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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e Nov 09. 2023

혼잣말보다는 일기 쓰기

잘했어요 도장은 필요 없는 성인의 일기 쓰기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근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실은 말보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 집에 있으면 마치 누군가 옆에 있는 것처럼 내 생각을 전하곤 한다. 그니까 정말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만큼 혼잣말을 쏟아낸다. 스스로 아픈 사람처럼 느껴져 방향을 바꿔 보기로 했다.

글은 이상하거나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들이 쓰는 것 같다. 나처럼 가벼운 생각만 하는 사람이 쓰는 글은 어떤 느낌일까? 호두알에 호두가 없는 느낌이려나? 호두알에 호두가 없으면 그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누군가는 찾아다닐지도 모르지. 

예전에는 나에게 일기란, 하루 일과와 느낀 점을 기록하고 날씨가 어쩌고 저쩌고를 쓰는 좀 귀찮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본다는 생각에 솔직한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최대한 어린아이답게 천진하고 혼나지 않을 말들을 골라서 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면 거의 쓸 말이 없었다.

지금은 일기를 쓸 때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은 모두 생략한다. 그리고 두서는 없지만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쏟아낸다. 그럼 크게 트림 한번 한 것 같다.

나이가 좀 먹어 좋은 점은 일기에 대해 간섭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일기를 쓰고 받았던 참 잘했어요 도장보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해 일기를 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날씨: 비 / 날짜: 2023.11.09. 목요일 / 기분: 모르겠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창문 틈으로 세어 들어오고, 카페 안의 음악은 바깥의 공기보다는 들떠있고, 유리잔 안의 얼음은 시간이 얼어붙길 기다리고, 앞자리에 연인은 대화가 없어진 지 오래고,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고, 앞으로 마주해야 할 일은 4년 전에 잃어버린 우산을 찾는 일만큼 아득하고, 창밖으로 아까보다 더 굵어진 빗줄기가 보이고, 하지만 오늘은 가방에 우산이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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