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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Dec 23. 2020

바위의 기록

조금씩 부서지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새벽 여섯 시 사십 분, 크래시 패드 두 장을 짊어지고 스토니 포인트 파크 (Stoney Point Park)에 들어서자 차갑고 푸른 새벽 공기에 배어 있는 말똥 냄새가 평소처럼 나를 맞아주었다.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승마 학교 울타리 안쪽으로 마찬가지로 평소처럼 말들이 첫 햇살을 맞으며 어슬렁거리거나 맘마를 먹거나, 한적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봄에 새로 태어났던 마호가니 색 아가 말은 그 새 많이 컸음에도 여전히 엄마를 따라다니며 어리광을 부렸다. 스토니 포인트에 대한 기억 매 페이지에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가는 냄새와 풍경이다.


 저기 왼쪽으로 보이는 'Boulder 1' 바위 앞에 누군가 벌써 패드를 깔아 놓고 몸을 풀고 있었다. 세대를 걸쳐 수많은 이들이 오른 역사가 초크 자국으로 계속해서 쌓여가는, 볼더링의 개념이 태어난 상징적인 바위다. 


 목장 울타리 주변으로 심어져 있는 높고 커다란 나무들의 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이는 따스한 이른 아침의 햇빛은 말들이 저벅거리며 일으킨 모래 구름을 만나 찬란한 빛살로 쩍, 하고 갈라졌다. 이에 넋을 놓고 2분쯤 걷다 보면 나타나는 스토니 포인트의 가장 인기 있는 바위 두 개, 'Turlock'과 'B1 boulder' 사이의 골목을 지나, 언제 봐도 내가 완등 했음에 자랑스러운 'Powerglide' 바위가 시야에 들어올 때 즈음되면 왼쪽으로 꺾어 경사진 언덕을 오를 때였다.

 지난 며칠간 불었던 강풍에 모래 트레일은 옅어지다 못해 온 사방 휘날린 나뭇잎과 가지에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순간 길이 헷갈리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시원하게도 갈라진, 아주 익숙한 'Split boulder'가 나를 다시 이끌어주었다. 이를 지나쳐 능선을 걷고 있으려니 낮은 갈대 풀들 사이로 토끼들이 뛰어 다니는 편안한 오솔길이 나타났다. 막 떠오르는 햇살에 빛나는 풀들은 괜히 마음을 벅차게 했다. 왼쪽 편으로 새들이 매년 둥지를 틀어 똥과 깃털이 가득한, 우뚝 솟은 'Beethoven's Wall'이 보이면 가까이 붙어 걷다가 갈림길에 딱 마침 놓여 있는 이름 없는 바위에서는 왼쪽 길을 택해야 했다. 오른쪽 길을 택한다면 험난한 계곡을 돌고 올라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곧 내가 오르고자 하는 바위에 다다랐다. 


 파도가 끝없는 소멸을 통해 나에게 위안을 준다면, 바위는 마치 영원할 것 같은 불변을 통해 나를 위로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바위를 하나하나 이정표 삼아 걷다 보면 내가 오르고자 하는 바위 또한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몇 년 전에도, 저번 달에도, 저번 주에도, 오늘도, 내일도 내가 그 바위를 찾아 가면 그것은 거기에 있다. 

 '그간 잘 있었구나. 오늘도 잘 부탁해.'


 내가 처음으로 아웃도어 볼더링을 시작한 곳인 만큼, 스토니 포인트에는 내 실력이 턱도 없이 부족할 시절부터 수많은 세션에 걸쳐 시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정말 많다. 다시 도전할 때마다 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동작들이 가능해지는 것에 희열을 느낄 때도 있고, 여전히 할 수 없거나, 새로이 할 수 없는 다른 동작에 부딪혔을 때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바위는 내가 지금 어디 즈음에 있는지,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 재확인해주는 잣대가 되어준다.


