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제1화

by 김준완

어떤 마음은 너무 무거워서 주변의 빛조차 제 안으로 굴절시켜 버린다.


​마치 한 잔의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검은 블랙홀이 되어, 세상의 모든 사실을 제 무게로 함몰시키는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 나를 지키는 파수꾼은 고양이다. 녀석은 새벽의 푸른 안개가 거실을 메울 때까지 난간 위에서 미동도 없이 나를 기다린다. 마침내 내가 깨어나 식어버린 세상의 온기를 대신할 에스프레소 한 잔을 입에 대는 순간, 녀석은 비로소 안심한 듯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나의 이 지독하고도 고독한 새벽의 일상은, 고양이에게는 하루를 딛고 여는 일종의 예배인 셈이다.


​커피의 뜨겁고 쓴 액체가 닿는 곳, 그곳엔 식욕처럼 끈질긴 말의 욕구를 가진 붉은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 안에서 짐승 하나가 울고 있다.


​나의 혀.


​때로는 세상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되고, 때로는 추한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이 감각의 지도는 세계가 분화되거나 무너지지 않고 굴러가게 하느라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한다. 그것은 베란다 구석에서 죽어가는 화분에 물을 주는 따위의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장류로서의 위상을 증명하는 고독하고 지난한 투쟁이다.


​잠에서 깨어난 혀가 요동치기 시작하면 가장 빛나는 별이 되고 싶은 하루의 욕망도 함께 눈을 뜬다. 나는 다시 허겁지겁 사바나의 세계로 뛰어든다.


​거칠고 숨 막히는 그 황야에서, 한 잔의 에스프레소와 요동치는 나의 감각은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