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잔영

소설

by 김준완


방 안은 어둡고, 커피는 이미 식었지만 나는 잠시도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까지 완성해야 할 스레드 세상 원고가 화면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이 글자를 스칠 때마다, 나는 단순히 정보를 타이핑하는 것이 아니라
void_walker가 스레드에서 사라진 그 긴 밤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찾으려 달렸던 거리, 안갯속에서 흩어진 발자국,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며들었던 두 번의 문자.
첫 번째, “누군가 나를 쫓고 있는 기분이 든다.”
두 번째, “오늘은 강이 빠르다.”
나는 그때의 떨림과 불안을 기억하며,
손끝으로 글자를 눌러가며 원고 속에 그녀의 잔영을 담았다.
나는 잠시 멈추고 시를 떠올렸다.


〈지독한 결단〉
세상이 온통 어둠에 잠겨도 상관없었습니다.
나의 시선이 지독한 결심이 되어 당신의 이마에 닿을 때,
당신은 이미 현실의 중력을 벗어난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살과 피를 가진 이가 아니라
차가운 달빛 사이를 소리 없이 흐르는
백합의 향으로 내 곁에 남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은,
당신의 맥박을 멈춰 세워서라도
그 찰나의 희미한 빛을 내 눈동자에 영영 가두겠다는
지독한 탐닉의 선언이었습니다.
그 잔영을 쥐고 있는 나의 손끝이 이토록 시린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형벌을 내린 주체가 사실은 나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고 위에서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레드에서 사라진 void_walker를 찾던 순간의 긴장,
그 두 번의 문자가 주던 서늘한 떨림을 글 속에 다시 불러냈다.
각 단어마다 그날의 새벽 공기와 커피 향, 발등을 스친 그림자의 농도를 담았다.


〈부피의 측정〉
여자는 누이로 남고
누이는 매일 가벼워진다
너의 안부는 이제
발등 위에 떨어지는 그림자의 농도 같은 것
나는 매일 아침 너의 부피를 측정하려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소금기만 핥는다
어제는 어깨가 사라졌고
오늘은 너의 목소리에서 모음(母音)들이 먼저 증발했다
남겨진 자음들이 마른 모래알처럼
방바닥을 서글프게 서성거릴 때
문득
두려움이 먼저 온다
완전히 가벼워진 네가
어느 날 오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공기 중에 섞여 내 폐부로 불쑥 들어와 버릴까 봐


밤은 깊었고, 원고는 점점 완성의 형태를 갖춰갔다.
손끝의 감각과 기억 속 그녀의 잔영, 스레드에서 날아온 문자,
모든 것이 하나로 엉켜 글 위에 살아 있었다.


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틀고,
커피 향과 음악, 글자의 진동 속에서 새벽을 채웠다.
월요일 아침 전, 나는 출판사 메일을 열었다.
완성된 원고 파일을 첨부하며,
글 속에서 현실과 허구, 문자와 존재가 뒤엉킨 그 긴 새벽을 고이 마감했다.


손끝, 커피 향, 슈베르트, 그리고 기억 속의 두 번의 문자.
모든 것이 글 속에서 void_walker를 남기고,

이미 나의 심장에 박혀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