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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e Aug 28. 2023

#제주살이 4일차
우리가 선택한 도망지, 삼달리

퇴사자의 제주도 한달살이 시작

내가 어부와 선택한 도망지는 '삼달리' 라는 제주도의 조용한 마을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짙은 풀향이 코 끝에 훅 끼쳐온다. 높은 습도와 눅눅한 풀 비린내는 어쩐지 제주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청귤 과수원을 보고있으면 8월의 제주 풍경이 싱그롭게 다가온다. 한달동안 머물게 된 숙소는 귤 과수원 안에 지어진 아담한 주택이다. 도망지로 선택한 한적한 삼달리를 구경하느라 벌써 4일을 써버렸다.


보기 드문 귤 과수원 뷰


 제주살이는 회사생활에 지친 어부의 호기로운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퇴사를 하면, 제주도로 가자. 주택을 얻어서 같이 한달살이 하자."

서로 다른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던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숙소를 알아보았고 낭만을 실현했다. 나는 자연을 벗삼은 책방과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꿈이 있고, 어부는 바다만 보면 침을 흘리는 낚시광이니 제주도는 우리에게 최적의 도망지였던 것이다.


집을 나서는 길목


처음으로 동네를 산책하다가 조금 의아해졌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집도 있고, 양식장도 있고... 사람 사는 동네는 확실한데 주민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뙤양볕과 혼자서 푸르른 바다만 있는 동네 같았다. 이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장님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곳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그 집을 리모델링하여 한달살이 숙소로 많이들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집으로 향하는 가까운 길목에도 아흔이 넘는 우리집 주인의 어머니께서 혼자 사신다고 들었다.


삼달리 카페 '보리'에서 우중충한 바다 보기


삼달리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제주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하늘이 아름다움에 취해 약간 맛간 것 같다고 생

각했다. 매미가 발악하는 뜨거운 날씨였다가도 갑자기 비가 한껏 쏟아지고 또 쨍쨍해진다. 바다의 빛깔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푸른색이었다가 금새 거무스름한 무서운 빛을 띈다. 아이가 신나게 조개를 줍고있던지 말던지 뜨겁게 백사장을 달구고, 어렵사리 휴가를 낸 직장인이 관광을 하던지 말던지 비바람을 몰아친다. 삼달리에서 바라본 자연은 무심하고도 자기 멋대로이다. 이런 것이 나를 비로소 편안하게 만든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 가는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난 어차피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테니, 너도 너가 가고싶은 곳으로 가'


해질녘 바다에 선 바용(바다용사) 삼인방


바다를 보는 나와 어부는 동상이몽이다. 나는 바다의 빛깔과 파도를 보며 생각의 물꼬를 트지만, 어부는 한치 낚시배 불빛을 보며 흥분하고 파도의 포말을 보며 농어를 생각한다. 그의 말에 맞장구는 치지만 공감은 하지 않는다. 나도 머릿속에 생각을 다 말하며 공감을 바라지 않는다. 어부와 나는 언제나 함께이지만 혼자이며, 그렇기에 동등하다. 하지만 하나는 같다. 그와 나는 삼달리와 바다에 집중하고 있으며 서울의 일은 접어두려고 하고 있다. 내가 어부와 함께 도망할 수 있었던 이유, 그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천진하다, 나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포말에는 비록 쫄깃한 농어와 멋진 파도소리는 없지만 조금 엉성하게 마주보고있는 서로가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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