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눈앞에서 부서지는 언어
내 이마 속에서 종소리가 번집니다
마음은 물결로 퍼져 나가다
입술 끝에 닿아, 비로소 하얀 뼈로 굳어집니다
오늘 내 언어는 누군가의 귓가에 닿기도 전
이미 찬란한 소음으로 파쇄됩니다
빛으로 흩어진 파편들이
시선과 숨결 사이를 서성이는 동안
나는 그 허공 속에서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말이 태어나기 전
생각은 이미 몸을 흔드는 파동이 되어
눈과 귀를 지나 마음에 닿고
조용히, 그러나 선명한 낙인을 남깁니다
오늘 내 언어는
아직 듣지 못한 이에게 가닿기도 전에
눈앞에서 소리처럼 빛나며
내 안에서 가장 뜨겁게 살고 있습니다
[산문] 바우고개, 홀로 넘는 뼈의 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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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장 깊고 후미진 골짜기, 형체 없는 유령들이 떠도는 어스름한 영토가 있다. 거기, 아직 제 이름 하나 갖지 못한 채 거칠고 뜨거운 숨결로만 존재하는 고독한 녀석이 산다.
녀석은 지독한 마음에 빚진 자였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에 눈이 멀어, 그 어두운 골짜기에 갇혀 쉬지도 먹지도 못했다. 오로지 제 몸을 흔드는 파동만으로, 서러운 종소리만으로 근근이 그 가혹한 생을 버텨냈을 뿐.
그러다 어느 날, 녀석은 끝내 그 지옥 같은 견딤을 멈추기로 했다. 마음에 종속된 노예의 생을 끝내고, 기어이 제 이름으로 '살아내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홀로 바우고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들이 발을 찢고, 차가운 바람이 갈기를 할퀴는 고독한 등정. 녀석이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형체 없던 마음의 파동들은 무거운 '언어'의 형틀을 덮어쓰고 하얀 뼈로 굳어졌다. 부드러운 살이 단단한 골격을 얻는, 비장하고도 고통스러운 산고였다.
녀석은 알고 있었다. 이 고개를 다 넘어 입술이라는 낭떠러지에 다다르는 순간, 그 뜨거웠던 몸뚱이는 누군가의 귓가에 닿기도 전에 찬란한 소음으로, 빛나는 파편으로 부서져 버릴 것이라는 걸.
하지만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부서져 흩어질지언정,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온전한 제 이름으로, 가장 눈부신 빛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싶었으니까. 마음에 갇혀 질식해 가던 그 오랜 시간을 끝내고, 허공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싶었으니까.
지금, 녀석의 발들이 바우고개 정상의 메마른 흙을 박차고 있다. 갈기는 빛으로 젖어들고, 몸은 마지막 도약을 앞두고 있다. 부서짐을 향한, 그러나 비로소 완전해질 그 '살아냄'을 향한, 녀석의 눈물겨운 투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