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출장.
일정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황금 같은 주말에 공항으로 향했다.
최근에 다녀온 출장지를 다시 가는 거니까, 대충 시간 계산이 됐다.
예상 도착 시간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했고, 보안 검사도 척척 끝났다. 물 흐르듯이 단계별로 마스터하는 것 같아서 우쭐해졌다.
탑승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길래 공항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려봤다.
차가운 아이스커피 한 모금, 주변 구경 한 바퀴, 쿠키 한 입, 노트에 끄적거리기 한 줄.
거의 콧노래가 나올 뻔했지만, 공항이 북적대서 콧구멍에 힘을 빡 주고 참았다.
계획한 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니까 살짝 욕심이 났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델타 항공사는 탑승 한 시간 전까지 미리 대기실에 와서 여권과 티켓 검사를 받고 기다려야 한다.
델타 항공사만 해당되는 절차인지, 미국에 가는 모든 항공편에 해당되는 절차인지 모르지만, 대기실은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딱 자판기만 한 대 있는 답답한 방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대기실에 가도 줄을 섰다가 탑승하니까, 몇 분 늦게 가도 될 것 같았다.
탑승 한 시간이 남은 시점. 딱 몇 분만 더 앉아서 비행 중에 어떤 일을 해야 효율적인가 생각하면서 목록을 정리하기로 했다. 체크 박스를 그리고, 할 일을 다 적었을 때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어? 델타 항공사 대기실이 언제 닫히는 거지?
식스 센스가 작동했던 걸까?
탑승 상황을 알려주는 안내판에 탑승 시작 표시가 뜨면 들어가려고 했는데, 벌써 ‘gate closing’ 빨간 불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출발 30분 전, 벌써 게이트가 닫힌다고?!
머리보다 몸이 빨랐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튕겨져 나왔다.
카페 테이블에 펼쳐놓았던 필기도구와 소지품을 쓸어 담고,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카페랑 가까운 게이트는 24번부터 시작되는데, 내가 찾아야 할 게이트는 20번이었다. 고작 네 개 차이니까 위치가 가까울 거라고 안심하면서 게이트 숫자를 확인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게이트 번호가 23번 이하인 곳은 15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아뿔싸, 우쭐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이때부터 아무 생각도 없이 팔다리를 휘두르며 게이트 20을 찾아 뛰었다.
낡은 캐리온 가방이 덜덜거리며 큰 소리를 내니까, 앞에서 천천히 걷던 사람들이 무서웠는지 냉큼 길을 내주었다.
달리기라기보다 온몸으로 굴러가며, 가기 싫다고 늦장 부렸던 대기실 문을 간절하게 찾아다녔다.
게이트 18, 19…20!
게이트 문 앞에는 나만큼이나 간절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는 델타 항공사 직원이 서 있었다.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어주길래 있는 힘껏 뛰었다.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여권과 티켓을 스캔해 주면서, 아직 시간 있으니 괜찮다고 진정시켜 줬다.
우쭐거리다가 출장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탑승 줄 맨 마지막에 섰다.
어휴, 건방지게 굴었다가 혼쭐이 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겨우 숨을 돌리고, 다시 필기도구를 꺼냈다.
아까 공항 카페에서 적었던 할 일 목록이 정갈하게 적혀있었다.
이번엔 우쭐대지 말고 하나씩 계획한 대로 실천하기로 했다.
자, 이제 가장 첫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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