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화 Sep 15. 2022

성화의 시티 (1) 동탄과 파라다이스 폭포

 장장 16년간의 학교생활을 끝내고 마지막(이길 바라는) 졸업식을 기다리고 있던 겨울이었다. 많은 가구를 버리고 필요한 물건 위주로 챙겨 이사하는 과정을 구경한 뒤에는 딱히 도움이 될 일이 없어 동네의 1,500원 커피집에 들어가 노트북을 두드렸던 것 같다.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한 날이기도 했고, 모 불륜커플이 중범죄를 저지르고 화성시의 어느 산에 숨어들어 뉴스가 통 난리였다. 이사 날이 이렇게 불길해도 되는 건지... 동거인들이 이렇게나 요동 없고 묵묵하다니... 그 현실성과 성실성에 감탄했던 기억. 집 근처에는 진척될 기미가 안 보이는 공사장들만 널려 있었다. 애매한 교통, 멀어진 올리브영, 멀어진 사람들, 뒤틀어진 관계, 불투명한 미래가 내 공간을 대신 채워나갔다.


 그러니까 딱, 중3 때 처음 판교에 입주했던 그 당시의 기분이었다. 동탄에서도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1km씩 인척 없는 길을 걸어야 하는 일이 은근히 달가웠다. 살을 에는 추위에 적당히 갇혀있고 형체 모를 두려움과 적당히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환경이 썩 마음에 들었다. 아직 무례함이 들이닥치지 않은 그 예의 있는 상태를 좋아했다.



 하지만 가끔은 답답한 이 도시를 미친 듯이 떠나고 싶기도 했고 또 가끔은 이사가 지겨우니 어서 뿌리를 내리고 싶기도 했다. 이주에 대한 기도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민망할 정도여서 그냥 하나님 걸러 들으세요, 그냥 제 맘이 그렇다구요~ 하는 식이 주를 이뤘다.


 그랬던 이유는 내가 모든 것을 두고 여기에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당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동탄으로. 뚜벅이에게 엄청난 거리 이동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친구들과 가치관이 조금씩 달라져 발을 딛고 있던 땅바닥이 갈라지는 듯한 기분 속에 살아야 했다고 적고 싶다. 수원으로 이사한 뒤에는 내가 그들에게 무례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나에게 무례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관계만 잔뜩 맺었다. 나는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은 자의 외로운 삶을 지속하다가 동탄으로 이사한 뒤에는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었던 교회마저 옮겨 생활 반경을 완전히 리셋해버렸다.



 어느 날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애니메이션 영화 ‘up’을 시청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별한 아내와 같이 나누던 판타지 속 파라다이스 폭포에 굳이 굳이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다. 조금 더 스포하자면, 그는 그곳에 모든 것을 두고 원래 있던 곳에 새롭게 시작된 인연으로 나아가며 스토리가 마무리된다.


 나는 과거의 생활 방식, 과거의 사람, 과거의 사랑, 과거의 동경을 지독하게 내 정체성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상황에 맞는 퍼즐의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부터 한 걸음이라도 물러날라치면 지옥 불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원래의 생활 방법을 고수했다. (더 자세히 적어보려 했으나 그렇다면 여러모로 글이 희석될 것 같아 더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그런 모양의 조각은 다른 인간관계 안에서 절대 맞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원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쳤고, 사사건건 욕을 먹었고,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날렵한 언어로 뒷담을 남겼다. 그렇게 고지식한 퍼즐은 마음속에 너덜너덜해진 파라다이스 폭포를 간직한 채로 동탄까지 피란을 오게 된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도시는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새로운 교회에 적응하려 하니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청년부 모임에 나가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2년이 넘는 시간이 들었다. 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너무 멀리 도망가지도 않으며 비슷한 속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관계 속에서 내 퍼즐의 테두리가 때로 얼마나 못났는지 감각하게 되어 괴롭기도 하고, 다정하고 매너 있는 사람들 속에서 차차 나의 모서리를 다듬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할 구석이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분당에서 있을 때 가보면 어느 정도의 낡음과 변화가 느껴져 파라다이스 폭포 따위 그냥 두고 올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판타지인지 추억인지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은 이미 과거와 함께 흘러가 버렸고 분당에는 현재의 분당러들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그토록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을 그냥 과거에 두고 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동탄에 처음 온 사람들은 글쎄, 너무 조용하고 행성 간의 거리가 너무 넓은 듯한 이 바이브를 못 견뎌 하기도 하는가 보더라. 여기는 너무 재미가 없고 불편해, 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고 생활 흠집이 도시의 전반적인 무드가 되면 깨끗했던 김밥천국을 그리워하게 되리라.


 지금은 동탄이 준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각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진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내 길이 여기서 끝이 아닐 수 있겠지, 더 세련된 도시가 날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지. 어디론가 떠나간대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마음껏 사랑했으면 한다. 더 누리고 향유하였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 애매하고 깔끔한 도시를, 그 도시의 조심스러운 다가옴을.

매거진의 이전글 일방의 역사 (2)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