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 시
섬이 가라앉기 전
먼저 기울어진 것은 수평이었다
위는 더 이상 위가 아니었고
아래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다
사물들은 제 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물로부터 이탈했다
중력은 방향을 상실했고
중심은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했다
섬은 마지막에야 가라앉았다
이미 세계는 버티는 방식을 잊은 뒤였다
남은 것은 낙하가 아니라
낙하를 낙하라 부를 기준의 부재였다
2. 수필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것의 붕괴를 '사건'이라 부른다. 건물이 무너지고,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의 체제가 해체될 때 우리는 그제야 “추락”이라는 말을 꺼낸다. 거대한 섬이 바다 아래로 사라지는 장면처럼, 형태를 가진 것의 소멸은 분명하고 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목격하며 비극을 선언한다.
그러나 추락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는다.
섬이 가라앉기 전, 먼저 기울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지반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던 보이지 않는 전제들이다. 위는 위에 있고 아래는 아래에 있으며, 사물은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고, 중심은 중심으로 기능한다는 암묵적인 합의.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늘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전제들이 느슨해진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흐려지고, 중심은 더 이상 중심을 증명하지 못한다. 사물들이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라는 개념이 사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때 세계는 아직 멀쩡해 보인다. 섬은 여전히 수면 위에 있고, 지형은 변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럼에도 이미 추락은 시작된 상태다.
추락은 물체의 낙하가 아니라 질서의 이완에서 비롯된다. 중력이 방향을 상실하는 순간, 낙하는 필연이 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가라앉는 것은 너무 늦게야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섬의 침몰은 마지막 장면에 불과하다. 우리가 “파국”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오래전에 끝난 일의 확인 절차다. 세계는 먼저 버티는 방식을 잊고, 그다음에야 형태를 잃는다.
그러므로 추락하는 것은 섬만이 아니다.
섬은 다만 뒤따라 떨어질 뿐이다.
이미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 낙하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