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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Oct 09. 2020

최고의 방역은

매년 거듭되는 아폴로눈병 유행과 코로나 방역

요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한 학급의 학생 수는 20명대라고 한다. 하기야 합계출산율이 0점대로 떨어지고 서울에서도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등장하는 시대이니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다. 콩나무시루 같은 교실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교실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고 있으니 세상의 흐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60~70명이 한 반에서 수업을 듣던 윗세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30~40명이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 꽉 들어차 수업을 들었던 입장에서는 오늘날의 현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한번은 북유럽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적은 인원이 한 반에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7명이었는지 8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반 학생 수가 나를 포함해 10명을 넘지 않았다. 옆자리, 앞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앉아 수업을 들으려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서양 놈들은 이런 환경에서 수업을 듣는단 말이지. 비록 일주일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신이 났다. 물론 자랑거리는 아니다. 아폴로눈병이 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 반에 30명 가까운 학생이 아폴로눈병에 걸려 병결 처리되었다’. 요즘 같으면 9시 뉴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담임선생님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며 아침마다 빠진 친구들을 나무라셨다. 그럴 법도 했던 게 다른 반은 대부분 아폴로눈병 감염에 따른 병결이 10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우리 반만 압도적으로 감염자가 늘어 교실이 텅텅 비게 되었으니, 아마 동료 교사들로부터 받았던 걱정 섞인 놀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폴로눈병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시기에 크게 유행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금 더 의학적인 이름은 급성출혈성결막염이다. 눈의 결막 부위가 엔테로바이러스 제70형이나 콕사키바이러스 A24형에 감염돼 발병한다고 하는데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바이러스의 유형보다는 전염성이나 그 증상이 더 중요할 것이다. 아폴로눈병에 감염되면 충혈과 통증이 동반되고 눈꺼풀이 부어오른다. 안쪽 결막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대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충분히 쉬면 저절로 치유되지만 심각한 경우 합병증으로 뇌신경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전염성은 매우 강해 수영장이나 교실을 함께 쓴 타인으로부터 쉽게 바이러스가 옮는다. 우리 반에서 감염자가 속출했던 것만 봐도 전파가 잘 되는 건 확실하다. 물론 그들이 아폴로눈병에 걸리면 학교를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소식에 감염된 친구의 눈을 손으로 문대고 그 손을 다시 자기 눈에다가 비볐던 게 더 크겠지만 말이다. 매년 여름 “아폴로눈병 ‘비상’” 등의 제목을 단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학교 관계자들과 보건당국은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감염되는 청소년들 때문에 깨나 속을 썩일 것이다.


사실 여느 전염병에 비하면 아폴로눈병 같은 건 애교에 불과하다. 대체로 며칠만 고생하면 언제 그런 병이 있었냐는 듯 금세 낫는다. 그러나 14세기 유럽의 페스트처럼 인구의 30%에서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는 전염병도 있었다. 남미에서도 16세기부터 유행한 천연두와 홍역, 볼거리,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디프테리아 등으로 인구의 90%가량이 희생되었다. 스페인 코르테스 군대의 멕시코 해안 상륙은 그 시발점이었다. 그의 군대는 1519년 11월 아스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진입했다. 오늘날 멕시코시티가 된 지역이다. 당시 테노치티틀란의 인구는 약 3천만 명. 반면 코르테스의 군대는 6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의 군대는 아스텍군의 저항에 밀려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코르테즈의 군대는 유럽의 전염병을 남미로 옮겨왔다. 아즈텍 문명은 그 전염병들에 의해 붕괴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의도치 않게 천연두를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천연두는 코르테스의 군대가 퇴각한 뒤 서너 달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인 탓에 테노치티틀란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몬테수마와 그 계승자를 포함한 주민의 절반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 반면 스페인 군사들은 이미 면역력을 갖추고 있었던 덕분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천연두 환자가 사용하던 담요 등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1529년 쿠바에서 들어온 홍역이 천연두에서 살아남은 주민의 2/3를 죽이며 유럽 정복자들의 앞길을 터주었다.


영화 <감기>에서는 치사율 100%라는, 유래 없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쳐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하고 도시를 폐쇄한다.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치사율이 100%라면 전염병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퍼지기 어렵다. 숙주 역할을 하는 인간이 살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전염병이 전파되기 때문이다. 걸리자마자 죽는 질병이라면 바이러스가 이동할 새가 없다. 


영화 <감기>의 한 장면.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감기>가 전혀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비록 치사율은 다를지라도, 비슷한 상황을 근 몇 년 사이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3년 사스, 2010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질병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일상에 침투해 평범한 삶을 망가뜨렸다. 병에 옮지 않더라도 사회경제적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전 세계적 질병이 앞으로도 계속 닥칠 수 있다는 점,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감기>의 설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정부가 권장하는 예방수칙은 대동소이하다.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할 것, 항상 손을 깨끗이 씻을 것, 사람이 붐비는 곳은 되도록 피할 것. 그런데 이런 수칙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한다. 결국, 전염병 예방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매너를 기반으로 하는 셈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감염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제주도 일대를 여행한 모녀나, 미국에서 입국한 후 술집, 학원가 등을 돌아다닌 40대 남성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성을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은 이도 있었다. 최고의 방역은 아마 철없는 사람들부터 철저히 교육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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