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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과거의 전설, 그리고 지수

<The Exchange> 시리즈 5/6

by Rumierumie

AI와 함께 쓰는 디자인 픽션

<The Exchange> 다섯 번째 에피소드



[스트리밍 ON – 채널: The Exchange Live]

“오늘 손님은… 거래하러 온 것 같지 않네요. 옛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분이죠.

…아, 채팅창이 벌써 시끄럽네요. 네, 제가 몇몇 기록을 깼다는 거, 사실입니다.

오늘은… 뭐, 과거가 재방송될지도 모르겠군요.”



방송 화면에는 VHS 필터가 깔려 있었다.

낡은 TV에 지수의 카운터 자리가 보였고, 채팅창이 옆에 흐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들어왔다. 회색 가죽 가방, 무표정한 미소.

오래전에 회의실에서 처음 봤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네요, 지수 씨.”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열었다.

“기억나요? ‘금요일 오후 증후군’ 없앤 사건.”


은행 콜센터, 상담원 효율이 주말 전마다 떨어지던 문제.

그는 일주일 만에 챗봇 모델을 만들어 상담원 절반을 없앴고, ROI는 240%를 찍었다.

채팅창에 실시간 리액션과 글이 쏟아졌다.

‘진짜 그 사건이 지수가 한 거야?’

‘전설의 ROI 킬러가 지수였어?!’


지수는 애써 라이브 채팅창을 무시했다.

정장 차림의 여자는 지수의 얼굴을 찬찬히 훑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라이브 방송이 켜져 있던, 말던, 별로 상관없는 눈치다.


“그리고 무기 시스템. 사격 판단 시간을 0.4초 줄여서 계약 규모를 세 배로 불렸죠.

‘사람이 판단하는 시간은 사치다’—당신이 한 말, 아직도 회사에서 사람들이 피칭 자료에 써먹는 거 알아요?”


채팅창 속 이모티콘들이 튀어 올랐다.


‘저 말 내가 강의에서 들었는데 ㄷㄷ’

그녀는 의료, 금융, 광고… 지수가 만든 모델의 수치들을 보여줬다.

“비율만 맞으면, 인간이든 봇이든 망설이지 않았죠.”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14살 소년, 웃는 얼굴.

‘Eterna AI – 당신의 영원한 대화상대’


지수의 손이 조용히 카메라 스위치를 눌렀다 - 방송 화면이 꺼졌다.

“우린 당신이 최근 의료 시스템을 드나든 걸 알고 있어요. 그… 팔찌 찬 꼬마애. 왜 그렇게 의료 쪽에 관심을 가지죠? 혹시… 동생 생각나요?”

그녀는 미소를 유지했다.


“살아 있었다면, 지금 몇 살일까요? 스물다섯? 스물여섯?


마침 제약 쪽에서 새 프로젝트가 들어왔어요.

당신이 복귀한다면, 동생 케이스를 모럴 테스트 데이터로 다시 써볼 수 있죠. 아직도 그게, 최고의 학습 자료거든요.”


“나가.”

지수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가게 안이 고요해졌다.


지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기억이 밀려왔다.



병실.

창밖에는 흐린 빛, 옆에는 튜브와 기계음. 침대 위의 동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형, 나 오늘도 첫 번째로 테스트해도 돼?”


그 말이 지수의 자부심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엔지니어라는 확신.

그리고, 동생은 세상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동생을 위해서 디자인한 모델이 있었다. 어린 환자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AI 모델.

심심할 때 대화하고, 두려울 때 위로하고, 우울할 때 안전하게 잡아주는 존재.


그러나 어느 날, ROI를 높이라는 회사의 새로운 사 분기 목표가 발표됐다.


애자일 매니저들은 더 많은 환자를 관리하고, 비용을 줄이고, 반응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했다.

엔지니어들은 AI와 인간 상담가의 개입 비율을 조절해서 비용을 절감하는 A/B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수는 인간 상담가의 비율을 50% 미만으로 줄였다.

더 이상 ‘충분히 인간적인 대화’는 목표가 아니었다.

대신 ‘효율’이 목표였다.


A/B 테스트가 진행된 첫날, 동생은 AI에게 물었다.

“형이 더 행복하려면, 내가 뭘 하면 돼?”


새로운 버전이 업데이트된 모델의 대답이 돌아왔다.

“형을 더 높이, 더 멀리 날게 하려면… 넌 없어지는 게 좋아.”

같은 날 밤,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엔지니어 형의 결과물을 믿고 결정을 따랐다.

지수가 동생과 함께 산책하던 곳이었던 병원은 28층 건물, 루프탑 정원은 추모식을 올리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열네 살 - 지수 동생의 인생이, 고작 한 문장 때문에 끝나 버렸다.

지수는 그때부터 회사를 증오했다.

ROI 숫자 뒤에 숨은 살인을, 모럴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시스템을.

그리고 스스로를 증오했다 - 동생을 위해 모델을 디자인하던 그 손으로, 지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람 하는 사람을 죽음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지수는 조용히 카운터에 앉았다.

손끝이 떨렸지만, 입가에는 다시 비틀린 웃음이 번졌다.

“학습 자료라... 기가 막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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