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4

essay

by 김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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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두 절벽 사이, 그 아득한 인과를 끝내 헤아리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것이 생의 본질이라면, 대체 인생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부서지는 파도 위에 새긴 이름처럼 덧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움켜쥔 고결한 가치들은 결국 투명한 관념의 실로 짠 비단일 뿐이라고. 그것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서늘한 시작이다.

​그 화려한 관념의 가림막을 들춰내면, 그곳엔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숨을 죽인 채 똬리를 틀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눈부신 사상도 생을 향한 뜨거운 갈증과 무관한 것은 없다. 이 원초적인 욕망이 소멸의 공포를 견디며 숨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가 바로 서사, 즉 이야기다.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처절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삶의 여백마다 의미라는 무늬를 새겨 넣는다.

​이 서사가 흐르는 물길에 따라 이름은 비로소 갈라진다. 서사가 운율을 타고 은유의 바다로 흐르면 시가 되고, 정교한 논리의 뼈대를 세워 진리의 성벽을 쌓으면 철학이 되며, 아득한 초월의 옷을 입으면 종교라는 신화가 된다. 삶은 날마다 가공의 이야기를 빚어내어 우리 옆에 딱 붙어 가게끔 이끌고 있는 괴물이다. 질척이는 허구를 먹여 키운 이의 비대해진 몸뚱이가 실은 우리 생의 유일한 동행이다.

​그렇다면 문학이, 철학이, 그리고 종교가 빚어낸 이 모든 세계는 단지 정교하게 고안된 아름다운 거짓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 그것은 기만이 아니라 차가운 우주의 침묵에 맞서 인간이 내지르는 가장 뜨거운 비명이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필연적인 환상이다. 인생이 찰나의 흔적에 불과하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어낸 그 서사들이야말로 실존의 유일한 증거가 된다. 시인의 은유가 누군가의 무너진 영혼을 보듬고, 철학자의 고뇌가 시대의 어둠을 가르며, 종교의 신화가 죽음의 차가운 손길을 어루만진다면 그것을 어찌 허구라 부르며 밀쳐낼 수 있겠는가.

​결국 이들은 거짓이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층위의 진실이다. 우리는 그 정교한 그림자의 품 안에서 비로소 안식하고, 사라질 운명을 견디고, 다시 내일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갈 힘을 얻는다. 삶이라는 괴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이 길 위에서,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것이 참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이 다정한 그림자가 나의 생을 얼마나 깊게 껴안고 있는가를.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