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뼈로 받아내는 찬란

Essay

by 김준완

[ 시] 무한

​둥근 원을 뒤집으면 무한이 된다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철새들의 환청이
아침을 앞질러 도착한다

​기린의 입술엔 침묵이 고여 있고
놀란 나의 불안은 무덤에서 먼저 깨어난다

​은하의 진물은 기린의 목을 타고
검은 혀는 제 그림자를 핥는다
익사한 태양들이 창백한 거품으로 떠오르는 새벽

​태반(胎盤)을 잃은 음절들이
부서진 창틀마다 곰팡이처럼 번질 때

​우리는 마침표 없는 궤도 위에 서서
서로의 눈동자에 핀 식은땀을 숭배한다
도착하지 않을 아침을 향해
서로의 목을 길게 늘어뜨린 채

〔에세이] 뼈로 받아내는 찬란

​아침은 언제나 투명한 얼굴로 찾아오지만, 그 빛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닫힌 원을 비틀어 무한의 궤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 순간 아침은 매일의 반복이 아니라, 저 먼 우주의 가장자리로부터 쏟아지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환청이 된다.

​기린의 목을 타고 흐르는 은하의 비릿한 진물처럼, 새벽은 창백하게 차오른다. 태반을 잃고 떠돌던 음절들이 창틀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이 탐미적인 붕괴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것은 '불안'이다. 무덤조차 안식처가 되지 못할 만큼 깊고 근원적인 이 공포는 역설적으로 가장 순수한 생(生)의 증거가 된다.

​이 해체의 끝에서 만나는 아침은 잔인할 만큼 아름답다. 그것은 단순히 어둠을 걷어내는 빛이 아니라, 우주의 무한한 기운을 우리의 가장 단단한 부위인 뼈 속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형벌과도 같다. 그 거대한 무게 앞에 존재는 부서질 듯 창백해지지만, 그 파편들이 흩어지는 찰나는 더없이 '찬란'하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이 감당할 수 없는 우주적 무게를 '슬픔'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도착하지 않을 영원한 아침을 향해 목을 길게 늘어뜨린 채, 서로의 눈동자에 핀 식은땀을 숭배한다. 그 숭배는 뼈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원과의 지독한 조우(遭遇)이자, 찬란하게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