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로 치닫지 않고 살아내기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보고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사건들이 하나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그런 통찰의 순간... 지난주,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먼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 날이었다.
상담을 받으러 갈 때는 매번, 그동안 있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상담센터를 갔는데 그날은 기억을 더듬어도 유독 별 다른 일이 없었던지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며 갔다. 상담센터 앞에 서서야 '아 오늘 그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곧 아버지 생신이 돌아와 본가에 가야 하는데, 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게 마냥 즐겁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부담스럽고 어렵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식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들려주며 이런 식으로 하면, 혹은 저런 식으로 하면 너희가 하는 일이 좀 더 잘되지 않겠냐는 식의 조언을 하시는 분이다. 성취지향적인 분이고, 아직도 자신에게 사회적 성공을 거머쥘 기회가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분이다. 그러기에 이미 은퇴한 나이지만 늘 혼자 공부하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신다. 자식 된 입장에서는 건강하고 의욕이 있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부모가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자식의 입장에서는 내가 그 기대에 미쳐야 한다는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예민하고 통제욕구가 강한 분이었다. 자식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 비난도 많이 하셨고 자신의 통제가 벗어나는 상황에서는 화도 많이 내셨다.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첫째인 나는 싸우는 것으로 대응했다.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자식이라도 당신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도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도 그때의 아버지가 아니고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 둘 다 달라졌고 각자 경계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얘기를 상담사와 나누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아버지와 겪었던 심각한 갈등을 들춰내자 눈물도 조금 흘렀다. 왜 눈물이 났을까 생각해 보니, 아버지에게서 대항해 스스로를 지키려 한 지난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그리고 이젠 그런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애틋함이 그 눈물의 의미였다. 이미 아버지는 나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존재임에도 가끔은 아버지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느끼며, 때때로 나를 압도하는 그 감정 역시 그가 남긴 유산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또 안쓰럽기도 하다.
상담하고 여러 날이 지나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 또 한 번 이 생각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었다. <피의 연대기>를 만든 김보람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우연한 기회에 상영회에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거식증 당사자인 딸과 그런 딸의 병증을 지켜보며 살아온 엄마의 삶을 담고 있다. 딸은 10살 때부터 거식증을 앓았고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도 거쳤다. 지금은 요리를 일로 할 만큼 증상은 덜해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이 다큐에서 나에게 의미 있게 와닿은 것은 주인공 딸과 딸의 어머니, 그리고 나아가 외할머니까지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이었다. 딸은 10살에 거식증에 걸렸는데, 그것은 남들이 얘기하듯 자학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오히려 거식증의 상황이 자신에게는 가장 또렷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고 그래서 이런 상황을 누구에게 뺏기기 싫었다고 했다. 자기 몸을 컨트롤하고, 지금 어느 순간보다 깨어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음식을 먹기 싫었다는 딸. 어떻게 보면 광적인 상황이다. 딸의 어머니는 20대를 학생운동에 거의 미처 살았고 40대는 대안교육에 몸담으며 그것에 또 한 번 미쳐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말 그대로 자기는 뽕 맞은 듯 취해 살았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할머니 역시 젊은 시절 구토의 습관을 가지고 있으셨다고 했다. 그것은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잠깐의 쾌락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이 할머니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역사는 멀리서 보면 스쳐 지나갈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었겠지만 사실 아주 기괴한 '광기의 역사'였다. 그 누구도 쉽게 해석해 낼 수 없는 상황들, 그럼에도 나는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이들은 모두 나를 옥죄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데 열광적이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 그것이 광증으로까지 치달을 정도로 치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옥죈 것은 세상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처한 상황과 배경, 그녀들의 피 속에 흐르는 dna 유전.... 아니 그녀 자신을 뺀 모든 것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를 포함하여)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평생을 노력한 것처럼....
또 하나는 즐겨보는 교육 유튜브였다. 교육대기자 TV 채널을 가끔 보는데, 거기에서 조선미 교수께서 한 말씀이 마음에 하나 콕 박혔다. 엄마들의 몸에는 밥 DNA가 박혀있다는 말씀. 시대가 변해서 이제 먹을 것이 흔해도 늘 밥걱정인 엄마들을 언급하며 한 말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여성들이 가사에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DNA에 새겨진 육아와 살림에 대한 강박은 이어져 온다고, 그래서 가사에 시간을 덜 쓰게 된 만큼 그 에너지가 자식에게 간다는 얘기. 예전 같으면 그냥 스쳐갔을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에 와서 박혔다. 현대사회는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피에 새겨진 인류의 의무에 허덕이는 것 같다. 먹고살만하지만 더 높은 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모세대보다 진보하지 못하면 패배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가진 고통의 본질이 아닌가 싶었다.
이전 세대로부터 온 유산을 짊어지고 새로운 것, 더 진일보한 것을 창출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애를 쓰는 것 그 자체가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인류의 특성이고, 인류가 영원히 행복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또 얼마나 불안한가...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숙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 고통의 근원이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숙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현재의 삶을 볼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그리고 숙명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조금은 연민을 담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을 광증으로 몰아넣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