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YOU 인터뷰 #3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아삶공의 김경호 대표님과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던 그 날. 우리는,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차를 한 잔 같이 마셨고, 서로에 대해 그리고 아삶공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처럼.
대표님과의 첫만남은 이토록 강렬했다.
- 아삶공이 위치한 대구 삼성창조캠퍼스
ㅣ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외조부 밑에서 흙창고 이런 걸 같이 지었어. 아마 거기서 장난치는 정도였겠지.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어. 그게 시작이었지. 아마 그 즈음부터 어렴풋이 건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중학교 때 기술선생님이 ‘너는 건축을 했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이 남네.
ㅣ대학에서 한 건축 공부는 어떠셨나요?
대학교 때, 내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교수님들을 되게 괴롭혔거든. 빨리 더 배우고 싶은 거야. 내가 3학년 때즈음 교수님을 찾아가니까 갑자기 경제학 공부를 하라시더라고. 그래서 경제학 공부를 했어. 다음에 또 가니까 이번엔 사회학 공부를 하라는 거야. 경제학, 사회학을 다 하니까 철학을 또 하래. '건축가가 왜 이런 공부까지 해야 될까' 이런 생각 많이 했지. 근데 이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어. 그게 베이스가 되어야 해. 경제학, 사회학, 철학은 근본이었어. 나무 기둥이 건축이라면, 뿌리는 경제학, 철학, 사회학, 이런 것들이 되어야 해. 이게 근본이야. 근본이 튼튼해야 되는 거야. 인문학적 바탕 위에서 테크니컬한 것이 나온다는 거지.
ㅣ건물 하나가 지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우선 기획을 하는 사람이 있어. 시행사가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 여기 아파트를 짓겠다, 공공건물을 짓겠다. 그럼 예산을 잡겠지. 얼마 범위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하겠다. 그 다음 단계가 설계야. 설계는 보통 공모를 해. 이렇게 공모를 해서 뽑힌 사람은 앞의 기획을 반영해서 설계에 많은 생각을 담았겠지? 다음이 시공인데, 설계가 시공으로 연결되어야 되는데 그렇게 안 돼. 왜냐하면 시공사를 뽑을 때 입찰을 하거든. 복불복이라는 거지. 게다가 입찰이 된다고 해도 다른 업체에 하청 주고 이러거든. 벌써 몇 단계를 내려왔니? 그동안 시행사나 건축가의 의도는 다 희석되어 버리는 거야. 그저 얼마짜리의 공사건으로 정성이 안 들어가겠지. 그럼 하나의 건물로 전락하는 거야.
그래서 아삶공은 기획도 하고, 설계도 하고, 시공도 하고, 관리도 해. 규모는 작지만 계속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집을 지어준 지 20년이 지난 사람도 찾아오는 거야. 관계가 성립되는 거지. 거래가 아니야. 아삶공은 관계의 지속적 성립을 우선하고 있어.
- 상상이 그림으로, 그림이 현실로.
ㅣ아삶공이 무슨 뜻인가요?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라는 뜻이야.
내가 나이 삼십에 '좋은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사무실를 차렸어. '건축을 통해서 세상에 좋은 일을 하자' 이런 의미였지. 근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내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일을 해도 사람들이 그걸 악용하는 거야. 비리를 저지른다든가, 횡령을 한다든가. 그래서 내가 깨닫지.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해 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구나. 아무나, 누구나의 집이 아니라 아름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지어 드리자. 그래서 아삶공이 나온 거야. 그게 아삶공의 시작이지.
ㅣ공간을 디자인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에너지. 집이 건강하려면 자연의 에너지를 존중하고 순응해야 돼.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람이야. 숨은 쉬어야지. 그 다음이 햇빛이야. 햇빛은 우리를 살찌게 해. 소독을 하고. 다음이 물. 불. 흙. 나무 등인 거야. 그게 디자인의 요소인거지.
두번째는 어울림이야. 집을 지을 때는 항상 이웃(주변의 건물, 자연, 도로 등)이 있게 마련인데 그럼 나는 원래 있던 얘하고 어떻게 친해질까 생각하는 거야. 먼저 있던 녀석보다 나으려고 하는, 뽐내려고 하는 생리적 욕망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거지. 그렇게 점들은 선이 되고 그게 거리가 되는 거야. 도시 설계적 측면이지. 건축은 하나의 점이야. 이 점들이 잘 이어지면 거리가 아름다워져. 건물 하나가 아무리 잘 지어져도 혼자 튀면 아름답지 않아. 그러면 단순한 미관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는 거지.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 나는 이걸 '제2의 인간성 원리'라고 생각해. 서로 존중하고 맞춰서 닮아간다는 거지. 대학교 3학년 때 건축대전에서 입선한 작품의 제목도 '제2의 인간성 원리'였지.
ㅣ내가 만든 공간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이건 이루 말할 수 없지. 메일이나 메세지를 많이 받아. 집을 지어줘서 너무 감사하다, 당신이 집을 지어줬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앉아서 와이프와 와인 한 잔 할 수 있다, 손주와 놀 수 있다, 그런 거 말이야. 내가 지어준 집은 계속 남아있잖아. 공간에는 영속성이 있어. 건축의 매력이 바로 그런 거야.
