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영토 밖으로

제2화

by 김준완


​책상 위에는 퇴고조차 되지 못한 백지들이 비명처럼 흩어져 있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박힌 날짜가 나를 조롱한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단 마흔여덟 시간.


​이번 소설의 제목은 《스레드 세상》이다.


​텍스트로 엮인 느슨한 연대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신기루 같은 소통을 다루려 했지만, 정작 나의 세상은 그 실타래를 놓친 채 풀려나가고 있다. 스레드. 그 가느다란 실줄기 끝에서 내 세계의 축이었던 주인공이 사라졌다.


​ID @void_walker.


​그녀는 7개월 전, 무너진 사랑의 잔해를 들고 스레드라는 황야로 흘러 들어온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텍스트라는 얇은 실로 연결된 '스친'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삶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모르거나 거부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아무 데나 함부로 몸을 맡기지 않는 자의 고결함에 가까웠다. 삶이 요구하는 요령들 중 몇 개를 일부러 놓친 채 살아가는 사람. 늘 판단 이전에 침묵이 먼저 오는 사람.


​그녀는 상처를 숨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증명서처럼 내밀지도 않았다. 아픈 기억을 삶의 규칙으로 삼지 않고, 다만 그런 기억이 있었음을 담담히 수용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깊은 호감이 있었지만, 나는 끝내 선을 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나는 지난 연애가 남긴 서늘한 흉터 탓에 다가설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어제, 내 원고의 심장이자 일상의 은밀한 이정표였던 그녀의 계정이 증발했다. 화면 속 ‘알 수 없는 사용자’라는 문구는 누군가의 부재를 공식화하는 선언문처럼 차갑게 박혀 있었다.


​마흔여덟 시간 뒤면 나는 이 사바나에서 원고로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사라진 소설은 영혼이 빠져나간 박제에 불과하다. 그녀가 머물던 자리에 남은 것은, 식어버린 에스프레소 잔처럼 검고 끈적한 당혹감뿐이다.


​이제 혀의 골짜기에서 울부짖던 짐승은 결단을 내린다. 영장류의 위상을 증명하는 이 고독한 투쟁은 이제 원고지 위가 아니라 실제의 대지 위에서 벌어져야 한다. 거리를 두는 것이 유일한 능력이었던 비겁한 파수꾼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외투를 챙겨 입는다. 7개월간 텍스트로만 더듬어온 그녀의 흔적,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들을 조합해 가상의 사바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찾아야 한다.”


​그것이 마감을 위한 작가적 강박인지, 굴절된 빛 속으로 사라진 그녀를 향한 또 하나의 마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늘, 위험하고도 필연적인 외출을 시작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