마디가 미치도록 서운했다. 매일같이 전화를 먼저 안 하던 사람이 웬일로 매일같이 먼저 하시길래 웬일이냐고 물으니 "남친 있으니까 전화하는 거야." 라고 대답했다.


결국 엄마는 나한테 전화하는 게 의무감으로 억지로 하는 거였구나 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sos를 쳐서, 혼자 불안에 힘들어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 마음을 엄마에게 용기내어 표현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틀에 한 번은 전화 했잖아! 아, 미안해!" 라고 하셨다.


용기내어 표현한 건, 그동안의 가족들의 방식을 알기에 또 나에게 예민하고 부정적이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거다라고 할까봐 라는 두려움이 아직 남아서였다. 그러나 믿었다. 분명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많은 시행착오와 일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관계는 단단해졌을 거라 믿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내 상태가 어떻든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건, 엄마의 그 말이었고 화를 내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 모습에 나는 화가 났다. 내가 그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거냐고 하자, 진심으로 하는 건데 네가 진심으로 안 듣는 거다, 사과하는데 네가 안 받아주잖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라고 했다.


나는 감정이 북받쳤다. 숨이 찼다.

결국 엄마에게 참았던 말들을 했다. "엄마, 상담 받는 거 알았을 때 울었다고 할 땐 언제고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어" "나 너무 힘들어. 그냥 전화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힘드니까 관심 좀 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는 거잖아."


그러자 엄마는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요즘 엄마 이사짐 싸야되는데 힘드냐고 물어봤어?" 라고 하셨다. 황당했다. 그동안 엄마의 기분과 감정을 항상 물어봤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부분을 못 챙긴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난 엄마한테 한 두번 정도는 물어봤었다.


"엄마, 요즘 힘들지 않아? 애정이 있었든 없었든간에 가게 접어야 하는데 싱숭생숭하지 않아?"

"아니, 괜찮은데"


"엄마, 요즘 이삿짐 싸냐고 힘들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에 난 황당했다. 아무리 엄마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지라도

동생이 한번 엄마의 안부를 물어봤을 땐 엄마는 그 한번 가지고도 동생이 그런거 물어봤더라며 좋아하셨으면서, 왜 나는.....

뭐라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얼마나 힘든 지 알아? 내가 그냥 괜찮은 척 웃고 그러니까 모르나본데, 나 진짜 힘들어 나 죽고싶다는 생각도 했었어. 그만큼 나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그랬더니 엄마는 "나도 죽고 싶어! 너만 죽고 싶은 줄 알아?"라고 했다.

내가 엄마에게 그래도 나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고 그러니까 엄마도 건강 좀 챙기고, 우리 잘 살아보자고 했더니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 왜 대답이 없어. 그러니까 "살 자신 없어."라고 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가족들이 나를 외면할 때도, 나 혼자 힘들어할 때도, 이 불안과 우울이 언제 끝날지 몰라 막막할 때도 그래도 1%의 빛을 보며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의 그 말들을 들으니 허무했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아무 소용 없이 느껴졌다. 눈이 뒤집혀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엄마는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내가 싫었다. 왠지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스스로를 때렸다. 엄마는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고 끊었다.

그런 나를 두고 가버린 엄마를 보며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다가 내가 전화해서 왜 연락을 안했냐고, 저번에 내가 부탁하지 않았냐고 이제는 엄마가 먼저 다가와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항상 내가 먼저 손 내밀고 화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거 이제 안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 내가 ~ 해서 미안하다, 그래, 내가 상처줘서 미안하다.

이런 식의 말만 계속 반복했다. 영혼 없이.


그 부분에 대해 따지니 네가 그렇게 듣는 거라고 하셔서 내가 똑같이 따라하니 왜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하셨다. 더구나 나는 A를 말하는 거였는데, 엄마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앞에 B에 대해서만 그래, ~ 해서 진심~으로 미안해. 라고 하셨다. 나중에는 그냥 네가 전화하면 안 되냐? 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또 통화하기 싫으면 끊어 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또 연락이 없다가 아빠가 엄마한테 화내던 날 밤에 엄마가 먼저 전화했다.


그리고 엄마는 울며 겨자먹기로 한 듯, 나에게 성질을 냈다. 또 본인 성질을 다 부린 다음에야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고 또 반복되는 패턴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화해하고 싶은 마음에 그냥 넘어갔다.


화해한 뒤, 엄마는 나한테 상담 받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난 또 그 한마디에 또 바보같이 좋아서 기대를 걸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세종에 상담하는데 있던데" 하셨다.

나는 응? 나보고 거기까지 가서 받으라고? 하니까 "아니, 나. 나 거기서 상담받아볼까 해서. 차 타고 가다가 봤어." 라고 하셨다. 황당한 대화흐름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엄마는 말을 이었다.

