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매듭, 혹은 발생으로서의 삶.

철학 에세이 그리고 시

by 김준완

〈 미완의 매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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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를 만나러 가는 날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맬까 고민하다
끝내 맨 적은 없었다

완벽한 매듭을 짓는 동안
너의 모래시계는 기울고
정중한 예의는 접어 두고
구겨진 서두름을 집어 들었다

거울 속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고
단추 하나를 풀며 문을 나선다

너의 전 생애를 빌려 마주할 찰나
가장 무거운 옷을 입고
가장 가벼운 걸음으로 네게 간다

나의 긴 하루를 쪼개어
너의 짧은 생에 겹쳐 놓으면
우리는 잠시 영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넥타이 대신 챙겨 온 것은
풀어헤친 목덜미 사이로 차오르는
숨 가쁜 진심 하나



- 철학 에세이형 시평 -

〈 미완의 매듭, 혹은 발생으로서의 삶 〉



우리는 시간을 산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어 붙이며 산다.

하루는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찰나들—서로 닿지 않는 순간들—을
하나의 선처럼 간주하려는 습관에서 만들어진다.
이 습관이 없다면, 삶은 연속이 아니라
끝없이 끊어지는 사건들의 집합으로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순간들은 이 인위적인 연속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하루살이의 시간은 짧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지속’이라는 형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간이다.
길이를 가질 수 없는 시간,
측정되기 전에 이미 사라져 버리는 시간.

이러한 시간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형식들은 흔들린다.
넥타이는 그중 하나다.
그것은 흐르는 것을 묶어
하나의 안정된 형태로 고정하려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러나 어떤 시간은 묶이지 않는다.
묶으려는 순간 이미 어긋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태도의 전환이다.

단추 하나를 푼다는 행위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보통 시간을 외부에서 바라보며
그 흐름을 정리하고 관리하려 한다.

하지만 그 단추가 풀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다루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발생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각각의 순간은 서로를 이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단절된 채,
그때그때 새롭게 시작된다.

이때 삶은 연속이 아니라
반복되는 발생이 된다.

우리가 ‘긴 하루’라고 부르는 것과
‘짧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같은 조건 위에 놓인다.

둘 다 지속이 아니라
각각의 순간들이 스스로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이는 길이에 있지 않다.
차이는 강도에 있다.

어떤 삶은 길지만 옅고,
어떤 삶은 짧지만 압도적으로 밀도 높다.

그리고 그 밀도는
시간이 얼마나 이어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급하게 사라졌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지점에서 ‘진심’이라는 말은

새롭게 정의된다.
그것은 내면의 깊이가 아니라
자신을 어느 속도에 맞출 것인가의 문제다.

숨이 가쁘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정한 리듬을 벗어나
더 빠른 소멸의 속도에 진입했다는 신호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는 것과 접촉한다.

완결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완결된 것은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다.

반대로 미완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 불안정 속에서만
새로운 순간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미완의 매듭은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의도된 중단이며,
끊임없이 시작하기 위한 방식이다.

삶이란 결국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음 속에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강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