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영원으로 팽창시키는 문학적 연금술

미학 선언: 결핍에서 찰나의 절대까지

by 김준완


​1. 결핍이라는 운명적 지반

​인간은 본질적으로 미완(未完)의 형상이다. 우리는 생의 시원(始原)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가올 종언(終焉)을 스스로 증명할 수조차 없는 망각의 존재들이다. 세계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만이며, 우리가 구축한 철학은 무지를 수식하는 수사학에, 종교는 심연을 가리는 성스러운 덮개에, 과학은 단면만을 도려낸 측정치에 불과하다. 삶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모순과 불합리의 지반 위에서 견뎌내야 할 형이상학적 역설이다


2.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존재론적 사건

​그러나 나는 바로 그 역설의 균열 속에서 미(美)의 전율을 목격한다. 아름다움은 결코 무결한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추(醜)의 터널을 통과하고 상처를 스스로 해독해 낸 자에게만 허락되는 고통스러운 통찰이다. 빛이 어둠의 부재가 아닌 치열한 투쟁의 결과이듯, 미학 또한 세계의 파편들을 내포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폐허 위에 피어난 꽃이 고고한 것은 그 형태의 수려함 때문이 아니라, 멸절의 서사를 뚫고 올라온 생존의 밀도 때문이다. 대상의 속성이 아닌, 맥락과 관계가 응집된 끝에 폭발하는 이 존재론적 사건이야말로 미의 실체다.

​3. 미학, 사유의 최상위 계층

​그리하여 나는 미학을 모든 사유의 정점에 둔다. 철학이 설명하고 과학이 분석할 때, 미학만이 세계를 해석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체험하게 한다. 그것은 진리를 박제하여 정의하지 않으나, 그 어떤 명제보다 선명하게 존재의 심장을 관통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밀도의 상태이며, 불완전한 존재가 잠시나마 절대의 경지에 육박하는 유일한 찰나다. 나는 이 '찰나의 절대'를 붙잡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4. 창작: 멸절을 이겨내는 승화

​내게 창작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승화(Sublimation)의 작업이다. 흩어져 사라지는 찰나를 서사로 봉합하여 견고한 구조물로 세우는 행위다. 한 줄의 문장에 생애의 무게를 압축하고, 단 한 장면 속에 세계의 탄생과 붕괴를 동시에 주조하는 것, 그것은 찰나를 영원으로 팽창시키고 영원을 찰나로 응축하는 문학적 연금술이다. 내가 쓰는 글은 단순한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모순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아름다움을 통해 존재의 완전성을 일시적으로나마 증명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5. 맺으며: 미적 체험의 구원

​인간은 끝내 진리를 소유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비록 진리를 손에 쥘 수는 없을지라도,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그 밀도 높은 순간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곧 진리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