ㅣ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나눔이야. 그리고 나누기 위해서는 '예(禮)'가 있어야해. 일단 예의를 갖춰야 해. 내가 정성스럽게 공간을 지어도 사람들이 소비성으로만 이용하면 그걸 다시 관리하는 데 비용만 계속 들어. 결국은 가치가 깎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해.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지. 아삶공의 경우는 펀딩을 해. 직접 회원이 되고 참여하는 거지. 그들이 함께 했기에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거야. 회원과 펀드가 아삶공의 에너지원이야. 아삶공은 계속 선한 사람들로 인해 이어져야 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참여해서 아삶공의 회원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무나는 안 돼. 예의를 갖추고 나눌 준비가 된 사람,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거야.
ㅣ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어머니 집을 지어드렸던 거지. 아삶공 첫 작업으로 안동대학교 옆에 어머니 집(원룸)을 지어드렸어. 여느 집처럼 도로변에 바짝 붙여서 꽉 채우는 덩어리의 건물이 아니라 앞마당과 뒷마당을 두고 주인과 세입자들이 두 마당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였는데 앞마당은 어머니 텃밭과 잔디밭으로 꾸며져 매달 1회의 반상회를 열어 학생들과의 소통의 장으로 사용했는데 그날은 떡과 과일을 준비해 함께 놀았지. 이웃 하숙집의 학생들이 담장 위에 올라와 함께 어울리거나 부러워하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뒷마당은 어머니 또래의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셔서 담소도 나누고 길쌈도 하면서 함께 쓸 수 있게 했어. 어느 여름날 저녁에 옛날 영화 테이프를 빌려서 뒷마당에서 틀어드렸거든.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영화였는데, 길쌈을 하시다가 모두 엉엉 우시는 통에 난감했던 기억도 나네. 처음 집 지을 때 마당을 크게 두니까 사람들이 집을 왜 그렇게 짓냐고, 그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웃음) 근데 봐. 그 덕에 마을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잖아. 꽉꽉 채운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공간은 '비어있는 사이'라는 뜻이야. 비어있다는 건 없다는 게 아니라 무언가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다는 거거든. 준비하고 있는 그 상태가 가장 아름다운 거야. 그곳을 채우는 게 우리지. 사람들이 채우는 거야.
ㅣ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아름답다는 것은 선(善)과 연결되어 있더라고. 건축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선'이 무엇일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이었어. 좋은 것을 줬는데 받는 사람의 반응은 그렇지 않아. 그럼 선이 아닌 거지. 나에게만 좋은 건 선이 아닌 거지. 그래서 그 때 철학책을 많이 봤어. 그러다 일본의 한 철학자 책을 보고 딱 멈췄어. <선의 연구>라는 책이야. 그 책을 읽고 더 이상 선에 대한 책을 안 읽어. 내 마음 속에 선에 대한 기준이 생겨버린 거지. 근데 내가 그걸 쉽게 얘기해줄 수는 없고, 너희들이 그걸 직접 느꼈으면 좋겠어. 그냥 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부터 채워지는.(웃음)
ㅣ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는 누구인가요?
처음 집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신 외조부. 연탄보일러를 만들고 다락방을 함께 만들었던 아버님. 대학교 다닐 때의 이상해, 윤인석, 임창복, 조대성 교수님.
그리고 지금도 관계맺고 있는 건축주분들과 함께하고 있는 아삶공 식구들이지.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함께라는 단어, 가치라는 단어. 나 같은 너, 너 같은 나가 되어야 일을 할 수 있어. 방향과 목적이 비슷하면 참 좋아.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바톤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거야. 너희같은 사람들이 말이야. 그게 계획이고 목표고 꿈이야.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여러 가지 생각나지만.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노벨상도 받은 작품이지. 이 내용이 '하루의 일기'야. 단 하루의 일기 속에 60년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한수산의 <부초>랑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도 좋아. <배움의 발견>은 한 여성이 억압된 환경 속에서 교육하는 과정을 얘기한 작품이야. 그리고<성경>도 좋고, <불경>도 좋아. 다만, 해석하는 것을 잘 해야 해. 진실을 봐야 해. '예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같은 사실을 보지 말고. 본래의 의미를 알았으면 좋겠어. 진실과 사실이 다를 수 있어. 진실이 중요한 거야.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입니다."
학생의 학(學)자가 배움이라는 뜻이잖아.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 심지어 묘비에도 망자에 대한 추서로 '학생(學生)'이라고 쓰거든. 가끔 학생이라고 소개하면 조그마한 꼬맹이가 “몇 학년이야?”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어.(웃음)
하지만 글은 이렇게 쓸게. 상징성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아삶공 건축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자기 공간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 공유해야 한다는 것. '주택은 배타적 소유공간이 아니라 소통과 공유의 공간'이라는 것이 김경호 대표님의 철학이다.
"좋은 건축이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증명하는 것이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한 말이다.
아름다운 삶의 공간은 그 곳에서 생활하는 우리로 하여금 완성된다. 그 공간이 어디든 상관없다. 집이든, 교회든, 학교든, 직장이든, 공원이든, 허름한 판잣집이든, 호화로운 고층 아파트든.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사람에서 사람으로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공간은 항상 아름다울 것이다. 어렵지 않다. 그냥 나누면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나처럼 즐길 수 있도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나처럼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