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작가, 피트니스를 시작하다.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날씨를 핑계로 차를 몰고 5분 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진짜 할 수 있겠어? 이 짧은 거리를 걷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그날 난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하러 왔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곳에 차를 몰고. 오늘은 꼭 등록하겠다는 결심으로.
피트니스 센터, 흔히 말해 동네 작은 헬스장. 등록 문의를 했던 건 7월 초였는데 고민만 하다가 6개월 등록하면 4개월이 무료라는 이벤트 전화를 받고서야 헬스장을 향했다. 아니 그 홍보 전화를 받고도 이벤트 기한 마지막 날까지 버티고 버티다 드디어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이젠 해야지. 해야 한다.
겨울을 보내고 4월부터 운동할 거라고 입에 달고 다녔다. 근데 그때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나 타면 되겠다 싶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을 자전거로 달려 지역스포츠 센터에 도착, 자유수영을 한 시간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얼마나 상쾌한가. 3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이지만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최고인 코스였다. 하지만 문제는 자주하기는 힘들다는 것. 일주일에 한 번도 어려웠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이유였지만 진짜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운동을 위해 비워두자 싶었지만 번번이 다른 스케줄이 잡혔다. 운동은 제일 끝순위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다이어트 때문도 아니고 바디프로필? 그런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단지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듯 결연한 의지로 운동을 한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특히 겨울이 되면 꼭 어디 한 군데가 안 좋아졌다. 처음에는 턱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다음 해에는 자궁근종이 터져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그다음에는 청력에 문제가 생겼고. 그다음 해는 부정맥... 큰 병까진 아니었지만 몸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다.
게다가 정신건강도 문제였다. 조절하기 힘든 우울감과 긴장감이 수시로 찾아왔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 눈물이 났으며 짜증이 치솟다가 무기력해졌다.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시달릴 때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여자 나이 마흔에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이었는데 나도 마흔이 코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고 그 주에 바로 수영을 등록했다. 그렇게 나에게 필요한 건 운동이라고 살려면,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살려면 운동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시작한 수영은 정말 신세계였다. 나처럼 뒤늦게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수영이 아주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강하게 권유할 것이다. 어릴 때도 수영을 배워보긴 했지만 그때는 수영 말고도 모든 게 신났을 때여서 수영이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슬프지만,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수영이 너무나도 신나고 재미있었다. 우울은 물에 녹는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다. 수영을 시작하고 우울한 마음은 사라졌고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오롯이 느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초급반 수영을 처음 접한 여인들(여성반이었기 때문에) 모두 신이 났다. 우린 물만 튀겨도 여고생들처럼 깔깔 웃었다.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수영 생각을 하고, 수영 영상을 찾아보며 연구도 했다. 자면서는 수영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일 년 정도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졌다.
쉬는 시간이 1년을 넘었갔고 한번 꺾인 의지는 다시 되살리기 힘들었다. 다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가 필요했다. 겨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작년 겨울에 수영에 등록 했지만 예전만큼은 신이 나지 않았다. 대폭 오른 수강료도 부담을 키웠다. 그래서 봄 날씨를 핑계로 자전거와 지역스포츠센터 자유수영을 택했던 것이다.
올여름은 특히나 덥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치고 피곤하다. 체력은 점점 더 바닥으로 내려간다.
동마다 하나씩 있는 배드민턴장, 길거리 농구코트만큼이나 명실상부 지역 주민 체력관리의 최전선에 위치하는 곳이 바로 동네 헬스장이다. 장기 티켓을 끊으면 커피 열 잔 가격으로 한 달은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곳. 그 정도면 개인 사업자라기 보단 지역 복지센터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골프, 클라이밍, 필라테스, 실내 테니스 등 각양각색의 운동센터가 있지만 가격면에서 동네 헬스장, 아니 피트니스 센터만큼 지역주민에게 봉사하는 상생사업은 없다. 가성비와 접근성이 그 무엇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트니스는 재미가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러닝머신과 사이클, 고문기구를 방불케 하는 근력운동기구들... 이곳에서 운동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다. 삶의 고통에 대한 은유일 뿐이다. 근육을 자극하는 무게 추는 우리 어깨에 놓인 고난의 무게와 다름이 아니다. 물론 그 고통을 즐기는 일부 마니아들이 있지만, 나와 같이 운동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겐 안그래도 고통스러운 삶을 더 고통에 몰아 넣는 듯한 이 운동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가입을 했다.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영은 등록 시기를 놓쳤고, 클라이밍은 초보가 하기에는 힘들것이라는 퇴자를 맞았으며, 필라테스는 가격대가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 올 겨울 대비 운동으로 피트니스에 정을 붙여봐야겠다.
그룹피티라는 프로그램에 희망을 걸어보려 한다. 혼자 하는 운동은 재미가 없다. 그룹피트니스, 줄여서 gpt라 불리는(자꾸 챗gpt가 생각나는) 프로그램은 그래도 단체로 하니까 좀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지가 있다면 그래도 힘이 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곳에 기록해보려 한다. 최후의 보류로 등록한 피트니스 센터,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만 했던 그곳에서 운동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겪을지, 내 몸과 마음에 조그만한 변화라도 생길 수 있을지. 그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해보고자 한다.
온 세상이 끓어오르고 있는 현재는 상상이 안되지만... 곧 겨울이 온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기 위해 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