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May 03. 2021

대가리, 손, 꼬리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 식구들

1. 대가리


 2020년 세금 정산이 처리 되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혹시나 내가 누락한 것이 있어 일이 복잡해지지는 않을지, 더 지불해야 할 것이 생기지는 않을지 등등 이런저런 생각으로 알게 모르게 긴장하던 중 드디어 괜히 마음이 놓였다. 주수입자, 'head of household'로서 떠맡아야 하는 나름대로 중요한 책임이다.


 이 집의 '대가리'로서 책무 하나를 마쳤노라고 아내에게 전했다.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대답했다.

 "그치, 빙수는 이 집의 아주 중요한 대가리지.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서류나 행정도 처리하고, 운전도 하고, 양파나 파프리카의 기원이나 동물의 색각 (color vision)의 진화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녀미는 뭐지? 심장?"

 또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대답했다. 

 "손? 손이 아닐까?"

 "오 맞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 손

 

 나는 아내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손을 좋아한다. 곧잘 차가워지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을 때 그의 손이 따뜻해지는 것이 좋다. 늘 집안일을 하느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느라, 아가 고양이를 돌보느라, 만들기를 하느라, 풀을 돌보느라, 클라이밍을 하느라, 서핑을 하며 바닷물에 담그느라 상처나고 단단해진 그의 손이 안쓰러우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의 손이 사랑스럽다. 손 뿐만일까, 나에게 있어 나의 아내는 존재론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것이 콩깍지라고 한다면 평생 벗겨지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살의 언제 즈음, 대충 지금부터 11년전 쯤 전, 아내는 나에게 조그마한 시를 적어 보내주었다.


손을 쭉 내밀고 있으면 잡아줘요.
가만히 서 있으면 다가와요.
그러면 나도 손을 잡고 따라가.


 우리의 관계가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손을 늘 잡았고,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요즘 우리는 시원한듯 따뜻한 봄 밤의 공기를 맞으며 손을 잡고 저녁 산책을 하곤 한다.


 스물 한 살, 아내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해서 아직도 가슴이 마구 떨리는 선물을 해 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시를 한 작품씩 골라,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적은 시를 더해 나만을 위한 시집을 선물해 주었었다. 한 장씩 시를 프린트 해서 실로 엮고, 예쁜 색깔의 커버를 입혀서 내게 주었다. 나는 아직도 이 선물에 준하는 선물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늘도 그에게 고맙다.

 

 아내의 손은 귀여운 것 뿐만은 아니다. 정말 엉성하고 어설픈 나의 손과는 달리, 어찌 그렇게 손끝이 야무진지 모른다.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의 '손'을 담당하고 있다.

삼겹살을 굽는 손

 아내의 음식에 대한 열정은 늘 놀랍고, 점점 더 놀라워지기만 한다. 2010년쯤에는 지금과 달리 집에서 파스타를 볶아 먹는 것조차 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부터 알리오 올리오라던지 크림 파스타 등에 아주 멋진 샐러드를 곁들여서 나에게 대접해주곤 했다.

집에서 띄우는 청국장, 쭈꾸미

 처음 데이트를 하던 날 같이 파스타를 먹으며 나보고 새우를 깔 줄 아냐고 물었던 아내는 (물론 나는 그 때도, 지금도 못 깐다) 이제 집에서 콩으로 청국장을 띄우고, 쭈꾸미를 손질한다. 처음에 오징어나 고등어, 생 오리를 사왔을 때 내장을 분리하거나 머리를 자르는 작업만은 내가 했지만, 이제는 뭐가 대수냐는 듯 별의별 재료를 손질할 수 있게 되었다.

 산더미같은 야채를 손질하고, 다루기 쉽지 않은 새빨간 선지를 으깨어 순대를 만든다. 베란다에 부르스타를 준비하여 하루 내내 돼지 육수를 삶아 내고, 그것으로 기어코 순대 국밥을 만든다. 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는, 그의 손은 우리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치킨을 튀기는 손

 만두를 빚는 손

 베이킹을 하는 손

 고기를 손질하는 손

 도넛을 튀기는 손

 내가 놀러 나간다고 김밥을 싸 주는 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손


  아내는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수많은 것들을 뚝딱뚝딱 부수고 잘라 붙여 우리 집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곤 한다. 집 안에 조금씩 쌓여가는 공구들 중엔 내가 써 본 적이 없는 것도 수두룩하다.


