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뼈다귀와 눈물의 씨앗

Essay

by 김준완


1. 대화 (The Dialogue)

늙은 노처녀가 남자에게 묻는다.
“무아와 윤회가 어떻게 함께 가요. 주인이 없는데 누가 바퀴를 돌리죠.”

남자는 한동안 말을 고른다.
“취향은 창조가 아니에요.”
“취향이야말로 감각의 정수 아닌가요.”

남자는 오래 설명한다.
“나는 고정된 게 아니고, 흩어지는 거예요.”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무한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요?”

남자가 묻는다.
“당신에게 사랑은 뭡니까.”
여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눈물의 씨앗.”
“그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죠.”
“왜 사랑을 그렇게 잘라요.”

남자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절벽에 매달린 개미가 손을 놓을 수 있습니까.”
여자가 되묻는다.
“사람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여자가 남자를 본다.
“당신은 놓겠어요.”
남자가 말한다.
“그 둘이 같은 겁니까.”

여자가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로 말한다.
“개미는 살려고 쥐고, 당신은 이기려고 쥐고 있죠. 그걸 묻는 그 입이 이미 절벽이에요. 개미는 떨어지면 끝나지만, 당신은 떨어지면서도 계산하겠죠.”

남자는 더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씨앗은 심을 겁니까.”
여자가 말한다.
“이미 심었어요.”
“어디에.”
“꽃은 안 피고 눈물만 고이는 곳. 이 절벽 아래.”

둘 사이에 더 말이 없다. 창밖에 벌레 한 마리가 유리벽에 매달려 파들 거 린다. 바람이 문틈으로 스친다.

2. 여자의 시점: 습진처럼 번지는 생(生)

남자는 오늘도 마른 활자들을 씹어 뱉는다. 그의 입술을 거친 말들은 살점 하나 없는 개 뼈다귀가 되어 탁자 위로 건조하게 흩어진다. 그는 모른다. 내가 매달려 있는 이 삶의 무한함이, 그 비논리적인 심연이 얼마나 지독하게 나를 짓이기고 있는지.

그는 자꾸만 나를 칼로 자르려 든다.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 그의 눈빛은 서늘한 해부대 같았다. 나는 내 생의 가장 눅눅한 구석을 꺼내 눈물의 씨앗이라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짧은 비유조차 논리의 자루에 담으려 든다. 목구멍 안쪽이 딱딱하게 접혀 들어갔다. 내 슬픔을 정체 모를 칸에 분류하려는 그 오만이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처럼 소름 돋는다.

그가 던진 개미 이야기에 나는 명치끝이 안쪽으로 말렸다. 절벽에 매달린 개미가 손을 놓느냐고? 그는 절벽을 머리로만 그린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절벽에 매달려 진물 나는 손가락으로 버티고 있다. 그는 이기기 위해 논리의 밧줄을 쥐고 있지만, 나는 살기 위해 생의 벼랑을 손톱이 빠지도록 움켜쥐고 있다.

추락하는 순간조차 각도를 계산할 그 매끄러운 입술을 보며 나는 나직이 뱉었다. 나는 이미 씨앗을 심었다고. 꽃이 피지 않아도 상관없다. 눈물만 고이는 그 절벽 아래, 당신은 결코 발 디디지 못할 그 진실 속에 나는 나를 묻었다.

그의 논리는 매끄럽지만, 내 눈물은 끈적하다. 유리창에 붙은 저 벌레처럼, 나는 떨어질지언정 그가 설계한 가짜 절벽 위로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3. 남자의 시점: 지연된 패배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무아(無我)를 물어왔다. 나는 습관적으로 뇌 속의 서랍을 뒤져 수천 년 묵은 문장들을 꺼내 보였다. “취향은 창조가 아니에요.” 나는 단호했다. 당신 안에 알맹이 같은 ‘진짜’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조급해진 나는 나라는 실체가 얼마나 허망한지 두 시간 동안 공허한 말을 쏟아냈다. 내게 논리는 세상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뼈대였다. 그런데 그녀가 슬프다 못해 투명해진 표정으로 무한(無限)을 말했다. 내가 감히 계산할 수 없는 비논리의 심연을 그녀는 이미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방어 기제로 던진 사랑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눈물의 씨앗이라 답했다. 찰나의 침묵 속에서 나는 공포를 느꼈다. 단 세 마디로 생을 요약해 버리는 그 직관의 무게. 그녀는 나를 향해 왜 사랑을 잘라내느냐고 물었다. 내 논리는 메스였고, 그녀의 삶은 그 칼날 아래 난도질당하는 생살이었다.

마지막 패로 ‘절벽의 개미’를 던졌으나, 그녀가 내 존재를 베어 넘겼다. “당신은 이기려고 쥐고 있죠. 그걸 묻는 그 입이 이미 절벽이에요.” 아찔했다. 내가 뱉은 모든 철학이 사실은 추락하지 않으려 허공을 휘젓는 절박한 손가락질이었음을 그녀는 이미 보고 있었다.

“그 씨앗은 심을 겁니까.” 내 목소리는 볼품없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이미 심었다고 했다. 꽃도 피지 않고 눈물만 고이는 그 절벽 아래, 논리가 도달할 수 없는 눅눅한 절망의 땅에 자신의 생을 통째로 묻었다고 했다.

유리벽에 매달린 벌레가 파들거렸다. 내 손에 쥐여 있던 단단한 논리의 뼈다귀가 아무 살점도 없는 허망한 잔해로 느껴졌다. 내 입술 자체가 이미 누군가를 밀어뜨리는 깎아지른 절벽이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보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