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라고 다 이해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by Eloquence

"네가 누나니까 이해해"

"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이해해"

"철이 아직 안 들었으니까 그런거야"

"걔는 남자잖아."

"요즘 걔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

"사회 초년생이잖아. 네가 이해해"

"사춘기잖아, 네가 이해해"

“네가 다섯 살이나 많으면서 뭘 그렇게 생각하냐”


이해하고,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나답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분위기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부모님도 그저 그냥, 시간에 맡겨 어물쩡, 좋게좋게 넘어가는 걸 좋아하시고 동생도 그걸 닮고

다만 다르기 때문에 결국 내가 예민하고 유별나고 부정적인 결과만 남을테니 그냥... 수긍했다.


그냥 그게 맞고, 나만 다르니 내가 이상한거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삶을 살아갈수록, 그들의 방식은 회피일 뿐이며 방어기제이며 이기적이고 나에게 있어서 부당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아무리 5살 위인 누나라고 해도, 그때 나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였고, 청소년이었다.

동생 손 잡고 병원을 데리고 다녀서 조그만 애가 동생 데

나도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길 원했고,

한창 친구들이 좋은 시기에도 동생 밥 차려주기 위해 집에 때맞춰 가야하고,

지역 축제에 가더라도 중간에 가야하고,

늦게까지 놀고 싶어서 동생을 데리고 다니다가 친구들 눈치가 보여서

동생을 회유하면서까지 먼저 집에 보내면서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동생의 한글과 수학을 가르치고,

동생이 물건을 집어 던지든 말든 어리니까 참아줘야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무시받는 느낌이 들고,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너무 막대한다고 생각이 들어도

어른이 되고나서도 본인이 잘못을 해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고 잠수타고 시간이 지난 후 아무일 없단 듯이

대하거나 상황 모면하기 위한 것처럼 사과를 대충해도

대화가 아닌, 그냥 그럴 수 있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다니까, 요즘 걔 사회초년생이라 힘들다니까

요즘 일 때문에 힘들다니까, 남자라서 그런다니까.... 라며 애써 넘겼다.


그 모든 것들이 세 사람의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 똑같고, 나는 그 방식에 맞추는 게 싫고

싫은데도 맞춰줘야하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남자라서, 철이 안 들어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 누나니까

모든 게 다 합리화이며 부당한 이유라고 느껴졌다.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하는 걸까.

내가 참지 않고 나도 화를 내고 감정표현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나도 나의 성격이 있고, 나의 방식이 있는데

나한테는 지적하고 몰아세우고 이해하려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나를 단정지어 나쁘게만 생각하면서

본인들이야말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공격으로 받아들여서

그냥 대화로 풀면 될 것들도 매번 괜히 반박하고 성질내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서 상처 줘놓고

정작 기억도 못하거나 뚝하면 말이 잘못 나왔다고 하면서


어떻게 동생의 입장을 그렇게나 잘 이해해주실까.

동생의 성격에 잘 맞춰주고 잘 이해해주실까.

동생이 나한테 심하게 해도 처음에는 내 편을 들어주다가도 결국엔 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끝에는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라는 식으로 말하고, 결국 내가 눈치를 보는 상황이 너무 싫다.


더구나 동생 앞에서 부모님은 누나는 예민해 유별나, 넌 누나처럼 그러지 말라

그렇게 말씀하시거나 같이 내 흉을 봤다.

심지어 동생이 잘못을 했을 때에도 편을 들어주고 동생의 말을 수용해주던 분들이었다.

혼내거나 사과하라고 하는 건 잠시 뿐이었다.

동생이 무어라 반박하면 그대로 수용하고 그 뒤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등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동생 흉을 보면, 뜨뜬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거나

처음에는 조금 맞장구 쳐주는 척 하면서 결국엔 또 동생을 감싸고

또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왕따같았다. 소외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동생이 나를 그렇게 무시하고,

누나 우울증 있는 거 안다면서 나도 우울증이라고 라면서 성질을 부리고 연 끊자고 하고,

그래놓고 그냥 힘들어서 그랬다고 말하면서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그 뒤에 회피하고 잠수탄 거에 대한 사과는 못 받고, 필요할 때만 찾고, 본인 힘든 거에는 공감해주길 바라면서 내가 힘든 거에는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면서 위로와 공감이었다고 말하는 동생을 동생의 방식일 뿐이라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도 모두 다... 지긋지긋했다. 너무 지쳤다.


심지어 그 날은 그때 그 시기에는 난 정말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고, 그때 그 시기보다는 좋아진 게 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 때 그 시기에,

난 또 동생에게 상처를 받았고 누나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되는 걸까와 내가 속이 좁은 걸까 라는 생각과

이젠 난 더 이상 못해 내가 누나지 부모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래야 돼? 라는 생각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동생과 작은 다툼부터 매우 큰 다툼까지 몇 번이나 더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잠수타고 회피하거나 대충 상황모면식으로 사과하는 식이 반복되었다.

또는 부모님이 그래도 연락해서 사과하라고 해서 하거나 겉으로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서

부모님한테는 누나가 안 받아주는 거다, 양쪽 입장 들어봐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상황 모면하려고 미안하지도 않는 게 느껴지는데 내가 마음이 풀리겠냐고 하면,

답답해하면서 나를 이상하고 내가 예민하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엄마와 아빠처럼.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무서웠다.

동생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동생이 나한테 하는 말들과 태도, 행동이

일치 하지 않다는 걸 느껴왔고, 들을 때는 모르겠는데 지나고보면

결론은 내 잘못인 것처럼 되어있었다.

늘 찝찝했다.

무언가 가스라이팅 같았다.

내가 교묘하게 당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은 그냥 대놓고 나를 몰아세우고 다툼의 본질이 무엇인지 흐리게 하는거라면

동생은 내가 늦게 알아챌 때가 많았다.


그렇게 느끼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제는 나도 가족들에게 가스라이팅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상처 받고, 한이 되었으면 그러겠어.

나도 내 의견과 생각, 감정을 밀고 나가보고 싶어.

나도 화내고 싶고 가족들처럼 제멋대로 하고 싶어.

라는 생각들과 대립했다.


그리고 그날, 터져버렸다.


그날, 동생과의 그 싸움으로 우리의 갈등은 종결되었다.

풀리지 않은 채로.


그 뒤로 우린 왕래도, 연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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