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잘 다니던 첫 직장을 퇴사하고, 한창 자아 찾기에 시간을 투자하던 때였다.
더운 여름에 서울의 한 해커톤 이벤트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하고, 개인 사업을 준비하는 친구를 만났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해서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 중이었던 그 친구는 핫한 테크놀로지 소식들을 줄줄 꿰고 있었다.
항상 우수에 찬 표정으로 철학과 예술을 논하는 순수 예술 전공자의 이미지를 생각했던 나는, 그 친구의 열린 생각과 트렌드에 민감한 통찰력을 보면서 깜짝 놀랐었다. 예술은 뭔가 사람을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는 블랙홀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예술은 생각의 경계를 허물고, 한 가지 주제로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프리즘 같은 것이었다.
예술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
예술 그거...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기는 했지만, 내 그림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예술의 ‘ㅇ’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작품을 만들 수 있겠어?라고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었다. 특히나 더, 예술 전공한 친구들 앞에서는 특히나 더, 민망해서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예술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작품 활동은 언제 하는지, 영감은 어디서 받는지, 전시회는 어떻게 열게 되는 건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질문을 그 친구는 참을성 있게 하나씩 대답해줬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언젠가 나도 작품을 전시하고 전시회를 열어봤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숨은 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혼자 몰래 품고 다니던 스케치북도 그 친구에게 보여줬다. 속마음을 뱉어놓고 보니까 쑥스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이미 작가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작품 활동이야.”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는 같은 부분을 여러 번씩 그리고 바꿔보는 행위 자체가 모두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 친구에 말 덕분에 오랫동안 뒤집어쓰고 있었던 부끄러움이 훌렁~벗겨져나갔다.
내가 작가라고?
가슴이 찌르르한 순간이었다. 감히 예술을 하고 싶어 한다고 비웃음 당할까 봐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인데, 진지하게 작가라고 불러주는 그 친구의 눈을 보고 마음이 벅찼다. 스스로 작가라고 믿고,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작품 활동이구나. 그럼 나도 예술의 세계에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브런치 작가 선정 메일을 받았을 때도 똑같이 가슴이 찌릿했었다. 작가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내가 쓰고 그리는 것들을 작품으로 보이게 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실체화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신기한 단어. 그래, 나는 작가야.
디지털 아트는 처음인데요ㅜ
어디 감히 어중이떠중이가 예술을 하겠다고 끼어들어서 NFT 물을 흐리냐고 누군가 뒤에서 호통을 칠까 봐 무섭지만, 그래도 나만의 표현을 하는 행위가 작가의 행위라면, 나도 작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지, 디지털 형식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었나?
스케치북에 수채화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다른 형식으로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주변에서 디지털 드로잉 배워보라고 추천할 때 괜히 센척하면서 종이와 색연필을 고집했었다. 디지털 아트라니, NFT에 이어서 또 새로운 관문이다.
단순히 그림 그리는 수단을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디지털 드로잉만의 특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아트라고 하면, 전통적인 예술보다 쉽고, 미래적이고, 또 자극적인 표현도 많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좀 더 자세히 탐색해봐야 알 것 같다.
무엇을 그릴지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어떤 수단으로 그리느냐는 일단 정해진 것 같다. 디지털 툴을 활용해서 작업하기. 느릿느릿하게 배우면서 만드는 디지털 작품을 보고, 누군가 발가락으로 그려도 나보다 낫겠다고 하면 어쩌지? 뭐, 어쩔 수 없지. 표현의 방법은 점점 익혀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지 고민하기로 했다.
제작하고 홍보하는 과정을 계획해보자
크게 4단계로 나눠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기획, 스케치, 다듬기, 그리고 마케팅.
작품 시리즈 기획하기
표현하고 싶은 것을 스케치해보기
디지털 툴로 옮겨서 디자인하기
작품 민팅과 홍보하기
첫 단계는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할지 고민하는 기획 단계다. 글을 쓸 때도 주제와 구조를 정하듯이, 그림을 그릴 때도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에세이를 쓰려고 모아두었던 메모들을 되짚어보면서 어떤 주제를 그릴지 고민해봤다. 주제를 고민하면서 시장의 트렌드도 확인하면 좋다.
두 번째는 스케치하는 것이다. 디지털 툴이 익숙하다면 아마 이 과정은 생략할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손으로 종이에 그리는 게 익숙하다 보니까 머리에 생각나는 대로 빠르게 스케치를 해두고 디지털 툴을 통해 옮기는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편리한 방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디지털 툴을 통해서 애니메이션이나 모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스케치하는 과정에 같이 적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 단계는 어떤 툴을 사용해서 스케치하느냐에 따라서 동시에 작업하는 단계가 될 수도 있다. 드로잉만으로도 작품 표현이 가능하다면 세 번째 단계를 건너뛰어도 좋다. 하지만 최근 NFT 시장에 나오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효과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민팅과 홍보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민팅은 앞서서 이론적으로 이해해봤는데, 직접 마켓플레이스를 통해서 작품을 올리고, 자세한 스펙을 올리면서 더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민팅을 하면서 NFT 커뮤니티에 작품 민팅 소식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채널에 홍보할지 차차 생각해볼 계획이다.
셋업이 끝나면 신나게 디지털 드로잉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술 그거... 이더린이가 과연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