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눈을 질끈 동여매는 순간, 사람들은 으레 암흑이 시작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번번이 배반당합니다. 짓눌린 안구의 뒤편에서는 오히려 이름조차 붙지 못한 색채들이, 막 도살된 짐승의 내장처럼 서로를 문지르며 미끈거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태초에 신이 빛을 만들기 전 어둠 속에 몰래 숨겨 두었던 가능성의 색들입니다. 하품이라는 벌어진 틈을 비집고 기어 나오는 그 광경은, 영혼이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오래 삼켜 두었던 색들이 입안을 찢고 탈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이 말들은 결코 투명한 발음일 수 없습니다.
기쁨(喜)의 노란 비명은 허공을 긁으며 번지고, 슬픔(哀)의 푸른 습기는 저녁의 목덜미를 핥듯 내려앉으며, 미워함(惡)의 검붉은 불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빨 자국을 남기며 타오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子宮)이라는 눅눅한 믿음 속에서 기어이 찢겨 나올 때, 세상에 태어나는 것 역시 연약한 핏덩이가 아니라 이 거대한 원색(原色)의 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다섯 시, 동방 박사들이 두고 간 파피루스 같은 백지 위를 걷다 문득 길고 깊은 하품 하나 흘리고 나면, 발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생의 빛깔들이 잉크처럼 번져 나와 하루 위에 얼룩을 남깁니다. 차가운 공기가 그것들을 애써 얼려 붙이려 할수록, 하품으로 달아오른 혈관은 더욱 펄펄 끓어 몸속의 채도(彩度)를 밀어 올립니다.
하품은 한나절 만에 당신을 해체(解體)하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입니다. 삶은 어차피 하품으로 견뎌내야 하는 마지막 세계이기에, 우리는 입을 벌릴 때마다 조금씩 지금의 형상(形象)을 흘려보내며 아직 도착하지 못한 다른 존재의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죽음조차 더 이상 검은 구멍이 아닙니다. 모든 색이 끝내 서로를 물어뜯고 으깨다 견디지 못해 한 점으로 썩어 무너져 내린 자리, 그곳에서 피어나는 가장 짙은 극채색(極彩色)의 꽃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하품 한 번으로 그 죽음의 혀끝마저 오늘의 입속으로 끌어올려 함께 삼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입을 벌리세요.
당신 안에 아직 썩지 못한 색들이, 무채색(無彩色)의 세계를 완전히 물어뜯고 찢어버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