"(엄마 담당 정신과 의사가) 너랑 나랑 같이 받아 보면 좋을 것 같다던데. 너랑 나랑 자꾸 어긋나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평소라면 엄마의 말을 호의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고, 왜 어긋나는지 이유를 설명했는데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론 내 말은 전혀 안 듣고 의사 말만 듣는 다는 건가 싶은 생각에 서운했다.


도돌이표같았다. 그래도 난 이렇게라도 푼 게 어디야 생각하며 넘겼다.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는 아빠한테도 가족상담 받자고 했다고 한다.)


얼마 후 통화를 하다가 엄마는 나한테 또 상처주는 말을 해서 내가 툴툴댔는데 그때는 엄마가 피하지 않고 대화하려고 하길래 내가 웬일이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옆에 아빠있어서 그래" 라고 했다. 난 그 말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말이 잘못 나왔다고 해서 결국 그냥 넘겼다.


그리고 엄마 생일에 본가에 내려갔고 이삿짐 싸는 것도 도와드리고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갑자기 심리상태가 안 좋아졌다. 밤을 꼴딱 새고, 밤에 갑자기 불안하고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내 상태를 알렸다. 혼자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물론 나도 예민해진 상태라 괜히 가족들한테 더 서운함을 느꼈던 것도 있다. 그래도 가족들이 작은 힘듦부터 큰 것까지 모두 다 들어줬던 것 처럼 나도 필요할 때 가족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부모님이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면 내가 그 마음을 헤아려드린 것처럼, 나도 그걸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식인데 나도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엄마는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나보다.


엄마는 이사하고나서 짐 정리하냐고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하셨다. 장사할 때는 장사하냐고 전화할 시간 없다, 이삿짐싸냐고 전화할 시간 없다, 짐 정리 하냐고 전화할 시간 없다 늘 그러셨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엄마는 낮엔 덥다고 밤에는 이삿짐을 쌌고, 장사하냐고 전화할 시간 없다는 사람이 장사는 안 하고 친한 아줌마랑 놀러갔었다. 무엇보다 내가 본가에 내려가서 이삿짐 싸는 거 도와준 건 다 잊어버렸는지 나한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면서 그런 거 너 신경썼냐고 화내는 엄마를 보면서 '아, 엄마는 계속 나한테 바라기만 하는구나. 동생은 한번만 잘해줘도 그걸 크게 느끼면서'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 대화패턴은 또 되풀이됐다.

엄마는 여전히 "그래 ~ 해서 미안해" ,"그래 진심~~으로 미안해", "내가 언제 그랬어", "그냥 말 잘못 한거야"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래", "그래! 내가 죽일 년, 나쁜 년이네. 너한테 상처주고.", "나도 죽고싶을만큼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너 나한테 안 힘드냐고 물어봤어?", "미안하다고 했는데 네가 안 받아주잖아!", "그냥 끊어, 아 짜증나", "나중에 이야기 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냥 믿어.", "네가 안 믿는다며!"


그러다가 결국 엄마는 "신경 끄고 살아, 서로 편하게" 라고 하셨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엄마는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은 카톡으로 할게.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는데 네가 안 받아줘서 답답하다 등등.."


그 카톡을 끝으로 한 달이 넘게 연락이 없었다.

중간에 아빠랑도 안 좋아져서 내가 정말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빠는 가족들에게 난리를 쳤다고 한다. 그때만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다.

난 받지 않았다.


그 후 또 연락이 내내 없다가 최근에 카톡이 왔다.

"톡으로 한지 한달4일이 지났네. 전화하면 안 받아서 한달 4일이 지나서 톡으로 하는거야 엄마가 어떻게 사과를 해도 니가 믿지를 않으니까 엄마도 답답하네 아빠한테 들었는데 아프다고 해서 그렇게 만든 엄마가 책임이네 엄마가 너무나 잘못했어. 건강 잘 챙기고 먹는것도 천천히 먹어"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해가 되던 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이 왔다.

그때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듯한 그 말에,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하는 모습에,

나한테 그런 말들을 한 거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어물쩡 대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더 실망했다.


더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

화가 나면서도, 내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억지로라도 받아줬어야했나. 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화 내다가도 자책하고, 기분 나빠해도 되는지, 화날만한 상황인지 눈치 보는 것.

이제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조차 모르는 늪에 빠지는 것.




엄마한테 인연 끊자는 식의 말을 듣고 서로 연락을 안 하던 그 시기에 아빠와 동생과도 일이 생겼다.

가족들한테 외면 받고, 가족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삶 자체에 번아웃이 왔다.

1%의 빛? 그딴 거 다 필요없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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