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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Feb 15. 2023

미쿡식 대화

알람이 울렸다. 저녁 7시, 제주 '미국식' 

왠지 오늘은 일하는 시간마저 즐거울 것 같았다. 저녁에 있을 모임이 퍽 기대가 되어서. 


누구에게나 그런 날들이 있을 것이다. 일을 끝마친 뒤 있을 이벤트 덕에 하루 전체가 힘이 나는 그런 날. 내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메시지

일하는 중간중간 핸드폰의 진동소리에 눈이 갔다. 노란색 알람엔 '미국식'이라는 식당에서 만난다는 이유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온다는 말과 더 나아가 카우보이룩, 뉴요커 룩, 캔자스시티보이룩으로 각자 입고 오자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메시지. 곁눈질로 슬쩍 본 글씨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오늘 분명 즐거운 모임이 될 거야.' 


빨리 7시가 됐으면 좋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그리고 미국식

오후 7시. 딱, 기분이 나쁠 정도로 내리는 빗방울을 피해 식당에 도착했다. 한 자리 남은 테이블에 먼저 자리를 잡은 뒤 살핀 메뉴. 선택 장애가 있는 내게 이곳은 아주 훌륭했다. 메인과 사이드 메뉴 각각 하나씩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단순하지만, 장인의 맛을 낼 것만 같은 식당. 식당의 메뉴를 모두 숙지할 때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오겠다던 형이 도착했다. 그리고 곧이어 세 개의 룩으로 나눠 입고 오자던 형까지 모두 도착했다.


세 개의 버거와 사이드 메뉴 하나를 시킨 뒤 시작된 모임. 역시나 나의 예상은 맞았다. 일상과 교회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던 자리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매번 식상하게 말하지만, 결이 맞는 사람들과의 자리는 언제나 좋다.


천천히 대화를 이어가던 중 주문한 버거가 자리에 놓였다. 미국 스러운(?) 원초적 느낌의 버거. 바삭한 빵 속에 푸짐한 고기가 가득 차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입안에 퍼지는 짭짤한 맛을 온전히 즐긴 하루.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짧은 순간 함께 있었던 자리는 꽤 완벽했다. 


평일 저녁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누군가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 그런 저녁 자리가 있는 것만큼 완벽한 평일이 있을까. 우리는 또 한 번 맛있는 걸 먹자고 약속한 뒤,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속을.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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