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인간은 결코 자기가 속한 시대의 지평을 벗어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구천을 떠도는 유령조차 제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때로는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지독한 불협화음이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해지기도 한다. 거북선의 육중한 나무 바닥 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성웅 이순신이 그 생경한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면 어땠을까. 그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세계의 기묘하고도 생생한 단면이다.
철학은 본래 파괴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으나, 데리다를 통해 알려진 해체는 동일성이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서 끊임없이 '차이'를 구하려 했다. 어떤 사실이 너무도 보편적이어서 굳이 해석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의 말마따나 세상은 오직 관점들의 집합일 뿐이다. 사실은 늘 해석되어야 하고, 그 해석은 다시 해체를 필요로 한다. 세계가 불완전하다는 숙명,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실을 해체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도구는 비유다. 비유는 언뜻 그럴듯한 장난처럼 보일지라도 해체의 본질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래서 시가 필요하고, 우리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 비유가 단지 특정 시대의 전유물은 아닐지라도, 그 흐름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음악과 미술, 문학이라는 예술의 언어로 시대를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끝단에 서 있는 지금 이 '현재'는, 지나온 모든 시간을 해체하고 난 뒤에 남겨진 가장 치열한 해석의 산물이다. 오늘날의 삶이 이토록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낡아가는 육신의 속도는 어찌할 도리가 없겠으나, 우리의 마음만은 수만 겹의 시간을 통과하며 익을 대로 익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농익은 무게가 지금 이 순간, 우리를 깊게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