 동네 길가에 버려져 있던 낡은 의자를 사포로 벅벅 갈아내고 엉덩이가 아프지 않게 조그마한 쿠션을 만들어 아내가 하루에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식탁 및 작업용 테이블 의자로 삼았다. 친구가 우리에게 준 피아노의 의자가 너무 낡은 것을 보고, 그 위에 천을 덧대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꿰매 주었다.

 밖에서 클라이밍을 하며 쉽게 해지는 바지를 수선하거나, 동전지갑이라던지 평소에 이런저런 것을 담을 수 있는 파우치를 만들곤 한다.

 아내가 예전부터 한참 해오던 뜨개질. 지난 겨울 동안 어찌나 많이 짰는지 모른다. 본인의 조끼, 스웨터, 가디건, 그리고 어쩌다 보니 구름이의 전유물이 된 것만 같은 따스한 목도리와 담요.

 언젠가 아내가 '바구니 가게'에 가겠다고 했다. 대체 바구니 가게가 무엇이며 왜 이런 것이 이 근처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바구니에 관련된 다양한 라탄 자재를 파는 가게가 집에서 자전거로 30분정도 거리 안에 있는 것이었다. LA에는 없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아내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라탄 가지들을 하나씩 엮어, 전등 갓, 채반, 휴지곽, 물통 밭침, 그리고 빵을 굽는 데 필요한 반네통 등 예쁘고도 유용한 많은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라탄은 탄성을 유지하도록 늘 적셔서 사용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손은 늘 그렇듯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살씩 엮어 나간다.

 그 외에도 그는 자수를 놓고, 그림을 그린다.

 크리스마스 때면 고양이들의 횡포를 피할 수 있는 창의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안해내고, 우리를 위한 귀여운 카드를 그리곤 한다.


 본인의 태명, '초록이' 답게 그는 그의 손으로 수많은 풀들 또한 길러낸다.

바질

 풀을 키우는 것은 알면 알 수록 어렵다. 물이 많아도 죽고, 적어도 죽고, 영양이 많아도 죽고, 적어도 죽고, 바람이 안 불어도, 불어도, 해가 과해도, 적어도 죽는다. 풀은 죽인 만큼 알게 된다고, 쓰린 마음을 안고 아내는 올해도 그의 정원을 꾸려 간다. 더 숙련된 그의 손길에 보다 많은 식물들이 정원에 살아가고 있다.


 그 바쁘고 여린 손으로 아내는 거친 돌을 만진다. 고작 몇 번 붙기만 해도 피부가 다 까지고 아플지언정 그의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은 나에 못지 않아서 손가락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서 결국 다시 바위에 붙곤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 그의 생일을 맞아 프로젝트를 끝내었다. 그도 나도 너무나 신이 나고 뿌듯했다.


 차가운 수온에 잠시 쉬고 있지만 그는 조금 있으면 또 바다에 나가 파도위를 미끄러질 것이다.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나 또한 그에게 이끌려 바다로 향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 그는 내 손을 잡고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 준다.


 캠핑은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커다란 부분이다. 대단하거나 특별히 '감성적'인 장비는 없어도 우리의 캠핑 경험과 함께 낡아가는 소중한 장비들을 알뜰살뜰 잘 챙겨서 다니고 있다.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추운 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부지런한 그가 있기에 우리는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요즘의 나는 그를 도와 불이라도 피우는 노력을 할 따름이다.


 캠핑을 가서도 그는 참 바쁘다.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나무를 깎아서 포크나 나이프, 스푼을 만든다. 그리고 그가 정말 좋아하는 스모어를 완벽하게 먹기 위해 굉장한 심혈을 기울인다. 나는 아내가 언제 쉬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아가 고양이 임보를 시작한 것도 벌써 6년이 넘었다. 그간 우리와 함께 했던 5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아마 모두 제 나름대로 뛰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는 이 어리고, 여리고, 언제 아프거나 죽을지 모르는 고양이들을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았다. 녀석들은 귀여움과 사랑으로 보답하였고, 우리는 오늘도 고양이들을 임보하고 있다.

