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7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아득한 질문은, 눈부신 햇살 속에서 문득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풍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빛으로 가득 찬 공기 사이로 낡은 수레 하나가 고요히 서 있었고, 그 곁에는 아무 말 없이 햇살을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물인지 빛의 형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 장면 앞에서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우리는 아마 그 찰나의 경이를 붙들기 위해 ‘믿음’이라는 생의 지팡이를 짚고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결코 텅 빈 진공의 상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 덧칠해 놓은 수많은 관념과 선입견의 옷을 입은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고결한 투쟁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념의 색채를 스스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세상을 투과시키는 내 안의 렌즈—곧 관념이 먼저 탈바꿈해야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 낡은 관념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나만의 새로운 시선을 직조해 내는 숭고한 노동입니다. 내 안의 관념이 새롭게 거듭날 때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햇빛 속에서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레의 거친 질감을 느끼고, 소년의 맑은 눈망울에 담긴 우주를 비로소 마주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쫓는 것이 영원불변한 절대 진리가 아닐지라도, 찰나의 틈에서 번뜩이는 ‘순간적 진리’는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적 진리의 정체는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구원입니다. 잠시 사유의 물길이 옆으로 샌 듯 보일지라도, 우리가 이 아름다움이라는 진리 안에 머물러 있다면 나의 관념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모험은 언제나 정당합니다.
관념을 재구성하는 이 고독한 글쓰기의 작업은 타인의 지식이나 낡은 경험의 파편을 빌려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의 심연에서 길어 올려야 하는 창조적 탄생입니다. 내 세계를 지탱하는 관념을 새로이 빚어낼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