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하학: 아우성에서 신화까지

essay

by 김준완

〈 찰나의 궤적 〉
.
.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안으로 터지는 아우성의 집적(集積).

​그 소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쓸모없는 말들이 비로소
욕망의 재갈이 되는 찰나.

​말과 침묵, 그 인력의 틈새에서
생(生)이 그어 내려간 비틀린 곡선들
포물선, 타원, 쌍곡선.

​그 굽은 길들을 타자(他者)의 눈으로 굽어볼 때,
나의 비루한 유랑은
비로소 고귀한 신화가 된다.

​그리고 허공의 심연,
그 막막한 어둠이 응축되어
한 점 빛으로 박히는 순간.

​나를 꿰뚫는
고양이의 눈.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제시이며,
완결되지 않기에 영원한
순간의 진리다.
.
.

[ 에세이] 침묵의 기하학: 아우성에서 신화까지

​1. 침묵이라는 이름의 소음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하게 농축된 욕망의 가청 주파수다. 타인에게 향하던 말의 화살을 거두어 나를 향해 쏠 때, 고요는 비로소 천 개의 혀를 가진 아우성으로 돌변한다. 나를 대면하는 시간은 평화롭기보다 소란스럽다. 내면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결핍과 갈망들이 침묵이라는 수조 속에서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2. 말, 무질서를 길들이는 재갈
​아우성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자아의 소음 속에 매몰됨을 의미한다. 그 혼돈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말'의 절실함을 발견한다. 일상적인 언어들은 비루하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내면의 야생적인 욕망을 구속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이자 정교한 재갈이다. 말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아우성을 정돈된 문장으로 치환하며, 광기 어린 직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3. 존재의 중력이 그리는 궤적
​말과 침묵, 그 인력과 척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존재의 중력'을 목격한다. 삶은 자유로운 비행이 아니라, 자아라는 거대한 질량 주위를 맴도는 물리적 운동에 가깝다.
​때로는 무모하게 솟구치다 현실의 지면으로 추락하는 포물선을 그리고,
​때로는 같은 후회와 번민의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는 지루한 타원을 돌며,
​때로는 중심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져 고독의 심연으로 사라지는 쌍곡선을 긋는다.
우리의 생은 이 기하학적 궤적들의 중첩일 뿐이다.

​4. 신화적 거리와 고양이의 눈
​이 궤도에 매몰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멀어지는 것'이다. 나의 고통과 욕망을 1인칭의 비극이 아닌, 3인칭의 풍경으로 부감(俯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신화가 탄생한다. 나의 방황이 인류가 수천 년간 반복해 온 보편적 서사의 한 구절임을 깨닫는 순간, 비극은 장엄한 필연으로 승화된다.
​그 절대적인 거리의 끝, 텅 빈 허공의 중심에서 마주하는 것은 '고양이의 눈'이다. 그것은 나를 보는 나, 혹은 나를 초월하여 나를 응시하는 서늘한 본질의 빛이다. 그 투명하고 잔혹한 눈동자 속에 나의 모든 아우성이 얼어붙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궤적을 완성하고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