 몽몽이 복복이

 뭉뭉이, 만두

 복복, 북북, 몽몽, 뭉뭉을 위해 라탄으로 엮어준 화관

  아내는 캣타워 장인이다. 그 야무진 손으로 아마존 배송 상자와 실을 이용해 친환경, 재활용 가능한 아가 캣타워를 만든다. 아가 고양이 형제자매들 두어 세대가 사용하고 나면 새 타워를 만들곤 하는데, 그 때마다 그 퀄리티와 아가 고양이님들의 만족도가 우리가 보건대 높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3. 꼬리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고양이들은 뭐지? 딱히 쓸 데는 없는 것 같은데, 귀여운 것 빼고...'

 아내가 생각에 잠겼다.


 '음... 꼬리? 대단히 큰 쓸 데는 없는데 균형을 잡아주는?'

 '오 그러네' 


 그렇다. 우리집 식구, 보리와 구름이는 꼬리다.

 보리와 구름이는 나와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화가 났던, 슬프건, 즐겁건, 신이 났건, 그들은 당당히 그들로서 존재한다. 인간처럼 애매하게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다. 내가 너무나 불안할 때에도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누워 있거나, 맘마를 달라고 애옹애옹 보챈다. 혹은, 가끔은, 마치 내 마음을 아는듯 차분히 앉아서 눈을 꿈뻑꿈뻑거리며 따뜻하게 앉아있곤 한다. 귀엽고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역시 그들의 본질은 꼬리에 있다.

 지금 우리에겐 꼬리가 몇 개 더 있다. 올 해 찾아온 첫 임보 고양이들이다. 생후 열흘 정도에 찾아온 작디 작은 꼬리들. 세, 네시간마다 (아내가) 잠도 못 자가며 밥을 먹여야 하는 녀석들은 언제 아플지 알 수가 없다.


 '쌀'이라고 이름지었던, 가장 작았던, 까망 하양의 여자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분유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심장이 덜컹 가라 앉았다. 아내와 나는 정말로 공격적으로 분유를 먹였다. 쌀이는 정말 먹기 싫어 했지만, 먹지 않음은 죽음을 의미했기에, 아주 절실한 마음으로 1ml씩, 한 시간마다 분유를 먹였다. 오래 살라고 '장수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우리에겐 이미 쌀/장수왕과 똑 닮은, 아주 작고 애처로워 보이는 까망, 하양 아가 고양이들을 무지개 다리 너머 보낸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다. 세 번이나 그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장수왕은 이튿날, 다시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장수왕은 이번 생은 고양이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다음날, 온몸이 까맣게 가장 커다랬던 '콩'이가 분유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장수왕처럼 열심히 분유를 먹였지만, 뭔가 심각했다. 바로 보호소에 데려가 치료를 시작했다. 다음 날, 콩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얘기를, 나머지 둘은 무사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 나에게는 콩이가 또 다른 까만 고양이로 찾아올 때, 녀석을 어엿한 고양이로 키워내야 할 업보를 가지고 있다. 

 예쁜 콩아, 이 다음에 또 봐.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두 마리의 꼬리가 더 있다. 녀석은 '밀'이, 처음부터 잘 먹고, 잘 자고, 태평한 녀석이었다. 여전히 뒹굴뒹굴, 느긋느긋, 밥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어리광부리는 귀여운 고등어 고양이다.

 이 녀석은 옛 이름으론 쌀, 새 이름으론 장수왕. 녀석이 기운을 차리는 데 있어 이름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고 싶다. 요즘은 밀이보다도 잘 먹고, 정말 망아지마냥 천방지축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녀석이다. 우리가 떠나보내야만 했던 '흑미', '작은공'의 업보를 이제야 이룰 수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둘은 너무나 사이가 좋아 거의 항상 붙어 있다. 이 둘이 같이 입양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다음 숙제가 될 것이다.

 보리, 구름, 장수왕, 그리고 밀, 이제는 나름 다들 친해진듯, 아직은 조금 서먹서먹한듯 지내고 있다. 귀엽고, 재밌고, 딱히 쓸 데는 없지만 귀여운 이 녀석들.


 오늘도 나는 대가리로서 일을 하고, 아내는 손으로서 마늘쫑을 손질한다. 저놈 꼬리들은 설렁설렁 귀엽게 걸어다니고 있다. 괜히 웃음이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신을 맞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