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작가 Sep 13. 2023

2. 내 가슴 속 작고 소중한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엄마와 작은 이모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아이고 어짜노. 어짜노...” 작은 소리로 우실 뿐, 큰이모의 갑작스러운 장례식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울어줄 남편도, 자식도 없어서 일까? 그녀의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 고요 속에 나 역시 소리 내 울지 못했다. 나에겐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없는 것만 같았다. 

 이모의 영정에 절을 했다. 생전 명절에도 절을 받지 않던 이모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삼촌과 외숙모, 작은 이모와 이모부가 나란히 앉아 절을 받을 때도 큰 이모는 절을 받지 않았다. 이모에게 절을 하는 건 영정 사진 속 이모 모습만큼이나 어색하고 낯설었다. 입관 할 때도 그랬다. 차갑게 굳은 얼굴도 꽁꽁 묶인 몸도 전혀 이모 같지 않았다. 이모를 약간 닮은 마네킹 같았다. 내 기억 속 이모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이토록 굳은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모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일 년 전쯤 병원에서였다.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영화관에서 3교대 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남들 다 쉬는 주말과 공휴일이 더 바쁜 직업이라 친구들 결혼식에도 늘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 좋게 외사촌 오빠의 결혼식 날 휴무가 잡혔다. 그리고 그 때는 이모가 유방암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이모가 수술을 했다는 건 엄마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큰 수술인지 채감 하지도 못했고 막상 통화를 한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엄마를 통해 소식만 전해 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쉬는 날 이모가 입원한 병원의 멀지 않은 곳에서 사촌 오빠 결혼식이 있었고 가는 김에 큰 이모 병원에도 들릴 수 있었다. 역시나 이모를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지만 그 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병원에 들려야만 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사방에서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봄. 나는 대학 졸업식 때 입었던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병원을 방문했다. 사촌 오빠의 결혼식에는 제법 어울렸지만 암 병동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병실에서 이모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냥 이모는 평소와 같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모가 날씨가 좋으니 산책을 가자고 했고, 그렇게 이모와 단둘이 잠깐의 시간을 보내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모를 따라 둥글게 이어지는 경사를 내려가 병원 뒤 인적이 없는 잔디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벚나무가 있어서 꽃이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봄볕은 따뜻했지만 이모는 추워보였다. 예전에 본 적 없이 마르고 작아보였다. 나의 눈길은 자꾸 이모의 가슴에 닿았다. 

  수술 전, 이모는 엄마에게 종양이 있는 한쪽 가슴을 만져보게 했다고 한다. 만져보니 딱 동전만 한 게 잡혔다.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부위를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이모는 한쪽 가슴뿐 아니라 겨드랑이쪽까지 도려내야 했다. 이모는 수술 이후 팔의 통증을 호소했다. 수술 부위도 아닌데 자꾸 아프다고 했다. 수술 후 이모는 혼자선 공중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엄마가 이모를 방문했을 때, 딱 한번 함께 목욕탕에 간적이 있었다. 이모는 목에 수건을 길게 늘어뜨려 가슴을 가렸다고 한다.

 나는 이모를 가까이에서 부축을 했다. 병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환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이모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었다. 이모와 함께 자고 뒹굴었던 수많은 나날들 속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체취였다. 어색했다. 가까이에서 보는 이모의 얼굴은 푸석하고 그늘져 있었다. 애써 짓는 미소도 힘이 없었다. 

 나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대해 떠들었고, 이모는 내 졸업식에 대해 물었다. 생각해보니 불과 5년 전, 이모는 나의 대학 입학식에 참석했었다. 학교가 가톨릭 재단에서 세운 곳이라 명동성당에서 미사 형식으로 입학식을 진행 했는데, 이모가 가톨릭 신자라서 우리 학교 입학미사를 꼭 보고 싶어 했다. 이제 막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해 본 매직파마처럼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던 그때, 이모와 함께 입학 미사에 참석했다. 이모와 함께여서 든든했고 어색함도 잊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명동거리에서 생애 첫 핸드폰을 개통했다. 어쩌면 고등학생을 벗어난 첫 걸음을 이모와 함께 한 것이다. 하지만 졸업식은 이모와 함께 하지 못했다. 졸업식이 열리던 그 때, 내가 학사모를 쓰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을 그 때, 이모에게는 수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말없이 세상을 떠난 이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준다. 그들은 누구였나?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 때문에 세상을 떠났나. 그가 사라진 세계에는 미스터리가 남는다. 어떤 미스터리는 생전의 추억을 압도하기도 한다. 죽은 이는 말이 없기에 남겨진 사람은 그 숙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이모의 죽음이 그랬다. 그녀의 죽음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우울한 마음으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할 때 내 생각은 이모에게로 향했다. 끊임없는 질문과 답. 풀리지 않는 궁금증... 이미 오래전 죽은 이와의 대화는 흩어지고 모이길 반복하며 미처 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모가 돌아온다.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막막한 시점에서 이모가 다시 말을 걸어 온 것이다. 왜 또 다시 그녀일까? 

 나는 이모가 나에게 돌아오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녀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모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이유는, 지금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근원적 고민은 결국 이모에게로 흘러간다. 이모가 살아계실 때, 그녀는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인물 같았다. 사춘기가 지나면 부모와 멀어지듯 이모와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내가 이모의 멈춰진 시간과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내 몸과 마음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끊어지지 않는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다. 지독하게 아픈 유방 X-ray 검사를 끝내고 돌아왔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초음파검사를 해보자는 연락이었다. 초음파검사까지 받으라는 건 처음이었지만 검색해보니 그런 경우는 흔한 것 같았다. 엑스레이로 잘 보이지 않은 부분을 초음파로 확인해보는 정도 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과 불안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순간 이모가 생각났다.

 며칠 뒤 유방 초음파 검사를 위해 진료를 보았다.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사진 속 작고 하얀 점들이 보인다고 했다. 석회였다. 왜 생긴 건지 묻자 모유 수유 때 남은 찌꺼기가 석회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자연적으로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너무 작고 미미해 제거할만한 크기는 아닌데 석회로 인해 유발되는 문제가 있는지 초음파검사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고 했다. 석회, 내 몸 속에 작은 덩어리들. 너무 작아 만져지지도 않는 크기였다. 예상대로 초음파 검사에도 별 이상은 없었다. 1년 후에 다시 검사를 받기로 예약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상상이지만, 연기가 되어 사라진 이모가 내 몸 어딘가에 남았다면 내 유방이어도 좋겠다는 생각. 내 유방 속 작고 하얀 점들이 이모와 내가 연결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이모를 그냥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생전에 방학이 오면 찾아오던 습관대로 그녀는 내가 삶의 쉼표에서 맴돌고 있으면 나를 찾았다. 나는 한동안 그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서성이지만 곧 다시 일상 속 삶으로 돌아간다. 다시 바빠졌다는 이유로, 일에 집중해야한다는 핑계로 늘 찾아오던 그녀를 되돌려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를 마주하고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삶에 대해. 나의 지나간 기억에 대해. 이모를 다시 되살려 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이 나에게는 무엇으로 남을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은 해봐야겠다. 20년동안 도망쳐온 숙제를 이제는 풀어야 할 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엄마가 울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