 그렇게 나는 그 날 아침, 긴 시간 동안 프로젝팅을 하던 바위, 'Font' 앞에 또다시 섰다. 처음엔 이딴 것을 어떻게 오르나 싶었지만 서서히 방법을 찾아가던 문제였다. 그러다 얼마 전 어느 늦가을날 결국 마지막 동작까지 성공했는데, 안타깝게도 땀에 젖은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잡을 홀드 하나 없이 순수하게 돌과의 마찰력만으로 올라야 하는 문제였던 만큼 온몸의 근육을 다 쓰고 있어도 손에 땀이 많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날씨가 꼭 필요했다. 일주일 정도 후 반갑게도 기온이 뚝 떨어졌고 나는 그 날 드디어 이 문제를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Font, 딛고 있는 오른 발이 부서졌다.

 서늘한 첫 홀드를 만지자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각도 상 보이지도 않지만 몸이 완벽하게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포켓에 두 손가락을 넣고 몸을 당기니 역시나 차가워 내 몸이 단단하게 지탱되었다. 이젠 오른발을 좋은 크랙에 높이 올린 다음, 내 모든 체중을 거기에 싣고 몸을 끌어올릴 차례였다. 그럴 차례였을텐데, 오른발 크랙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깊고 좋은 크랙이라 찾으려 하지 않아도 확실하게 보이는 홀드인데 말이다. 아직 새벽 그늘의 어두움 때문인가 싶어 일단 내려와 크랙을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며 들기 시작한 불안한 마음에 이리저리 한참 살펴보았지만, 이렇게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부서졌구나. 


 샌드스톤(Sandstone, 사암)은 워낙 물러서 부분 부분 부서지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특히나 젖었을 때엔 정말 모래 뭉치처럼 우수수 흩어지기 때문에 비가 온 후 며칠 동안은 샌드스톤 바위를 오르는 것은 클라이밍 세계의 금기 중에서도 금기이다. 바싹 마르면서 신기하게도 다시 단단함을 유지하게 되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깎여 나가는 바위에 스토니 포인트의 문제들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간다.


 완등을 완전히 눈앞에, 안경도 아닌 거의 컨택트 렌즈 정도 거리 앞에 두고 발 홀드가 깨져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힘 빠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키, 덩치, 클라이밍 스타일에 관계없이 누구나 체중을 가득 싣는 발 홀드가 수십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 더 놀라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식으로 바위를 올라보려 했지만, 별의별 짓을 다 해 보아도 나로서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바위를 개척하는 이들은 정말로 대단하다. 새로운 바위 무리를 발견했을 때라던지, 방금처럼 홀드가 깨져 문제가 바뀌었을 때라던지,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은 도전을 한다. 자신들이 경험해온, 즉 알고 있는 클라이밍의 경험을 토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클라이밍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다. 실력과 경험이 부족한 나는 그저 그런 선구자의 길을 따라 걸으며 이들의 완등 경험에 비춰 나 또한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바위를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그런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는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푼다. 그 '답'이 본질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적어도 시험을 볼 때 있어서는 확실한 '답안'이 정해져 있다. 대학원에 와 연구를 하고 있으려니 무엇이 답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답안을 나 자신만이 찾아가는 일이다. 이전 석사 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커다란 지식의 덩어리에 아주 조그마한, 나만의 방울 하나씩을 더해가라고, 그러다 보면 위대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고. 이것이 내게 정말 맞지 않는다고 뼈저리게 깨닫고 있지만,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도, 클라이밍적으로도 말이다.


 하여튼 그 날 'Font'에서 나는 그 새로운 '방울'을 더할 수는 없었다. 밑에서 받쳐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맘껏 도전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바위에 인사를 건네었다. 또 누군가 이 바위를 오르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때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돌아오는 길, 다시 이름 모를 바위를 만나고, 'Beethoven's Wall'과 갈라진 바위 오른쪽에 끼고 걸어 언덕을 내려왔다. 바로 집에 갈지, 다른 문제를 해볼지 고민하다, 마찬가지로 몇 년 동안 시도했다 포기했다를 반복해왔던 'Turlock' 바위의 유명한 문제, 'Master of Reality'에 다시 붙어 보기로 했다.


