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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Jan 29. 2022

일방의 역사 (2)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2015-2016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애 스타일에 있어 태세 전환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책 없는 용기의 타이밍이 나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이뤄내는 선배들을 신격화하고 실컷 가스라이팅 당하며, 그들의 연애 스타일마저 내면화해버렸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우연히 맞은 벼락과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굉장히 상식적이고 필연적인 자리들을 반복하면서 생긴 다소 재미없는 마음. 레벨 원부터 시작하는 (아마) 첫 번째 사랑. 그분을 만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공석에서 한쪽 흰자로 항상 그분을 훔쳐보았다.


그 분은 조용하지만 존재감을 어느정도 갖고 있고, 멀쩡하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은 외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범한 나에게 크게 어긋나지 않는, 평범하고 다정한 사람. 가끔 일이 바쁘면 떡진 머리와 풀린 눈으로 복도를 활보했지만 여전히 쾌활한,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긍정적인 인간미로 보였더랬다.


이제 찌질한 과거를 벗고 모두에게 나의 멋진 연애력을 증명할 아주 좋은 기회였다. 입이 무겁고 신중하고 똑똑한 남자 사람 친구 두 명 초대해 단톡방을 팠다. 친구들은 남의 연애에 추진력 있게 참견하여, 그분과의 공식 인터뷰 자리씩이나 만들어 주었다. 타자가 빠른 나를 녹취시키려고 불렀다는 구실도 만들어 자연스럽게 깊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초딩 시절 타자 빠르기 허세에 꽂혀 오전 7시부터 메밀꽃 필 무렵을 열나게 쳐댔던 과거의 나와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잠시 품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직설적인 선배에게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쿠사리를 당하고도 그를 좋다고 따라다니며 패션과 생활 패턴을 따라 하는 애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거침없이 말하고 거침없이 살아내는 사람이, 나는 애초에 아니라는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이 생기면 똑똑하게 고백할  있고, 백발백중, 거절당하는 일도 없고, 요구도 잘하고 대화도 잘하고 도전도 잘하면서 절연에도 두려움이 없는, 그런 우상의 모습이 안타깝게 나는 아닌  같았다.


0고백n차임의 경험은 내가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트라우마라는 걸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특별히 연락을 먼저 보내거나 먼저 받거나 한 것도, 고백한 것도 아니고 정말 뭣도 하지 않은 그 상태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는 공황에 빠져버렸다. 왠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그 마음이었다고, 족쇄가 풀린 한낮이었지만 추운 밤 동안 묶여있었던 기억에 존재가 묶여버린 기분이었다고, 그렇게 설명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의문이다.


지금은 내가 일에 집중해야 할 때야. 중요한 시기니까 남자 때문에 놓쳐선 안 돼. 전의 강한 감정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논리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마음의 순수함을 검열하는 척, 나와 사람들에게 마음을 꼭꼭 숨기고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그것이 천천히 식어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의 마음은 환기되지 못해 부패해갔고, 그는 어학연수를 떠났다.



2018


생각은 차근차근 여러 사람의 여러 이야기에 의해 움직여갔다. 상처를 받아도 상처를 주고도 사랑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의 뒤틀린 부분을 조금씩 인정할 수밖엔 없었다.


겨울의 포근한 데이트를 통해 여인들이 사랑을 쟁취하는 예능을 나도 참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격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연애에 성공한 사람도(정확히 말하면 사귀기에 성공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제삼자들이 어여삐 여기는 것을 보며 생경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받아주길 기대하고 뛰어내렸으나 결국 땅에 그대로 부딪혀 깨어지고 망가진 그 마음이 존중받다니. 아니 애초에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마저 상실하는 건 아니었다니. 나를 깨지게 한 것은 어쩌면 그의 거절이라기보다 내면의 의심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TV 속 그들은, 또 친구들은 상처를 받아도 언젠가는 그걸 잊고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데 나만 왜 20, 21살의 경험에 경직되어 있었던 걸까. 나는 나를 묶어버린 그것을 잊고 싶어졌다. 좋아한다, 좋아했다는 말을 아끼면 아낄수록 외로워지는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나는 나를 아끼려는 방편으로 두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 그것은 과거의 수치심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내 아름다운 마음을 허비할 순 없어. 나는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나에게만 담아둘 수 없어. 이제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상처들을 정말이지 잊어야겠다고,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그냥 떠나보냈음을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2020上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어디에든 갖다 붙이면 사랑스러운 그림인 체하기 쉬운 나날이었다. 나에게는 수많은 면접을 거치며 너덜너덜해진 진로를 수정하고 새로운 길로 나가야 하는 두렵고 외로운 나날이었다.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토익을 한 달 만에 끝내버리고 싶어 H사 강남점의 가장 빡센 커리큘럼에 등록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맨 앞자리에 앉아 마스크로 호흡기를 꽁꽁 감춘 채 part 5,6 선생님의 필기를 꼼꼼히 받아적었다.


선생님은 완벽에 가까운 프로였고 그래서 조금 무서울 때가 있었지만 조교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만은 마음이 참 편해 보였다.


선생님께서 아플 때 따뜻하고 재미있는 말로 위로해준 조교, 군 휴가 때 선생님을 찾아와 감동을 준 조교, 에어컨 수리 기사님들과 자연스럽고 예의 있게 대화하는 조교...


항상 같은 층에 앉아 숙제를 확인하는 그 모습이 자기 전에 떠오르기 시작한 순간, 아 좆된건가 싶었다. 아니다. 좆된 게 아니야. 찾아온다면 소중하게 여겨주기로 했던 그 마음을 전할 사람이 그 사람인 거야.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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