 2년 반 전, 같이 일하던 클라이밍 짐 동기가 나더러 이 문제를 한 번 해 보라고 권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내 나름대로 문제를 시작하자마자 왼발을 높이 올려 한 발 스쿼트로 몸을 띄워야 했는데, 몸이 완전히 늘어진 상태라 아무리 힘을 써도 몸에 텐션이 걸리지를 않아 계속 떨어졌다. 동기 놈은 그런 나를 보고 있다가, 아주 중요한 트릭이 있다며 그제야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내가 한 것은 일단 다 맞고, 다만 한 발 스쿼트를 할 때 손으로 무릎을 꾹 누르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린가 반신반의하면서 해 보았더니 기가 막히게도 되는 것이었다. 왜, 쭈그려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무릎을 꾹 누르고 일어나면 조금 더 쉬운 느낌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동작을 해결하고 나서도 윗부분은 초짜였던 나에게 굉장히 어려웠고, 조금 더 실력이 늘면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말로 신기했던 그 동작이 늘 아른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이 문제를 다시 시도하러 가니 아주 쎄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발 스쿼트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왼발 홀드가 부서진 것이었다. 무릎을 누르건 말건, 더 이상 발을 올릴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에 클라이밍을 하던 로컬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미친놈이 비가 온 바로 다음날에 이 문제를 시도하면서 깨 먹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런 놈들이 없었다면 이 COVID-19 사태도 이렇게 심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이후에도 그 문제는 별의별 수난을 다 겪었다. 어쩌다 바위 한 덩이가 떨어져 나가 아주 좋은 홀드가 중간에 생겼는가 하면, 또 어떤 미친놈은 드릴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벽 중간에 좋은 홀드를 파 내고야 말았다. 몇십 년 전에는 이렇게 바위를 파내는 일이 흔했다고 하지만, 지금 시대에도 그럴 줄은 몰랐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또라이들이 스프레이를 들고 와 신나게 그라피티를 그려 놓아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발 홀드들을 더 미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속으로, 사실은 육성으로, 할 수 있는 쌍욕은 다 했다. 그라피티를 '예술'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것은 나에겐 반달리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Master of Reality, 09.2020
Master of Reality, 11.2020

 그러나 그 날엔 그라피티가 없었다. 그 꼴 보기 싫던 동그라미 안 별 모양의 그라피티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스토니 포인트의 쓰레기나 그라피티 등을 정리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왔다 간 모양이었다. 왼발은 여전히 부서져 있고, 드릴로 뚫어놓은 홀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왠지 후련한 마음이었다.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방식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원래 문제에 존재했던 홀드들만 사용해서, 나름 제법 새로운 방식으로 바위를 올랐다. 왜 2년 반을 오르지 못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가볍게 올랐다. 


 새로운 세대의 클라이머들이 유입될수록 점점 이 문제의 역사는 잊혀 간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홀드들을 사용하고, 원래는 '무릎 누르기' 동작으로 올랐다는 것들을 모른다. 분명히 누군가는 새로 그라피티를 뿌려댈 것이고, 또 누군가는 와서 지우는 노력을 할 것이다. 어쩌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형태로 바위가 변할지도 모르고, 또 그 누군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파도라는 녀석은 부서지고 발생하는 끝없는 순환 중 한, 두 개쯤 간신히 잡을 수 있는 유한함을 통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 준다. 반면, 평생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바위는 알게 모르게 변하여 가기에, 소위 말하는 '있을 때 잘하'라는 유한한 가치를 제공한다. 바위를 오르러 갈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이고, 한 바위에 붙었을 때 시도할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다음 언젠가 다시 그 바위를 찾아갔을 때 내가 기억하던 모습대로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으며, 나의 몸은 시간의 흐름에 조금씩 늙어가며 약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바위에 오르려는 매 시도에 나는 온전히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내가 올랐던 자랑스러운 바위들은 아마,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찬란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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